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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칼럼니스트 Jul 25. 2022

잠 못 이루는 임원의 세계

#임원의세계 #잠못이루는임원의세계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


20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 오후였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 눈에 번쩍 들어오는 헤드라인을 발견했다. ‘메리츠화재 임원 절반 해임’이라는 기사였다. 기사를 보니 헤드라인 그대로 5대 손해보험사 중 하나인 메리츠화재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갑자기 대표이사 사장이 사의를 표하고 30명 안팎의 임원중 반씩이나 해고했다는 것이다. 당일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 내용이다.     


‘메리츠화재가 임원의 절반을 해임하는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메리츠금융지주와 의견이 충돌한 남재호 메리츠화재 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보험사의 경영환경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지만 한 회사에서 이처럼 임원 절반을 해고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는 23일 14명의 임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기획홍보, 기획총괄, 신채널, 손해사정 담당 등 경영지원라인이 대거 포함됐다. 이번 임원 구조조정은 비밀리에 전격 단행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남 사장이 이번 임원인사에서 퇴임은 없다고 공언했고 오히려 상무보에서 상무로 승진하는 사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올 정도였다”며 “특히 본사 경영지원 쪽 임원이 대거 아웃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라인 갈등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남 사장은 임원 구조조정에 앞서 지주에 사의를 표명했다. 지주와의 의견 갈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화재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지난 19일 지주 주최 임원송년회에서 남 사장은 반대의견을 표명했지만, 지주가 그대로 감행했다”며 “남 사장 입장에서는 차포를 떼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츠화재가 30명의 임원중 1/2에 달하는 14명의 임원을 감축함에 따라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조조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리츠화재 내부에서는 200여 명가량의 인원 감축이 뒤따를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너무 생뚱맞고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특히 이 회사는 필자와 업무 관계가 꽤 있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그래서 뉴스를 접하자마자 바로 내용을 파악하였는데 사실이었다. 이 일로 업무 파트너였던 임원도, 그리고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해임되었다. 12월 23일에 통보를 받았다고 하며 짐을 싸고 회사를 떠난 날이 그다음 날인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무리 임원이 계약직이라지만 보기 드문 안타까운 일이었다.     


임원은 우스갯소리로 ‘임시직 직원’의 준말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뜻이다. 위의 예는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삼성그룹에서도 임원승진 발표 하루 전날 퇴임이 확정된 임원들에게 통보를 해주고 다음 날에 짐을 싼다고 하니 대개 마지막 순간의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임원들은 연말 승진시즌만 되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 일쑤다.



성공의 상징, 그러나 평균 5.2년 재직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일군 ‘초격차’의 저자 권오현 회장도, 신한금융지주의 조용병 회장도, 고졸 CEO의 신화를 만들어 낸 LG전자의 전 조성진 부회장 등 이 시대 대표적인 CEO들도 평직원부터 시작하여 초임 임원을 거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임원이 된다 해서 누구나 그다음 스텝으로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임원으로 승진했어도 몇 년 만에 회사를 떠나거나 다음 직급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그만둬야 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기업 경영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우리나라 10대 그룹 임원의 승진과 퇴진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퇴임 임원의 평균 재직기간은 5.2년, 그때 나이는 54.5세였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임원으로 승진했다 하여 앞날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새로운 생존 전쟁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또 이 같은 조사결과가 전체 임원에 대한 평균임을 고려하면 초임 임원의 경우, 재직기간이 이보다 짧고 그때 나이도 50세 초반에서 중반 정도 될 것이므로 임원이 되어 펼치는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직원으로 남아 있다 하여 정년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고 또 언제 퇴진의 압박을 받을지 모르기에 대부분 직장인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 일부 기업이 정년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임원의 길을 일찍이 포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진 욕구가 사라진 사람,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 회사가 긍정적으로 평가할 리 없으며 개인적으로도 무기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원의 짧은 재임 기간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임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이다. 또 그 길을 거쳐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고, 더 많은 것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도전은 직장생활의 동기부여가 된다. 그렇다면 임원이 되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임원이 되면 달라지는 것 중에 첫째는 연봉이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부장 직급에서 임원이 되면 연봉의 상승은 그전 직급에서의 연봉 인상과 비교할 수 없다. 오르는 연봉만 수천만 원에서 때로는 억대가 되기도 한다. 성과급의 규모도 이전보다 훨씬 많다. 경제적으로 걱정을 좀 덜 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둘째는 복리후생이다. 임원에게 승용차를 지급하는 회사도 많으며 골프 회원권이나 휘트니스 이용권을 지급하기도 한다.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 또는 대학병원 등에서 본인을 포함 가족까지 종합검진을 받게 하는 회사도 많다. 법인카드에 대한 사용 권한과 범위도 넓어지며, 업무 범위의 확장과 더불어 사무 공간에 변화가 생겨 별도의 방이나 좀 더 좋은 공간에서 일하게 된다.


셋째는 업무 영역이 확장되거나 권한의 범위가 커진다. 은행의 경우 지점장을 맡다가 임원급인 본부장이 되면 특정 권역을 맡아 영업을 총괄 지휘하거나 본사에서 여러 부서장을 둔 본부장이 된다. 예컨대 경영기획본부장, 마케팅본부장, 경영지원본부장 등이다. 일반 기업에서도 파트장, 그룹장, 팀장, 부장 등의 직위로 10명 안팎의 소규모 부서를 이끌다 그런 부서 여러 개를 지휘하는 수장이 된다.


넷째는 성취감과 자부심이다. 임원승진은 당사자에게 성취감은 물론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그간 고생에 대한 심리적 보상과 함께 자부심을 준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삶의 공간에 진입하는 것이며 따라서 커다란 동기부여가 된다. 고객사나 사회적 시선에도 변화가 있다. 회사를 대표하는 임원으로 존중받고 인정받는 것이다.


이렇듯 임원으로 승진한다는 것은 직장생활의 날개를 다는 분수령이 된다. 그리고 그 날개를 더욱 펄럭이며 창공을 향해 힘차게 비상할 기회가 주어진다.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앞으로 헤쳐나갈 일들은 그 격과 급이 부장 때와 엄청 다르다는 사실이다. 책임의 범위가 커지면서 여러 고민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에게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인가.          


더 크게 다가오는 스트레스, 잠 못 이루는 밤


첫째는 실적에 대한 압박이다. 이는 부장급일 때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실적이 좋지 못하면 다음 직급으로 승진은 기대할 수도 없거니와 임원 재임 기간 자체가 짧아질 수 있다. 임원은 보통 매년 연말이면 실적을 평가하여 재신임을 받는데, 특정하게 임기가 주어지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런 경우도 드물고 또 그것과는 상관없는 것이 임원의 임기이다. 대기업에서 임원승진하고 4년 차가 되기 전에 반 이상이 그만둔다고 하는데 임원들이 받는 실적 스트레스를 짐작할 만하다.      


두 번째는 직원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임원 첫해 발생한 여직원 공금 횡령 사건으로 인해 인사상 불이익을 크게 받은 바 있는데, 바로 그와 같은 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타부서에서 전근해 온 여직원이 이전 부서에서부터 공금을 횡령해오다 부서가 바뀌자 우리 부서에 와서도 횡령을 하여 이전 부서의 공백을 메꾸었는데, 그 일로 필자와 담당 팀장이 감호처분(호봉을 깎는 징계)이라는 중징계로 책임을 진 것이다.


이처럼 휘하 누군가가 잘못을 범하면 리더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 최근 발생한 포스코의 여직원 성폭력 사건에서 관련 임원들이 경고나 감봉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가벼운 징계였다. 이 징계가 사회적 비난을 초래하는 이유이다. 군대에서 보면 일선의 사병들에게 구타 등 문제가 생기면 상급 지휘관이 책임을 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 번째는 다음 직급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보통 상무라는 초임 임원에 진급하면 다음 직급인 전무까지 가는 과정이 있는데, 상무 4명 중 1명 정도만 전무로 진급한다고 한다. 상무라는 직급 내에서도 두 단계가 있어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탈락하기도 하며, 거기를 넘어섰어도 전무까지 진급하는 길은 25% 정도의 비율밖에 되지 않는다. 전무에서 부사장 가는 길도 세 명 중 1명 정도, 부사장에서 사장에 이르려면 하늘이 점지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 임원들의 진급 스트레스는 얼마나 심하겠는가. 상무에서 전무로 진급하지 못하면 옷을 벗게 되는데, 그 나이가 50대 초반에서 중반인 경우가 많다. 진급에 목메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승진하려면 성과도 좋아야 하고 직원들도 문제없어야 하며 평판과 충성심도 상위권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성과를 내고도 진급하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난 많은 이들을 봐왔다. 삼성은 임원승진 발표 전날 대표이사실에 들어가 그동안 수고했다며 퇴임을 통보받는다고 하는데, 그런 임원들 다수가 필자가 보기엔 한결같이 유능하고 성실하며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임원 자리를 늘릴 수 없고 또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기업의 현실 속에서 언젠가는 맞이할 운명이다.


초임 임원의 단계를 넘어 다음 직급으로 가려면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강조했듯 자기만의 깃발을 임팩트 있게 꽂는 도전을 해야 한다. 도전하지 않고 전임자가 해왔던 일을 안정적으로 하면 집에도 안정적으로 간다는 사실이다.     


  네 번째는 힘든 일, 도전적인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새로운 시장이나 고객을 개척해야 하는 일이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나 빅 클라이언트를 새로운 고객으로 만드는 역할을 누구에게 책임을 맡기겠는가. 당연히 임원이 진두지휘해야 한다. 그래서 그 어려운 일을 수행한 성과로 인정받아야 한다. 직원들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뒤에서 보고나 받고 결재만 하는 임원은 다이나믹한 시대를 살아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신사업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임원이 앞장서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뒤에서 서성이며 말로만 채근하는 임원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 새로운 도전의 시작


이렇듯 임원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삶이 열리는 기쁨과 함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길목이 된다. 그리고 임원으로 산다는 것은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뿌듯함과 함께, 책임감과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수많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하는 삶이다. 권한과 책임이 양면이듯, 그것이 주는 자부심과 고뇌도 양면이 된다.


임원의 삶에 대해서는 2021년 발간된 ‘임원으로 산다는 건’이란 책을 참고할 만하다. 현직 임원 20명에 대한 생생한 인터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임원이 되는 준비 과정부터 임원이 된 이후 성과를 창출하는 리더십과 겪게 되는 스트레스까지 다양한 관점을 조명하고 있다.


임원이 된다는 사실은 너무 기쁘고 보람차고 자부심 있는 일이지만, 임원이 되어 가는 길은 이처럼 역동적이고 기회와 위기가 분명한 길이다. 그래도 직장인이면 평직원을 넘어 임원의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은 누구나 갖는 소망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길을 거쳐 정상에 올라간다.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설령 정상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하차했다 하여 그 누가 성공하지 못한 직장생활이라고 감히 얘기하겠는가. 임원승진 그 자체만으로도 1% 안에 들어가는 좁은 길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것이다. 또 임원의 삶에 잠 못 이루는 숱한 날들이 있다 하여 겁낼 것 하나 없다. 다 견디고 이겨내며 가는 것이다. 그때까지 올 때도 이미 숱한 날들을 이겨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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