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일까?

by 채수아

네이버 검색을 했다.

● 뒤웅박


박을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에 구멍만 뚫어 속을 파낸 바가지. 마른 그릇으로 쓴다. 여기에 크고 작은 뒤웅박에 갖가지 씨를 넣어 사용했다




구글에서 뒤웅박 사진을 찾아보았다. 여러가지 뒤웅박 모양을 본 건 처음이었다


뒤웅박의 모앙은 잘 몰라도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은 대부분 들어보았을 것이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주변 친구들의 삶을 바라보니, 이 표현이 맞는 것도 같다. 비슷한 친정에서 자라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 사는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어떤 시댁을 만났느냐, 어떤 남편을 만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친구들 중에 이혼한 사람은 없다. 배우자들이 그래도 성실한 사람들이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는 모습은 많이 다르다. 결혼과 동시에 사는 집의 규모가 달라지고, 돈 씀씀이에서도 큰 차이도 난다. 그렇다고 돈을 마구 쓴다는 게 아니고, 집안 행사에 드는 큰돈을 늘 어르신이 해결하는 게 익숙하고, 그런 며느리였던 친구는 자신의 손주 돌잔치나 며느리 산후조리원 비용 등을 스스로 해결해 주며 살고 있다. 자신의 시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남편의 사업이 계속 안 되어서 오랫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친구이고, 집안의 외며느리 역할을 하느라 많이 애쓰고 살았던 친구였다. 빚의 고통에서만 벗어나도 좋겠다는 푸념을 하는데, 마음이 아팠다. 어떤 친구는 부부동반 해외 골프여행을 다니는 게 일상인데 말이다. 나 또한 결석 한 번, 결근 한 번 안 하던 사람이었지만, 결혼하면서부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건강을 서서히 잃었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작은 전셋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처럼 정년퇴임까지 학교에 남을 줄 알았지만, 나는 건강을 잃어 일찍 학교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참 비슷했던 친구들의 결혼 후 모습은 정말 비슷하지 않았다. 친구들 중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컸던 한 친구는 부유한 시댁, 인격 높은 시부모님을 만나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전생? 까르마? 업식? 분명 결혼할 배우자를 본인이 선택했고, 함께 삶을 만들어 가는 건데,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내가 보기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 '내 인생 공부'를 할 가장 적당한 사람과 인연이 맺어지는 것 같다. 그 이끌림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소녀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돈 걱정을 한 적이 없이 살았던 사람이었다. 또한 정직과 양심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고, 비겁함과 거짓을 매우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온유한 면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굉장히 센 사람이었다. 결혼하면서 많은 인연과 어우러지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부딪히는 고통과 유리가 깨어지는 듯한 아픔을 겪었다.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들을 만나며 많이 힘들었고, 그렇게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마음을 많이 다쳤고, 퍼주기만 하던 내 사랑의 방식이 옳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 되어 저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지만, 나는 일어나 앉았고, 일어나 걸었다. 내 안에 새로운 에너지가 차올라 다시 활기를 되찾았을 때, 나는 오래 전의 세상 물정 모르는 여린 소녀가 아닌, 조금은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위로해 주기도 하고, 자기 사랑의 중요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교,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구멍을 깨고 나오는 것은 분명 자기의 몫일 것이다. 그래서 깨달은 진리이기에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용기란
​두려움에 대한 저항이고,
두려움의 정복이다.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는 매일 도전을 선택할 수 있고, 용기를 낼 수도 있다. 오늘은 살아있는 우리가 만드는 기적의 시간이다. 무조건 힘내야 하고, 무조건 자기를 사랑으로 안아주어야 한다. 나아가 '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삶이 내 선택의 연속이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