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에 비친 회사와 나, 프로불만러에서 벗어나야
“꼬우면 우리 회사로 이직하던가”
“음료와 마카다미아넛츠(땅콩의 일종)를 서비스하던 승무원, DDA에게 혼이 남. 왜 음료와 마카다미아넛츠를 왜 봉지째 주느냐? 규정이 뭐냐? 한참 질책을 받는 상황, 이를 본 사무장에게 DDA, 규정에 관해 질문(질타 어린),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DDY의 하사품인 갤럭시노트10.1을 꺼내 규정을 보여 줌(당연히 잘못 없는 객실승무원). 당황한 DDA, 무안한 상태에서 사무장을 향한 한 마디 “내려””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를 통해 처음 알려진 그 유명했던 대한항공 여객기의 땅콩 회항의 고발성 글이다. 여기엔 내부 직원들에게만 통용되던 조현아 부사장과 조양호 회장을 칭하는 영문 약자가 쓰여 있어 신빙성을 더했다. 이글을 누군가가 개방형 공간에 퍼트리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내용이 사실임이 밝혀지자 조현아 부사장은 경영에서 물러남은 물론 재판까지 받았다. 블라인드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신입사원에게까지 희망퇴직을 강요해 논란이 됐던 두산인프라코어 역시 블라인드가 진원지였다. 희망퇴직을 권고받은 20대 직원이 “너무한 것 아니냐, 하반기 공채 지원도 할 수 없는 시기”라며 푸념하듯 올린 글이 인터넷상에 퍼졌다. 파장이 커지자 박용만 회장이 직접 나서 “신입사원은 희망퇴직에서 제외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카카오 ‘인사 평가 논란’ 역시 시작은 블라인드였다. 여기에 올라온 ‘유서’ 형식의 글이 문제가 됐다. 카카오는 인사 평가를 할 때 직원들이 동료를 상대로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냐’는 답변을 받았는데, 답변 결과를 당사자에게 알려 압박과 스트레스를 준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었다.
해당 글을 계기로 카카오 인사 평가 제도에 대한 불만 글이 후속으로 올라왔고 논란은 더욱 커졌다. 결국, 카카오 측은 인사제도 관련 간담회를 열어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너희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
“꼬우면 너희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던가”
개발 예정지에 대한 LH 직원들의 땅 투기로 전국이 들썩일 무렵, 블라인드에 올라왔던 LH 직원의 글이다. 이 글이 알려지자 국민 대다수에게 공분을 샀고 특히 취업을 준비하거나 다른 직장에 다니는 2, 30대의 젊은 사람들에겐 더 큰 분노를 유발했다. 블라인드에 올린 철없는 직원 글 하나가 LH를 곤궁에 빠트림은 물론 전국적인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다.
다양한 정보공유의 목적, 블라인드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는 위와 같은 고발성 글로 유명하지만, 실제는 이런 글 외에 더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 거기를 들여다보면 상호 정보획득과 공유를 위한 글, 회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불만, 신변 잡담 등이 주류를 이룬다.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없는 익명이다 보니 부담 없이 다양하게 올리는 것이다.
예컨대 인터넷 카페처럼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거나 정보를 구하는 내용이나 잡담성 글도 상당수 있다. 토픽별로 분류된 블라인드 토픽 주간 베스트에 올라온 글을 몇 개만 소개해 보자.
“집 때문에 혼인신고 미뤘는데 아이가 생겼어”
“결혼할 때 친구들 보통 몇 명 정도 와”
“차 소모품 비용 원래 이렇게 비싼가요”
“서브웨이 비밀의 최애 주문 레시피 공유합시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은 이와 더불어 업계 정보공유를 위한 글이 주류를 이룬다. 대표적인 것이 전, 현직 직원들이 평가한 회사 리뷰이다. 거기엔 커리어 향상, 업무와 삶의 균형, 급여 및 복지, 사내 문화, 경영진 등 다섯 항목에 대한 평가와 함께 장단점이 나오는데, 직원들이 일하며 느낀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보자
“배울 점은 많지만 워라밸은 기대하기 힘든 회사” - 전문업종 기업
“쉬는 날이 없지만 그만큼 페이로도 불가능” - 대기업
“모든 면에서 무난하나 비전 없는 회사” - 중견기업
“워라밸만 보장되고 일이 재미없는 회사” - 공기업
또 누군가 그 회사에 대해 궁금한 내용을 올리면 관련된 사람이 이에 답변도 해주어서 업계 간 정보공유에 도움이 된다. 직군별로 정보를 서로 교류하기도 하며, 신입이나 경력 등 채용정보 사이트의 역할도 한다.
이처럼 직장인들 간 관심 있는 정보를 얻거나 교류하는 앱으로서 역할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사용 행태는 한국노동연구원이 2021년 5월부터 7월까지 블라인드 사용자 2,289명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이 조사에 따르면 블라인드를 사용하는 이유로 ‘우리 회사 또는 업계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응답이 3.86점(5점 만점에 보통응답은 3점임)으로 다른 응답보다 가장 높게 나타났다.
거침없는 내용, 부담 갖는 회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 간혹 외부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앞서 예와 같은 고발이나 불만의 내용이 사회적 의제를 담아 휘발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블라인드 글 중 그러한 내용이 있는지를 살피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모 임원은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 외부로 유출돼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생기면서 게시글과 댓글을 챙겨보기 시작했다”며, “직원들에겐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사소한 뒷담화에 기업이 지불하는 비용이 너무 큰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기업이 블라인드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블라인드 효과‘란 말도 생겨났다. 블라인드에 글을 올리면 바뀐다는 얘기다. 블라인드 정영준 前 대표는 “지인들로부터 블라인드에 불만을 올린 지 얼마 안 돼 문제가 개선됐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며 “기업 측이 블라인드에 올라온 직원 여론을 살펴 반영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편, 블라인드를 소통이 잘되지 않는 권위적인 기업문화의 또 다른 얼굴이란 얘기가 있다. 문화평론가 강태규씨는 “상명하복식 문화 때문에 기업 내에서는 아래에서 위로의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다”며 “그렇다 보니 사내 의사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이런 식의 뒷담화로 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설문 조사를 보면 회사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때 어떤 채널을 활용할지를 묻는 설문에 ‘상사면담’(31.1%)과 ‘블라인드’(30.2%)가 비슷하게 나타났고, 이어 ‘팀미팅’(15.3%), ‘노조’(11.1%) 순이었는데,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권위적인 회사일수록 블라인드 같은 익명 앱에 기대려는 비율이 높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다양한 글 중 단연 관심을 끄는 것은 경영진이나 회사의 불법적인 정책에 대한 고발성 내용이다. 앞서 대한항공이나 두산중공업, 카카오가 그랬듯이 블라인드는 회사나 경영진의 잘못을 내부의 채널을 통해 발신할 수 없을 때 직원들이 찾게 되는 대표적인 채널이 되었다.
이제는 직원들의 이익이나 인권을 침해하거나 억압하는 회사나 경영진의 비도적적 행위를 회사라는 울타리에만 담아두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블라인드를 비롯한 SNS라는 다양한 채널들이 바로 대기하고 있어 기업의 모든 경영 상황은 오픈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직원에게 막말을 일삼는 경영진이 있거나 직원들의 이해에 크게 반하는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 하면 외부로 공개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내용상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걱정할 것은 없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문제이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일수록 내부의 적정 채널을 통해 충분히 소통하여 직원들의 이해나 정보가 부족하지 않도록 세심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만이 커지면 내부의 상황은 외부로 공개될 수 있다.
회사가 반응하지 않는 불만의 글
관심을 끄는 두 번째 유형은 단순 불만성 글이다. 연봉이나 복지, 조직, 사람, 환경, 제도 등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불만을 여과 없이 투척하는 것이다. ‘연봉이 적다’, ‘상사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야근이 너무 많다’, ‘이번 성과급은 왜 적은 거야’, ‘주니어들 갉아서 매출 올린다’ 등 다양한 형태다. 회사의 공식 채널로 얘기하기 어려운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런 불만은 조그만 규모의 회사부터 글로벌 일류 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회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단적인 예로 삼성전자에 다니면 불만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직원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예컨대 연봉도 높은데 워라밸도 보장되며, 일도 재미있고 사람들도 다 좋은 그런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글로벌 최고 기업인 애플도 쉴새 없이 일하기도 소문난 회사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항상 더 나은 것에 대한 로망이 있고 남의 떡을 더 크게 보는 경향이 있기에 블라인드를 통해 불만도 얘기하고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불만 글에는 내용상 합리적 틀을 가지고 있어 경청할 만한 내용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다. 글을 쓴 이들은 회사의 관련된 누군가가 내용을 보고 개선을 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올린 글이 있기도 하고 그냥 푸념 형태로 올리는 글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블라인드가 회사의 공식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아닌데 회사가 이 내용을 토대로 뭔가를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대한항공, 카카오, 두산중공업 등 고발성 글처럼 당연히 대처해야 하는 내용도 있지만, 단순 불만이나 푸념에 대해서는 공식 대응하지 않는다. 블라인드에 대응하면 할수록 직원들이 내부 채널이 아닌 블라인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내부 채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블라인드가 요즘처럼 활성화되기 이전 잡플래닛이란 회사 평가 사이트가 이런 역할을 했었다. 그때 G사의 CEO는 잡플래닛에 올라온 직원들의 다양한 불만과 평점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불만 중 몇 가지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자 G사의 직원들은 더욱 다양한 불만을 거기에 토로하기 시작했고, G사는 결국 대응을 멈추게 되었다. 내부에서 소통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지만 반복적으로 비슷한 사유로 올라오는 직원들의 불만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고질적인 문제일 텐데 블라인드가 아니더라도 이미 사내 여러 채널을 통해 불만이 표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문제를 안고 직원들의 인내를 기대하거나 모른 체하며 가다가는 더 큰 불만에 봉착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프로불만러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
그런데 블라인드 이용자 중에는 수시로 불만을 표시하는 소위 ‘프로불만러’들도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은 회사에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불만은 물론이고 비꼬거나 냉소적으로 반응하면서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 뿌리게 하는 것이다. 내용을 보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 직무에 충실하지 못한 채 분위기만 흐리게 하는 것들이 많다.
직무만족도가 낮을수록 블라인드에 대한 사용 만족도가 높다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결과가 이를 대변한다. 이는 회사 자기 직무에 불만인 사람이 블라인드에서 상대적인 만족감을 얻는다는 뜻인데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직장생활이 온전할 리 없다.
업무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자부심도 없는 사람이 블라인드라는 익명 뒤에 숨어 합리적 논거를 갖지 못한 채 번번이 회사에 트집 잡거나 불만을 제기하면서 동조를 구한다면 이는 루저 직장인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한 ‘프로불만러’의 불만질은 회사 생활 등 일상생활에서도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어디서든 환영받기 어렵다.
불만을 업고 살기보다는 ‘업’의 본질에 집중해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품성을 다듬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참조 : Naver blog, lunar’s unknow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