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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Aug 18. 2020

기분과 생활 면에서 안정감을 갖고 싶어요

나는 간사하니까요

지금 이 상태가 기분인지, 다른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해야만 할 것 같다는 강박,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 기회가 더 있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는 불투명함... 이 상태의 시작은 지난주 전 직장동료들과 오랜만의 만남을 계획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별다른 건 없었다. 휴직 중이던 전 동료가 복귀 없이 이직한다는 소식, 단 하나가 계기였다.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그저 단순히 대단하다, 역시같은 감탄, 놀라움과 함께 나는 어떡하냐는 자괴감과 초조함이 생겼다. 나 뭐 하고 있냐..?


회사 일에 치이고, 관계에 치여서 몇 달만 쉬거나 이직을 하자는 마음을 먹었던 건 이미 2년 전이다. 그저 해오던 것처럼 하던 일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게 작년 봄이니, 지금 나의 상황은 절대 나의 선택도 예상했던 결과도 아니다. 비자발적 백수로서 일감을 찾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에서 꽤 단단한 멘탈 관리가 필요하고, 그게 잘 안될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요즘이다.


그냥 푹 쉬다 보면 하고 싶은 게 생기지 않을까? 그동안 못 잔 잠이라도 푹 자고 나면 에너지도 채워지지 않을까? 모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우려고 기를 쓰는지, 마음 가는 대로 지내면서 다른 건 좀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내 안의 생각들과 지금 이 시기에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들이 매번 부딪치고 부딪친다. 그러다 보니 전 동료의 이직 소식은 (1) 내가 채용공고를 검색하게 만들었고, 우연히 발견한 채용공고를 두고 (2) 자소서를 써야 하나,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경력 기술서를 이참에 쓸까, (3) 이게 내가 원하는 게 맞을까? 근데 이 나이에, 이 경력으로 새로운 걸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뻔한데, 그나마 엇비슷한 데 가는 게 낫지 않을까, (4) 이런 공고가 언제 또 나오겠냐, 지금 이렇게 내 눈에 걸린 것도 운명 아니겠냐 같은 마음의 소리들까지 낳게 되어버렸다.


맞다. 이 글은 자소서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쓰고 있는 글이다. 내 경력 정도면 꽤 나쁘지 않을 텐데의 자신감으로 쉽게 도전하려다가, 오랜만에 써야 하는 연구계획서를 앞에 두고 이거 뭐  다시 공부해야 할 판이라 자신감이 바닥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못할 것도 없지만, 할 의지와 열정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럼 이 일을 한다는 건 (1) 결국 그저 먹고살기 위한 길을 또 선택한다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 나의 끝없는 물욕을 생각했을 때 통장잔고를 위해서도 일을 하는 건 맞을 거 같은데, 그렇게 일을 선택하는 게 정말 맞는 것인가 당연히 또 숙고를 해야 한다. (*) 근데 숙고를 하고 또 숙고를 한다는 게 또 다른 회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가 나의 성향이긴 하나,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또 그 챗바퀴를 타고 돌고 돌고 돌면서 정작 써야 할 논문은 안 쓰고 졸업도 못하고, 그냥 그저 그렇게 (**)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그 일상에 또 젖어버릴까 봐 우려되기도 한다. 나란 인간이 얼마나 현실 안주를 잘하는 인간인지 내가 너무 잘 아니까.


올 한 해는 쉬면서 그동안 갇혔던 시야와 관계를 깨고 부수고 넓히고, 새로운 공부도 하고, 논문도 좀 써서 졸업 발판도 만들어 놓고, 강아지와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을 한 게 고작 7월 말인데, 이렇게 간사한 나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마음이 간사한 건지, 통장 잔고가 간사한 건지, 나의 사회적 물욕이 간사한 건지. 고민은 계속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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