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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곰 Jul 11. 2024

아무튼 핀란드+1_비행중년


아무튼 그리하여 얼렁뚱땅 열흘간의 핀란드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의 첫 시작은 역시 비행. 장장 13시간이 넘는 비행을 충분히 잘 즐기기 위해 며칠 전부터 넷플릭스, 닌텐도 스위치, 전자책까지 모든 준비를 완료했으며, 아무래도 거대한 나를 어떻게든 누이기 위해 핀에어에 추가금을 내고 비상구 좌석을 선점했다. 원래는 핀란드까지 갈 때 11시간, 올 때 9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이면 충분했으나, 전쟁 이후 비행시간이 두세 시간쯤 추가되면서 더욱 괴로워졌기에(?) 아무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선 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13시간 반의 비행. 서울에서 밤 9시 즈음 출발한 비행기는 핀란드 시간으로 다음날 새벽 5시 즈음 헬싱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계산이 빠른 똑똑한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현재 핀란드 헬싱키와 서울의 시차는 6시간이다) 비행의 첫 서너 시간은 역시 교양 있는 현대 서울말을 쓰는 중년남성답게 전자책 읽기를 시도했다. 다행히 첫 소설로 선택한 김화진 작가의 <동경>이라는 작품이 무척 흥미로웠길래 몇 시간은 버텨낼 수 있었으나, 역시나 그 이후로는 좀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행 내내 잘 자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곧노안인 안구가 지속되는 독서로 인해 피로해질 대로 피로해지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역시 늙으면 좀 덜 예민해진다더니, 눈을 떠보니 6시간쯤 풀수면을 때려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9시간을 보내고 나니 고지가 눈앞이었다. 이제 비장의 카드인 넷플릭스를 켜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던전밥>을 시청했고, 조금 오타쿠같아 보일까 봐 걱정했지만 이곳은 곧 자유의 나라 핀란드이니 이 정도는 봐줄 것이라 혼자 생각하며 눈감고 귀 닫아 버렸다. 하지만 <던전밥> 속 주인공들이 자꾸 슬라임을 죽여먹고 마물을 조사대는 통에 속이 안 좋아져 5개 이상을 시청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이로 인해 최후의 보루인 스위치를 꺼내 들고야 말았다. 다행히 아재에겐 한줄기 희망, <젤다의 전설>이 있었으니... 내가 이 날을 위해 젤다를 다 깨지 않았구나를 외치며 신나게 플레이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헬싱키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간단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에서 헬싱키 시내로 향하는 길, 역시나 맑은 공기 덕에 한국에서 줄창 내 코를 막고 있던 비염이 뻥 하고 뚫렸고, 덕분에 밤샘 비행 이후에도 좋은 컨디션으로 헬싱키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내리면 지하로 바로 연결된 기차역에서 헬싱키행 기차를 탈 수 있기에 주저 없이 플랫폼으로 향했으나, 자신 있게 향한 그곳에서 의외의 복병을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구글맵이 분명 헬싱키역으로 간다고 안내해 준 곧 출발하는 열차에는 HELSINGFORS 행이라는 이상한 말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어디지...? 중앙역이 맞나...? 하고 생각하다 곧 출발한다는 소리가 들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무작정 탑승해 버린 나. 역시나 MBTI 명예 J 회원에서 탈퇴해야겠다 스스로를 책망하려던 찰나 CHAT GPT님께서 가라사대 HELSINGFORS는 헬싱키의 스웨덴어 지명이니 걱정하지 말라 하심에 맘을 푹 놓고 음악을 들으며 무사히 헬싱키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알아볼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기차에 올라탄 스스로의 무모함에 나 자신이 너무 놀라고 말았으며, 세 번이나 이곳에서 같은 기차를 탔을 것임에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인 스스로가 놀랍기도 했다. 인간이란 역시 망각의 동물인가, 아니면 나의 뇌세포가 이제 줄어드는 나이여서인가...



아무튼 지간에 중앙역에 도착해 예약해 둔 HOBO HOTEL로 향했다. 다음 주 보영이와 옌스의 코티지로 향하기 전까지 3일 간 나의 핀란드 생활을 책임져줄 HOBO HOTEL. 그간 헬싱키에서 에어비앤비와 호텔 등 여러 곳을 거쳐봤지만 이렇게 깔끔한 시설과 예쁜 인테리어를 가진 숙소가 없었기에 들어서자마자 만족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장장 16시간에 걸친 호텔까지의 여정은 끝이 났다. 이제 짐을 풀고 헬싱키 시내를 향해 나갈 시간! 이곳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인 희도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침 8시인데도 나를 만나기 위해 시내로 나오겠다는, 아침은 먹여야 하겠다는 그의 다짐에 감동받아 피곤해할 시간도 없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렇게 헬싱키 시내로 발을 옮기게 되었는데.... 



(딴단단단~ 따단~ 따라라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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