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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아들에게

by 채수아

9년 전에 네가 받아온 '참치선물세트'를 본 순간, 엄마 가슴에서 울컥 뭔가가 올라왔었어. 아들이 알바를 하며 돈을 벌고 명절 선물을 받아온 게 그렇게 울컥하더라. 눈물은 얼른 숨겼어. 누나 회사에서 온 명절 선물과 아빠 회사에서 온 명절 선물을 볼 때와는 느낌이 매우 달랐어.


아픈 손가락, 넌 나의 아픈 손가락이었지. 아들아! 엄마는 너를 이 세상에 초대한 방식부터 옳지 않았단다. 엄마는 누나를 난산한 후 건강이 나빠졌고, 그 약한 몸으로 학교를 투사처럼 다녔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꼭 해야 할 사명이라 생각하면서 말이야. 친할머니의 지극정성으로 누나는 건강하고 총명하게 잘 자라고 있었고, 엄마의 하루하루는 피로가 쌓여가고 있었다. 몸은 점점 말라 몸무게가 41킬로그램이었으니, 그 당시 엄마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무척 동정스러웠지.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누나가 다섯 살이 되었더구나.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아는 아빠도, 할머니도, 심지어 누나까지도 둘째 아기를 언제 낳을 건지 묻지를 않았단다. 사실 엄마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서, 결혼하면 네 명을 낳을 거라고 큰소리 뻥뻥 치던 사람이었단다. 어느 날, 누나가 형제 없이 자란다는 게 몹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엄마는 비쩍 마른 약한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너를 위해 작정 기도를 시작했지. 기도 3개월 후 네가 엄마 몸속에 들어왔고, 엄마는 또 다른 기도를 시작했단다.


"저는 아들이냐 딸이냐,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아시죠? 부디 아기가 달을 잘 채우고 건강하게 태어나게 도와주세요."


너는 감사하게도 달을 꽉 채우고 이 세상에 태어났지. 친할머니가 좋아 춤을 추시던 '남자아이'로 말이야. 하지만 넌 누나와 달리 몸이 너무나 약했단다. 작고 말랐고, 아토피가 너무 심했지. 가끔은 너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가야 할 때 엄마와 아빠는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친할머니가 잘 모르시고 너에게 먹여주셨던 계란으로, 넌 눈이 토끼처럼 빨개지고 전신에 두드러기가 툭툭 불거져 올랐어. 엄마는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단다. 그 무서웠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


너는 늘 누나를 부러워했지. 키가 큰 누나, 공부를 잘하는 누나, 상을 많이 받아오는 누나! 네가 초등학생 때였어. 둘이 손을 잡고 슈퍼마켓을 다녀오는데, 나에게 물었지.


"엄마, 나도 누나처럼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엄마는 너에게 물론이라고 대답하며 웃었지만, 내 마음은 도리질을 치고 있었단다. 몸이 약해 학교도 자주 빠지던 너를 보면서 엄마 아빠는 '공부 잘하는 아들'을 감히 바랄 수가 없었어. 그냥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결석 안 하며 학교 다니는 아들'이 우리의 소망이었지. 중학생이 되어도 결석을 자주 했었던 네가 받아온 중3 성적표의 '9'라는 학급 석차는 우리에게 기적으로 보였단다.


엄마가 학교를 퇴직한 후, 아침마다 너에게 학교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할 때, 잘 웃던 너의 얼굴이 더 환하게 피더구나. 네가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엄마를 확인할 때도 그랬지. 너에게 엄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저 좋은 사람이었는데, 엄마는 긴 시간을 모른 체하며 살았었구나. 친구들이 땅꼬마라고 놀리던 많은 시간들,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속상했니? 전교에서 제일 작았던 너의 키가, 중3에 올라가서는 '반에서 두 번째'라고 넌 엄청 좋아했었어. 기억나니?


엄마가 온전히 '집에 있는 엄마'로 돌아오자마자 너의 키가 일 년에 10센티가 자란 걸 보며, 너의 얼굴이 더 환히 밝아지는 걸 보며, 공부에 점점 집중하는 너를 보며 난 생각했어. 내가 학교를 너무 늦게 그만두었구나, 하고 말이야.


고등학생이 된 너는 더 이상 결석이라는 걸 하지 않았지. 누나처럼은 아니지만, '심화반에 들어가지 못해 속상해했을 거'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들을 정도로 너는 성적이 좋아졌어. 누나를 키우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감사'였다는 걸 너를 통해 배웠다. 감사가 부족했던 엄마에게 큰 것을 가르쳐 준 너였어.


우리 아들, 엄마가 많이 미안했었는데 이렇게 잘 자라주어 너무 고마워. 대학 입시 후 만족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네가, 후에 코피를 흘리며 편입시험 준비를 할 때 엄마는 새벽마다 가슴을 쓸어내렸어. 새벽 5시에 너를 깨울 때마다 그렇게 가슴이 시릴 수가 없더라. 넌 목표를 향해 돌진했고, 목표를 이루었어. 그리고 또 도전하고 도전한 끝에, 지금의 공군 장교 위치까지 올라와 있더라.


하늘에서 너를 지켜보고 계실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모습과 마음까지도 가장 많이 닮은 너를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고마워, 아들! 너를 보며 엄마도 더 멋진 사람으로 살기를 다짐해 본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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