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절(氣絕)

by 채수아

중학교 때 제일 싫었던 것이 월요일 아침에 있던 '운동장 조회시간'이었다. 흰 양복과 백구두를 유별나게 좋아하셨던 교장 선생님은 월요일 아침을 애타게 기다리셨는지 몰라도, 우리 여중생들에게는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 어떤 날은 1교시 수업 시간을 반이나 잡아먹기까지 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좀 길어진다 싶으면 여학생 두세 명 정도가 쓰러져 친구 부축을 받으며 교실로 들어가곤 했는데, 우리 모두는 교장 선생님이 아닌, 쓰러진 학생이 비틀거리며 들어가는 모습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 몇 학생 중에 항상 끼어있던 내 친구 미자, 키 번호도 1번이었던 미자가 난 너무나 가여웠다. 왜 미자 담임은 미자를 꼬박꼬박 조회시간에 내보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해불가의 선생님이다.


기절(氣絕)하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난 가끔 그것이 어떤 상태일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가위에 눌리는 것은 종종 경험을 하여 그 무서운 느낌을 알고 있었지만. 아뿔싸! 긴 시간이 흐른 뒤 내게도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둘째 아이 임신 초기, 교장 선생님의 훈시는 점점 길어지고 있는데, 드넓은 운동장이 점점 캄캄해져 오면서 내 심장 소리는 거인의 걸음 소리처럼 쿵쿵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이 세상에서 빛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보니, 나는 교감 선생님의 등에 업혀 3층 보건실에 옮겨져 있었다. 나의 기(氣)가 끊어져 있는 상태, 그것은 작은 죽음이었다. 참으로 공포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를 기절시켰던 뱃속의 그 작은 아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공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으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사람들은 만삭인 내가 운동회 무용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하고, 만삭인 내가 추운 겨울에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했지만,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시기는 바로 입덧 기간이었다. 입덧이 심해 먹지도 못하고 토하기만 하던 그때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말이다. 생각해 보니 첫아이 임신 초에는 학년 대표로 연구수업까지 했었다.


30년이 넘는 그 시간 속에 내가 있고, 남편이 있고, 우리 삼 남매가 있다. 또한 나를 거쳐간 수많은 학생들과 인연들이 있다. 눈물과 한숨짓는 시간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웃었다. 그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