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스포인트 Jul 09. 2022

인생은 하얀 스케치북이 아니야

이모부는 그때 내게 꿈을 포기하라 하셨다


20대 때의 내 꿈은 방송 엔지니어가 되는 거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텝이 되고 싶었다.

연예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꿈꿨고, 나 역시 사람들이 울고 웃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거든.


토익 900점 이상.

한국어 능력 시험 2등급.

무선설비기사와 정보통신기사.

대학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스펙을 가지고도 떨어졌다. 그것도 대학 졸업하고 4년 동안이나.


4년간 백수로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날 받아주는 소출력 방송국과 케이블 방송 관련 회사에서도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도,

난 전국 지상파 방송국 통합 최종 면접 11군데에서 떨어졌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은

사람을 더 간절하게 만든다.


차라리 처음부터 안된다며 희망이라도 주지 말지.


그때는 명절이 제일 싫었다.

일부러 명절 근무를 하겠다고 나서서 친척 모임을 피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 할머니 댁에서 잘나가는 이모부를 만났을 때.


“00아. 인생은 하얀 스케치북이 아니야. 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애가 무슨 방송국에 들어가려고 해. 그만큼 안되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그때 이 말을 듣고 얼마나 분노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화가 나서 가방을 가지고 할머니 댁을 나가려는 내게 부모님은.


“너 이대로 나가면 다신 집에 들어오지도 마.”


라고 말씀하셨다. 


내 부모는 내가 힘들 때도 그랬지만 잘 나갈 때도 그리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살아보니 이모부의 말이 맞았다.

방송국도 빽이 있으면 더 들어오기 쉽다.


그리고 “인생은 하얀 스케치북이 아니다.”라는 말은 항상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20대의 말에 결국 나는 방송국 입사에 성공했고.     

30대의 말에 나는 웹소설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고 퇴사를 앞두고 있다.

이모부의 말대로 인생은 하얀 스케치북이 아니었다.


내 인생은 모퉁이가 닳고 세상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다.

어쩌면 지금쯤 아주 새까만 색으로 여백을 가득 메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처음 쓴 소설은 최상위 프로모션을 받고도 매출이 시원치 않았지만.

작년에 쓴 소설은 리디에 넣어놨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도.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기다무 심사에 떨어지고, 카카오페이지 독연 제안을 받았어도.



나는 여전히 20대 때의 심정으로.

열심히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려보고 있다.


반년을 갈아 넣은 소설의 매출이 비록 치킨값만 나올지라도.

그래도 괜찮아.

아직 젊잖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내 생각만은 젊은 상태를 유지하기를.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기를.


내 인생이 하얀 스케치북이 아니더라도.

검은 바탕을 긁어내서라도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