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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 Dec 20. 2020

매듭

풀려도 풀리지 않아도.

     

     한 동안 신지 않았던 겨울 운동화를 꺼냈습니다. 발에 살이 빠진 걸까요? 아니면 신발장 안에 있던 신발이 절로 늘어난 것일까요? 오랜만에 신은 신발이 헐렁해서 매듭을 다시 묶으려는데, 작년에 얼마나 매듭을 꽉 묶었던지 이를 꽉 물고 손 끝에 힘을 꽉 주면서 겨우 묶인 매듭을 풀었습니다. 매듭과 씨름하던 중 이적의 '매듭'이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그대라는 오랜 매듭이 가슴속 깊이 남아서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지만, 날이 지날수록 더 헝클어지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어 그대여"


누구나 마음속에 이런 매듭 몇 개쯤은 있지 않을까요. 헝클어지고 풀기 힘든 매듭이 생기기 전에 그때그때 풀어내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죠. 제 신발의 매듭처럼 너무 꽉 묶여 있어서 풀기 힘든 매듭도 있을 테고, 그때 그 시점과 그 상황으로 돌아가야만 풀 수 있는 매듭도 있을 테고, 묶여 있었는지 조차 잊고 있던 매듭도 있을 테고, 노래 가사처럼 점점 더 헝클어져만 가는 매듭도 있을 것입니다. 매듭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중 '매듭은 꼭 다 풀어내야 하나? 그냥 둬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가 답일까요?

얽힌 매듭처럼 생긴 사구체

      우리 몸에도 매듭이 있습니다. 신장에 있는 사구체는 모세혈관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기관으로 신장으로 들어온 혈액의 여과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투과성이 높은 모세혈관이 한 공간에 얽혀 있음으로 인해 효과적인 여과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풀려서는 안 되는 매듭입니다.

매듭처럼 묶여있는 DNA와 히스톤 단백질

     반면 풀려야만 하는 매듭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소중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평소에는 세포의 핵 속에 매듭처럼 꽁꽁 묶여 응축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특정 유전자가 발현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DNA는 느슨하게 풀려서 유전자 발현 과정에 필요한 요소들이 DNA에 접근하도록 합니다.

     모든 매듭을 다 풀어야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 아픈 매듭이나 너무 오래되어서 더 이상 풀 수 없는 매듭은 그냥 둬도 되지 않을까요? 먼 훗날 그 매듭이 엉키고 설킨 실타래들을 오히려 정리해주는 역할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꼭 풀어야 되는 매듭이라면, 힘을 꽉 주고 풀어야 할 만큼 단단하게 엉키기 전에 푸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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