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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Mar 25. 2023

산에서 뭘 봤는지 알아?

무엇이 급할까?

옛날 조선 시대는 신분제로 양반과 상놈을 뚜렷하게 나누었는데 지금은 뭘 기준으로 양반과 상놈을 나눌 수 있을까? 난 교양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누고 싶어. 교양은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외적으로 드러나는 세상일에 대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안과 밖을 관통해보는 힘이라고 봐. 겉으로 드러나는 빙산의 일각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 안 된다 그런 거지. 그런데 얼마 전에 내가 본 일은 어떤 기준으로 봐야하는지 애매하단 말이야.


저번 주 금요일에 남편이랑 제부도로 바람 쐬러 갔어. 그 남자 요즘 집에서 하루 종일 놀고먹잖아. 노력을 안 해. 그래도 뭐 어쩌겠어. 며칠 전부터 계속 제부도 누에섬에 가자고 졸라서 기 좀 살려놓으면 노력 좀 할까 싶어서 간 거지. 회사에는 월차 내고 일찍 아침밥 챙겨 먹은 후 제부도로 향했어. 그 인간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밥은 꼬박 챙겨 먹잖아. 아마 밥 먹을 시간에 지진이 나도 밥그릇에 밥은 퍼서 대피할 인간인거 알지?


마침 썰물 때를 잘 맞춰서 바닷길이 쫙 열려있었어. 사람들이 다니기 좋게 갯벌 위에 시멘트를 깔아서 걷기 좋게 만들어 놨더라. 멀리 바다와 갯벌이 까맣게 펼쳐져 있는데 사라진 낭만이 스멀스멀 비린내와 함께 몰려오더라. 그 순간엔 남편도 이뻐 보이는 거 있지. 너희들도 가봐. 가끔씩 맨 밥 같은 우리 인생에 바다 비린내도 필요하니까.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소리가 로맨틱한 BGM처럼 들리는 그런 시간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그것이 왔어. 남편이랑 바닷길 건너편 누에섬으로 가고 있는데 급 똥 신호가 오는 거야. 머리가 쭈뼛 서고 세상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 했어. 너희들도 내 대장 상태가 안 좋은 거 알지? 가끔 너네랑 같이 곱창 먹다가도 막 화장실로 뛰어가잖아. 아침에 누룽지 먹고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 했는데 그게 안 좋았나봐. 대장에서 그것이 마구 밀려 내려오면서 남편한테 승질 부렸어. 괜히 오자고 해서 나만 힘들어졌다고. 내 대장은 진짜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왜 이 시점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지랄인지.


드넓게 펼쳐진 갯벌이 드넓은 화장실로 보였어. 질퍽한 갯벌로 뛰어 들어가 조개 캐는 것처럼 앉고 싶었지. 머리에 그 자세를 시뮬레이션 해 보며 사람이 오나 안 오나 두리번거렸어. 날씨가 좋았지만 겨울바람이 차가워 사람은 없더라. 그래도 난 교양인인데 감히 그럴 수 없어 엉덩이에 힘을 주고 배를 꾹 누른 채 참고 걸었어. 다시 주차장으로 갈까 생각 했는데 벌써 반쯤 와서 가기도 애매한거야. 남편은 누에섬 전망대에 가면 화장실 있으니까 좀 참으라고 하더라. 남편 얼굴에 웃음이 비실거렸지만 말하는 데 힘을 낭비 할 수 없어. 이렇게 걷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거 같아 급기야 달리기 시작했.


마침내 누에섬에 도착하니까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거야. 남편은 왼쪽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빠를 거 같다며 그쪽으로 가자고 했지. 난 이미 뇌 활동이 마비된 상태라 무조건 남편 말을 들었어. 그런데 금방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경사가 심해 가도 가도 전망대가 나타나지 않는 거야. 온통 소나무가 가득한 산 속이라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도저히 밀려나오는 그것을 참을 수 없어 소나무 뒤쪽으로 가는 순간 남편이 비명을 질렀어. 나오려던 그것도 깜짝 놀라 그대로 멈춰 버린 그때 우리가 뭘 봤는지 알아?


남자 한 명이 바지를 올리며 후다닥 달려 나왔고 뒤따라 여자도 바지를 움켜지고 남자를 따라 달리는 거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상상 되지? 남편은 그들의 자세를 자세히 봤대. 믿어져? 그래. 나도 궁금해. 오죽하면? 야 그건 아니지. 이 상황에 ‘오죽하면’이라는 말을 적용하긴 좀 그렇다. 조금만 참고 내려가면 따뜻한 모텔이 있는데 왜 굳이 산속에서? 차도 있잖아. 아! 차는 없을 수도 있겠다. 급 똥과 섹스 욕구 중 어떤 게 더 급할까? 그래 나도 급 똥에 한 표.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람들이 전망대 올라갈 때 산길보다 평평한 오른쪽 둘레 길을 이용한다고 하더라. 그들은 사람들이 산길로 올라가지 않으니까 자기 둘만 그 산속에 있다고 생각 했을 거야. 그리고 욕구를 참을 수 없었거나 로망을 실현하고 싶어서 그랬겠지.


아! 내 똥? 무사히 전망대로 달려가 장을 안정시켰어.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너희들은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해? 그들에게 숨겨진 빙산이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난 그 사람들 자유의지로 했으니까 신경 쓸 일이 아닌 거라 정리했다. 그렇지만 교앙인은 아닌 걸로. 욕구에 충실했던 거 하나로 교양인이냐 아니냐는 좀 그렇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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