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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곰 Jul 11. 2024

아무튼 핀란드+2_여름이 온다

그렇게 바깥으로 나와 맞이한 헬싱키는 말 그대로 여름이었다. 푸르른 나뭇잎과 산들바람, 따사로운 햇살 사이로 스미는 그늘빛 향기. 낯선 풍경들 사이로 지나가는 여름의 헬싱키는 언제 만나도 반가운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희도를 만나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걷는 거리마다 푸르러진 여름이 함께여서 참 즐거웠다. 2년 만에 핀란드에서 다시 만난 희도는 좀 더 건강해 보였다. 쪽쪽이를 빨며 막 걷기 시작한 희열에 들떠있던 아기는 벌써 아빠 아빠 말 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고, 아기가 커감에 따라 희도 역시 조금 더 푸근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 같았다.


우리가 아침을 먹기 위해 찾아간 곳은 헬싱키 시내에 위치한 올데이 브런치 카페인  'Green Hippo Cafe'였다. 6년 전 헬싱키를 찾았을 때 보영이와 함께 왔던 곳인데, 그때도 고즈넉하게 그늘진 건물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서 아침식사를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날의 기억들을 곱씹으며 나는 아보카도 샌드위치가 포함된 브런치 메뉴를 주문했다. 따뜻하게 내린 블랙커피는 마음껏 가져다 마셔도 좋다는 점원의 말에 드디어 핀란드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핀란드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대부분 블랙커피가 식사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체감 상 한국에서 식사와 커피를 따로 주문할 때와 한 끼 식사 비용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린히포 카페에서의 고즈넉한 아침식사 풍경


아무튼 6년 만에 다시 와 먹는 이곳의 샌드위치와 요거트볼은 역시나 겁나 맛있었고, 새콤달콤한 브런치를 먹고 나니 이제야 좀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희도와 두런두런 근황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보영이가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헬싱키 중앙역을 향해 함께 걸었다. 헬싱키 시내의 주요 노선은 트램으로 연결되어 있고, 도보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어서 늘 편안한 느낌을 준다. 마치 골목골목 이어진 공원 같달까? 아무튼 어딜 가도 걷기에 충분하니, 헬싱키 시내 주요 관광지를 보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하루 정도는 걷기 여행을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마침 브런치카페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길은 다양한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늘어서 있는 길이어서 걷는 시간이 더욱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헬싱키 시내에는 작고 예쁜 가게들이 참 많다.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희도가 여기는 새로 바뀐 곳 같고, 이곳은 이케아 물건만 전문적으로 리폼하는 스튜디오고 하며 미주알고주알 작은 가게의 맥락들을 설명해 주었는데, 그렇게 다정한 설명들을 듣고 나니 늘 걷던 이 길도 색다르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나 헬싱키에 사는 친구들 덕에 내가 이렇게 따뜻하고 깊이 있는 여행을 하는구나 하며 혼자 뿌듯해하며 걷다 보니 곧 헬싱키 중앙역이 눈앞에 들어왔다.



등불을 든 사람들의 거대한 형상이 양쪽에서 떠받들고 있는 형태의 헬싱키 중앙역은 특유의 살짝 바랜 옥색의 지붕과 유려하고 로맨틱한 외관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높고 또 높이 짓느라 바쁜 도시를 벗어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각자의 존재감을 선보이는 이곳 헬싱키 중앙역 부근 풍경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곳에 와 오래도록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르누보 양식의 석조 건물인 중앙역 내부에는 스타벅스를 포함해 작은 상점들이 예쁘고 소담스럽게 늘어서 있었고, 각자의 여정을 향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보영이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눈물의 상봉. 사실 작년 말 보영이가 한국에 왔을 때 함께 부산을 여행했는데, 몇 개월 만에 보는 건데도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머머머 야아아아아아 하며 서로 이름을 부르는 우리만의 상봉 행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우리는 함께 중앙역 밖으로 향했다. 마침 헬싱키 곳곳은 Pride Month를 기념하기 위해 LGBQI+를 지지하는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는데, 마치 색색의 무지개들이 건물 옥상마다 떠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부낄 수 있다는 사실이 표정이 많지 않은 핀란드 사람들의 따뜻한 속마음을 엿보게 해 주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세계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츤데레가 아닌가!



무튼 그렇게 중앙역을 나와 작은 상점들을 둘러본 뒤 우리는 차 한잔을 마시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 헬싱키 중심부를 관통하는 에스플라나디 공원(Esplanadi Park)을 마주 보고 있는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은 복잡한 도시를 벗어난 나와 이곳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헬싱키 시내를 가로질러 중앙역부터 항구 근처까지 이어진 에스플라나디 공원은 여행객들에게 늘 여유로운 낭만을 선물해 주는 공간이다. 아침부터 하프를 연주하는 사람들, 햇살을 받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까지 모두가 각자대로의 조용한 휴식을 누리는 곳. 이 공원 안에 있는 카펠리 카페가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명했는데, 이전에도 자주 들렀던 곳이라 이번에는 새로운 카페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공원을 마주보고 있는 카페에 앉아 두런두런 사람 구경 하며 밀린 근황들을 나누다 보니 마치 시공간을 넘어 한국의 고즈넉한 기와 밑에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 만나도 이렇게 어제 만난 듯 편안한 친구. 그런 친구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또 이렇게 낯선 곳 낯선 장소에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카페인 충전으로 정신을 번쩍 차린 다음 보영이는 이제 어디에 가고 싶냐고 내게 물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시내 중심가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Ullanlinna 해변이었다.



(다음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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