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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칼럼니스트 Mar 28. 2022

소탐대실의 길, 법인카드 오남용


   

법카 사용, 보직자들의 권리?


부장이 점심을 사준다고 했다. 내 돈 내고 편하게 먹고 싶었지만 코스 요리를 먹는다는 말에 따라갔다. 보양식을 먹고 식당 앞에서 감사 인사를 했다.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자 부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순간 부장 손에 들려있는 카드에 눈길이 갔다. 회사 법인카드였다. ‘업무추진비’로 밥을 사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자기 돈으로 사준 게 아니라 회사 돈으로 사준 거 아닌가? 왜 우린 감사해야 하는지, 왜 부장은 생색내는지 이해 가지 않았다. 내 말을 듣던 옆 부서 G가 웃었다.


“그게 어디에요? 우리 팀장은 법인카드로 거의 안 사줘요. 이상한 건 밥 한 끼 안 사주는 팀장의 법인카드 한도가 월말만 되면 다 차요.”


G는 부서의 막내로 매월 말 법인카드 영수증을 정리하여 총무팀에 전달한다. 그래서 팀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잘 알고 있다. 팀장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식사 비용이나 저녁때 술 한잔 걸친 내역을 상세히 아는 것이다.


“막내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다른 팀은 어떤지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똑같더라고요. 아, 웃긴 이야기도 들었어요. A팀장, B팀장이 같이 술을 마셨나 봐요. A팀장 법인카드로 결제하려 했는데 한도가 부족한 거예요. 쓸 수 있는 만큼만 A팀장이 결제하고 나머지는 B팀장 법인카드로 긁은 거죠. 그 영수증을 A팀장은 영업비, B팀장은 회식비로 정리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총무팀장한테 걸렸어요. 결제한 식당도 같은 곳이고 결제 시간도 13초 차이가 났다고 하네요.”


다음 브런치 북에 올라온 사례인데 사실 법인카드에 대해서는 훨씬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다. 법인카드 사용의 이면에는 어쩌면 직장인들의 애환이 있고 때로는 탐욕이 묻어나기도 한다. 위의 팀장들 예처럼 간단히 창피를 당하고 끝나면 천만다행이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 등 법인카드 오남용은 처음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결국 형법상 횡령에 이른 사례도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IT기업 인사팀 J는 직원들의 해외 출장비 전표처리 업무를 맡았다. 어느 날부터 개인적인 밥값, 커피값, 피자 값을 법인카드로 결제하기 시작하다, 회사에서 눈치를 채지 못하자 급기야 법인카드로 명품가방을 사고 해외여행까지 다녀왔다. 일본으로 여행하면서 항공권 구매, 숙박 등 경비는 물론 호스트바 등에 드나들면서 거액을 결제하였다.


J는 동료들 이름을 사용해 출장신청서를 위조했고 자신이 사용한 영수증, 대금청구서, 신용카드 매출전표 등을 첨부해서 재무팀 직원에게 제출했다. 그러다 회계 감사 과정에서 들통이나 결국 업무상 횡령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법인카드 사적 사용에 관한 뉴스 기사이다. 처음엔 밥값 몇만 원으로 시작했으나 이것이 통하게 되자 더 큰 탐욕을 부린 끝에 결국 범죄자의 길로 들어섰다. J처럼 바늘 도둑일 때 견제가 없거나 스크리닝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점차 간 큰 소도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법인카드의 오남용에 대한 경계나 경고는 개인적으로나 회사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꼼수 사용과 오남용이 가지는 리스크


취업포탈 커리어가 인사담당자 374명을 대상으로 ‘법인카드 사용’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8%가 ‘법인카드 사용에 꼼수를 부린 직원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꼼수를 부린 행동에는 ‘회사 업무를 가장해서 사적으로 사용한다(66.3%, 복수응답)’라는 답변이 1위였고 ‘금액이 큰 것은 나눠서 결제한다(16.3%)’가 뒤를 이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법인카드가 회사에서 규정한 업무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나 사용 한도나 사용범위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나 통제가 느슨한 경우 더욱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실제 직장 상사의 법인카드 사용에 관련해선 할 말이 많은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법인카드의 사적 사용이 커다란 이슈였다. 두 후보의 선거 결과가 근소한 차이였기에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대선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론의 지나치게 부풀린 보도도 한 몫했겠지만 법인카드를 잘못 사용한 것이 잘못의 원천임은 부인할 수 없다. 소탐대실치고는 너무 가혹하고 역사적이다.


이처럼 법인카드의 오남용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성적인 스캔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잘하다가 한 방에 무너지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직급이 높아질수록 견제가 느슨해지면서 이들 두 가지 것에서 모럴 해저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래서 이것 때문에 직장생활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재량의 판단은 보수적이어야


법인카드 사용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를 정리하면 첫째는 쓸 수 있는 재량의 범위, 둘째는 규정 외 사용, 그리고 셋째는 거짓 증빙이다.


재량은 내부적인 용도로 법인카드를 사용하게 될 때, 즉 직원 회식이라든지 내부 직원과의 식사에 쓸 수 어느 정도까지 쓸 수 있는지의 판단이다. 회사가 정한 범위가 있다면 그렇게 하면 그만인데 이 부분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곳도 많다. 그러므로 스스로 판단이 중요하다.


앞서 A와 B팀장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 회사는 한도 내에서 내부고객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점으로 보아 두 팀장의 회식비로 정리하면 되는데, 사용 금액이 커서 나눠 결제하고 또 거짓으로 증빙했다. 이들의 과도한 사용은 재량 경계선에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거짓 증빙으로까지 이어졌다. 둘만의 음주 회식에 과다한 비용을 법인카드로 결제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꺼림칙해 접대비로 위장했을 것이다.


이처럼 내부 직원들 회식에 과다하게 법인카드를 쓰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회사는 없다. 내부 회식 용도로 일정 사용은 인정하더라도 금액이 과도해지면 문제의 시각으로 본다. 재량에 대해서는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부서장이 회사의 규정과 관습에 따라 판단하겠지만 이때 선을 넘어가는 사용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팀 내 이슈가 있어 어쩌다 팀원 전체와 점심을 하게 된 경우 이를 재량으로 허용하는 회사들이 있지만, 직원들과 같이한 점심 비용을 빈번하게 법인카드로 결제하면 재량을 넘어선 과도한 사용이 될 것이다. 저녁 식사나 회식 비용도 그런 관점에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한테 너무 너그러우면 회사의 누군가가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규정 외 사용은 범법 행위


규정 외 사용은 더 큰 문제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규정 외 사용의 대표적인 예는 개인적 용도의 사용, 즉 사적 사용이다. 예를 들면 법인카드로 1) 가족과 식사를 했다, 2) 주말에 친구들과 라운딩을 했다, 3) 단골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4) 직원들과 함께 안마시술소에 갔다, 5) 명품가방을 샀다, 6) 회사 물품을 사면서 내 것까지 같이 결제했다, 7) 친구들과 식사를 했다.


모두 다 문제가 되는 사적 사용이다. 특히 1, 3, 4, 5번 사례는 언론에도 보도된 사례이다. 장관 후보자, 은행원, 스포츠 협회 직원, 언론사 사장 등에서 나온 사례다. 나머지 사례도 같은 관점이다.


참고로 앞서 인사담당자 설문 조사에서 ‘귀사 직원이 허락 없이 개인적인 용도로 법인카드를 사용하다 들켰을 때 어떻게 대응하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1.1%가 ‘금액을 본인 부담으로 한다’가 가장 많았고 ‘경고한다(25.9%)’, ‘시말서 제출(19%)’, ‘감봉(3.2%)’, ‘해고(0.9%)’ 순이었다.


그러나 금액이 적다면 몰라도 앞서 예에서처럼 금액이 커지면 형사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지인들과 식사 대금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피고인에게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한 사례가 있다. 법인카드의 사적 사용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하여 형사적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규정에 맞는 사용만이 마음 편하고 또 오래가는 바른길이다.     



거짓 증빙의 위험


마지막으로 거짓 증빙이다. 법인카드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업무상으로만 사용하도록 규정화하고 있고 사용자는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 직원과의 회식에 재량을 넘어선 과도한 사용이라든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 것에 대해 이를 사실대로 얘기하는 경우는 없다. 꺼림칙하니 거짓으로 사용내역을 제출하는 것이다.


회사 또는 담당 부서에서는 거짓 증빙으로 의심 가는 심증이 있더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럴 해저드가 쌓여가면 당사자는 심리적으로 떳떳하지 못해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거듭되다 보면 누군가는 이것을 알게 되고 소문이 퍼질 가능성이 있다. 잦은 꼼수 사용은 뒷담화의 대상이 되면서 언젠가는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사실 영수증 처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이러한 사용내역을 보면서 경험상 가지는 추정과 판단이 있다. 이들에게 의심을 제공하는 행위는 언젠가는 레이더에 걸려 창피함을 당하거나 회사 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소탐대실로 가는 길이다. 혹여 회식비로 과도하게 썼다면 있는 그대로 얘기하여 용인을 받는 것이 속 편한 일이다.       


   

견제받지 않는 법카 사용, 누군가는 보고 있다


법인카드 사용에는 직급이 아주 높은 경영진도 특히 유념해야 한다. 이들에게는 법인카드 사용에 대한 견제나 감시가 느슨한 경우가 많아 직원 신분일 때보다 눈치를 덜 보고 비교적 손쉽게 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규정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하는 오남용의 길로 접어든다.


대표이사나 최고위 임원이 갑자기 물러나거나 청문회 등에서 공직 후보자가 문제가 되는 사례를 보면 법인카드의 지나친 오남용이나 회사자금의 유용 등 돈 문제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오남용이란 잘못된 유혹의 덫에 빠져선 안 된다. 모범이 되지 않으면서 직원들에게만 엄격함을 요구해선 제대로 영이 설 리 없다.


그런 면에서 오너가 있는 회사의 전문 경영인 대표이사는 회사 공금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증권사 U와 중견 대기업 H의 재무부서에는 분기별로 대표이사가 쓰는 법인카드의 사용내역을 오너 회장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두 회사의 대표는 법인카드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였다고 한다.      



공금 횡령의 탐욕, 골로 가는 길목


법인카드 사용 승인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것은 임직원들의 오남용을 견제하거나 막고자 함인데 이를 피하고자 다른 경로로 비자금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권고사직이나 해고의 길로 가거나 심하면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중견 N사의 K부장은 법인카드 사용이 엄격해지자 거래처에 부풀려진 세금 계산서를 청구하게 한 다음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아 비자금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돈으로 직원들과 회식을 하거나 골프를 치는 데 썼다고 한다. K는 회사의 배려로 형사고발은 피했지만 횡령한 돈을 물어내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때까지 잘 나가던 K의 직장생활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문업계 K사의 G수석은 외부 인건비를 과다 계상하여 회사에 청구했다. 외부의 P에게 상당액을 지급하게 한 다음 G의 계좌로 다시 돌려받은 것이다. 물론 G와 P의 합의로 이뤄진 횡령이었지만 추후 G와 P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게 됐다. 이 일로 G가 그때까지 쌓아온 명성은 실추되었고 회사는 물론 업계에서 추방되다시피 했다.



더 높이 더 멀리 가려면 떳떳해야  


좋지 않은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했지만 사실 직장인 대다수는 법인카드를 업무적 용도로 규정에 맞게 사용하고 있으며 회사의 공적인 돈에 손을 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회사의 공적인 돈과 재물에 꼼수나 탈법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혹은 직책을 갖게 됨으로써, 또 직책이 올라갈수록 더해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작은 것에 대한 탐욕부터 억제해야 한다. 까딱하다간 더 무서운 탐욕으로 커질 수 있음이다. 누군가는 이를 유심히 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결정적일 때 작은 것으로도 털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위조 증명서나 위장 전입 그리고 법인카드나 공금의 유용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르는 경우를 우리는 목도하지 않았던가.


더 멀리 더 높게 가야 할 직장생활이 몇 푼 되지 않는 법인카드의 꼼수 사용으로 잠재 리스크가 되거나 브레이크가 걸려서 되겠는가. 이런 일일수록 스스로가 떳떳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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