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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ul 28. 2024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초등 교사 생활을 끝낸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제자들이 계속 연락을 해오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 결혼해요, 아기가 돌이에요, 취직했어요." 이런 좋은 일들도 있지만, 힘든 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연락하는 제자들도 있다.


며칠 전 한 블로그에서 마음 아픈 글을 읽었다. 우울증이 너무 심한 상태여서 의사 선생님이 병원 입원을 권유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와 뒤늦은 후회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며 한없이 부끄럽다고 했다. 밀려오는 자괴감에 무릎을 꿇은 자신을 증오한다는 표현도 있었다. 잠 못 드는 그녀의 밤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절절하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선생님, 저 살고 싶지 않아요. 매일 죽고 싶은 생각으로 눈을 떠요. 그리고 무서워서 죽지는 못하고,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을 청해요."


우울증이 깊은 제자의 마음을 함께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래도 제자를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셔서 다행이고, 말 들어주는 내가 있어서 다행이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 이후 감사하게도 제자는 그 캄캄했던 터널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우울증 약을 먹고 있지만, 이제는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단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


블로그의 글을 읽으며 난 나의 사랑하는 제자를 떠올렸다. 나 또한 오랜 시집살이로 우울증 약을 먹었던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힘내라'는 말 대신에 '힘든 그 마음 안다'는 댓글을 달았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그 표현이 더 위로가 된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계속 블로그의 그녀가 신경이 쓰여서 그녀의 다른 글들을 보았다. 몇 달 전에 있던 생일에 부모님과 여러 지인들이 축하해 주었다는 글이 있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비록 온라인이지만, 자기 마음을 글로 써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제자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찾아본 적이 있다. 환자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알고 있으면 좋을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면, "너는 너무 나약해."라든지, "무조건 힘내야 한다."는 말들은 환자에게 또 다른 상처와 부담감을 준다고 했다. 영상 몇 개를 본 후 내가 너무나도 깜짝 놀랐던 것은, 영상 아래 댓글이 몇 천 개가 달린 것이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죽고 싶지만, 죽는 게 무서워서 못 죽고,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견딘다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왜 이토록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많을까? 감당 못할 정도로 마음 아픈 사람들이 많을까? 가슴이 답답하고 아려왔다.


요즘은 '마음'에 관한 책과 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마음 챙김'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도 챙기고, 주변의 마음 아픈 사람에게도 무심하지 않으며 하루를 살아야겠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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