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일감 없는 프리랜서(a.k.a. 백수) 생활에서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시간관리다.
회사를 다니거나 프리랜서를 할 때 필수 회의 일정 외에는 대부분 프로젝트 흐름에 맞춰 시간이 흘러갔다. 프로젝트 수행 초기 착수-중간-최종보고에 따른 주요 포인트 스케줄을 잡고, 그에 맞춰 월간 목표와 주간 목표, 중간 크기의 일정을 설정하면, 그 주 동안 해야 할 일들은 회의나 미팅 등을 제외한 공간에 배열해 일간 스케줄을 진행했다.
그날그날 나 스스로 정한 분량을 해내고, 연구진 및 클라이언트와의 공유와 논의가 잘 이루어지면 되는 문제라 아침에 늦잠을 자건, 새벽까지 작업을 하건 시간을 쓰는데 어떤 불안도 쫓김도 없었다. 물론 마감 즈음이 되면 귀신같이 그렇게 지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아지긴 했지만.
일감 없는 프리랜서(a.k.a. 백수)로 살면서 매월과 매주, 하루하루를 어떻게 써야 할지 참 괴롭다.
회사 출근했을 때는 ‘이 정도 했으면 점심시간이겠지?’하고 시계를 보면 10시 반 또는 11시밖에 안되어있었는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 잘 간다. 시간이 이렇게 짧은 건 보고서 쓸 때뿐인 줄 알았는데, 그때보다 지금 더 시간은 다급한 것 같다.
나의 불규칙한 규칙적 일상
부모님 댁에서 펫시터로 한 달 반 정도 지내다 돌아온 게 6월 말이었다. 그때는 한 달 반 동안의 생활리듬이 있어서인지 7시 반이면 눈이 떠졌다. 그러면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고 공부해야 할 책을 읽고 넷플릭스를 좀 보고, 또 공부할 책을 읽고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 11시가 좀 지나 잠자리에 들었다. 이 생활이 한 달 정도는 지속되었던 것 같다.
1. 불규칙한 수면의 일상화
하지만 혼자서 살다 보니 (게다가 나는 나 자신에게 워낙 관대한지라) 생활리듬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이 12시를 넘더니 어느새 2시를 넘기는 요즘은 8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도 9시 반까지 잔다.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sns를 둘러보고 나면 10시가 지나고, 그때부터 운동을 하면 점심시간이 된다. 왓더 오전 삭제..!!
2. 불규칙한 활동의 일상화
그리고 공부할 책을 읽는다고 해도, 당장의 결과가 없으니 (일을 할 때는 월급 혹은 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내가 뭔가를 했다는 의미이자 근거였죠) 내가 뭘 하고 사는지 기록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노션에 일간 활동을 적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고민은 (1) 행위 후 타임 체크 개념으로 기록을 할 것이냐, (2) 하루 일과를 정해두고 그 시간 안에 행위를 할 것이냐였다.
(1)을 선택하면 하나의 행위가 너무 지지부진하게 길어진다는 점이 문제였고, (2)를 선택하면 그 시간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분량이 너무 적어졌다(스피드를 올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내가 그걸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 (6월 말까지 다 읽기로 했던 책은 7월 첫째 주까지 미뤄지더니, 그 이후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사실 그렇다 보니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래요’, ‘언제까지 일감이 없겠어요?... 그럼 취직해야죠. 그때까지는 즐길래요’라는 자기 합리화의 길에 들어선 것도 없지 않아 있는 요즘이다.
3. 그나마 규칙적인 일상
이렇게 적다 보니 하는 것도 없으면서 시간에 얽매이는 사람 같지만, 백수의 시간은 금과 같아서 정말 더 소중히 대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6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가장 잘하고 있는 게 운동이다. 가급적 매일 아침 일어나 운동을 한다. 목표는 7시 반 기상, 10시 전 마무리지만 대체로 점심시간 전에 마무리하고 있다.
스트레칭 - 플랭크 - 스쿼트 - 와이드스쿼트 - 하프스쿼트 - 팔운동이 루틴이었고, 이번 달부터 플랭크 앞에 10분짜리 복근 운동과 마무리 운동으로 골반 교정 스트레칭을 추가했다. 근육이 나오려면 있는 지방부터 다 빠져야 해서 앞날이 멀지만 어쨌든 가장 규칙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관건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폭식의 욕망을 잠재우는 법. 대체로 잠재우지 못하지..)
4. 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가
일감이 사라진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나도 일감을 구하려는 큰 노력은 안 한다. 대신 아주 오랜만에 내게 주어진 이런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지 계속 고민 중이다. (브런치도 그중의 하나). 주중과 주말의 경계를 짓고, 즐기는 것과 배우는 것의 선을 정하고, 나를 관리할 수 있는 정도만큼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쓰는 게 잘 쓰는 건지 아직 잘 몰라서인지 여전히 너는 시간에 지배당하는가, 네가 시간을 지배해야지 따위의 마음의 소리들이 계속 치고받기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만드는 게 무슨 소용이냐 싶을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고 싶고, 그래서 배우고 싶고,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근육도 만들고, 새로운 기술도 익히고 싶은 사람이라 그럴 수 있는 시간들을 확보하고 채우고 싶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필수적으로 해야 할 것을 우선 배치하고, 그다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군데군데 배치하고, 새로운 것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한다. 이 활동들을 지키고 나의 건강 또한 지키기 위해 규칙적인 수면 생활과 운동, 식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 어디선가 ‘백수에게 상징되는 일상의 여유로움에 대한 인식의 반작용’ 혹은 ‘그간 살아왔던 삶의 패턴에 대한 강박’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지만, 아무렴 어떠냐 싶다. 그 또한 내가 알고 있으면 되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