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다시 튀어 오르더라고요
대학생 때, 교내 모의투자에 참가했다. 운이 좋게 수상권에 들었고 시상식 공지를 보고 참석했다. 같은 시간, 과 행사가 근처 호텔에서 있어 당시 친구들은 먼저 그곳에 가고 시상식엔 혼자였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다가 수상자들은 잠시 밖으로 나오라는 얘기에 나갔는데, 이미 그들은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에 어떻게 상을 받을지, 수상자 누구는 어디 졸업여행을 갔는지, 복장이 제대론지 떠들었고 난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옆에 서있었다. 얼추 얘기가 마무리될 즈음 “저 몇 등인데요, 오늘 시상에 없어도 되나요?”라고 관계자에게 물었다. “네, 가셔도 돼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 질문부터 자존감이라곤 바닥에 처박혀 있는 것 같지 않나? ‘없어도 되나요?’ 라니.... 상금은 어떻게 받는지,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더 물어보지도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가서는 안될 자리에 갔던 것 마냥 부끄러웠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좀 늦었지만 과 행사에 갔다. 거기도 내 자리는 없었다. 연회장은 교수님들과 졸업생, 재학생 선후배들로 가득했다. 어정쩡하게 앉아있다 나왔는지, 자리를 만들어준다는데 괜찮다고 말하며 나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여기도 내가 있을 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애들한텐 상금 받아서 삼겹살 사준다고 했는데,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였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은 사라졌다. 나를 울린 건, 나를 비참하게 만든 건 그 누구에게도 나라는 존재가 인식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상금을 받았는지, 왜 행사는 들어왔다 그냥 갔는지 묻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겐 관심이 없었다. 대회에서는 이미 시상대에서 상 받을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일정 확인을 하고, 복장까지 요청을 한 상황이었다. 난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쭈뼛거리는 일인일 뿐이었다. 골목에 숨어 눈물을 닦으며 스스로를 깍아내렸다. 쪽팔리고 비참한 구렁텅이로 나를 몰았다. ‘이게 다 1등을 못해서 그래, 이게 다 제대로 친구를 못 사귀어서 그래, 이게 다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이 학교를 와버려서 그래, 이게 다 네가 부족해서 그래’. 그러다가 이를 악물었다. ‘다음에는 꼭 1등을 할 거야, 모셔가는 사람이 될 거야, 어중간한 것 따윈 하지 않을 거야’
지금 나는 결국 아싸가 되었고, 세상의 규칙은 존중하되 최대한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노력했다. 구축된 세상 속에서 1등을 하지 못할 바엔 그 세상을 나와버리는 게 내 선택이었다. 비겁한가? 솔직히 좀 불쌍하다. 여전히 난 그 세상 안을 엿보고, 그 세상 속에서 활개 치고 싶고, 나라는 존재 그 자체로 그 세상에 편입되고 싶어 한다. 그 세상이 나를 모셔가기를 바란다. 용의 꼬리가 될 바엔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머리니까. 루저다.
돌이켜보면 정규 세상의 트랙을 제때 밟지 못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잃어갔고, 또 나를 찾아갔다. 세상이 말하는 패배자의 삶을 사는 동안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오히려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내가 꿈꿔왔던 세상의 부조리를 알게 되었고, 내 나름의 생각을 세우고 내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어릴 적부터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는 나’를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나’를 꺼낼 수 있었다. 누가 이상하게 생각하든, 또라이라고 하든, 천둥벌거숭이라고 하든 난 내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 나름대로 나의 자리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저 어중간하게,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자리는 어디인가? 여전히 그 자리는 없다. 정해져 있지 않다. 이건 주어진 값이 아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떠나온 지금,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그 선상에 서있는 것 같다. 나는 또 어디로 흘러들 것인가, 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선택지라는 게 주어질까? 다시 한번 옵션을 만드는 시간이다. 다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 언제가 새로운 교집합이 만들어질 순간이 오지 않겠나. 그럼 거기에 다시 똬리를 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