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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Jul 09. 2020

일을 그만두고 요즘 가장 열심히 하는 건 2

오늘도 난 극장에 간다_팬데믹 시대의 영화관


지난주 중 사흘은 극장에서 보냈다.


극장에 안 갈 때는 넷플릭스를 봤다.

넷플릭스가 주는 감흥은 극장의 그것과 다르다.


콘텐츠의 차이를 떠나 극장이 주는 그 특유의 분위기,

코로나로 띄엄띄엄 앉아 있는 타인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보며 갖게 되는 어떤 공명


이건 내가 아무리 홀로 방구석에서 커다란 모니터로, 스크린으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해도 범접 불가능한 어떤 감흥을 내게 남긴다.


그래서 난 지금도 어떤 영화를 보러 언제 극장에 갈지 시간표를 짠다.


지난주에 본 영화들은 국도극장만 빼고 옛 필름 영화들을 디지털로 변환한 작품이었다.

낭트의 자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스플렌도르...

영화적인 이야기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고 또 극장에 대한 이야기고,

영화로 봐서 좋은 이야기들이었다.

스플렌도르@서울아트시네마

그중 스플렌도르는 사라지는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몰려와 줄을 서고 입석으로 영화를 보고 밤낮없이 바삐 돌아가던 극장 스플렌도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오락거리들이 생기고, 텔레비전에서도 하루에 몇 편씩 영화를 보여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작은 동네의 극장은 찾는 이가 점점 줄어든다.


조르단과 영사기사 루이지는 스플렌도르를 살릴 방도를 강구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시대의 흐름처럼 스플렌도르는 문을 닫는다.

영화관을 가득 채워주던, 하지만 영화관을 찾지 않던 사람들은

스플렌도르의 마지막에 모두 그곳을 찾아 좌석을 채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스플렌도르는 마지막으로 좌석을 가득 채우고,

문을 닫는다.


영화를 보면서 사라져 간 극장들과 존폐의 위기가 끊임없이 제기되던 기존 매체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 신문과 책과 서점과 극장은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하루하루 계속된다.


영화가 끝난 후 <팬데믹 시대의 영화관>이라는 주제로 독립예술영화관 관계자들의 좌담회가 있었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미국이나 유럽의 극장들은 락다운과 함께 문을 닫았고,

한국의 극장들은 휴관을 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문을 닫지 않고, 단축 상영을 하고 재개봉을 했고,

전처럼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많은 이들의 삶이 코로나로 위기에 처했고, 극장과 영화인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영화를 보면서, 극장에 가면서 그 어려움에 대해 별로 지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골목의 단골 식당이 문을 닫는 건 가슴 아픈 일인데, 극장은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좌담을 들으면서 독립예술영화관의 설립목적 상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있어야 했고, 그래서 힘들고 어려웠고, 하지만 제대로 된 정책과 지원은 없었고, 그래서 더 힘들고 어려웠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극장의 존폐를 생각하고 걱정했음을 알게 되었다. 심장이 쿵, 착잡한 마음이 매우 컸다.


영화관은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


관계자분의 저 말씀을 들으며, 나 또한 영화는 필수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얻는 용기, 영화가 나에게 주는 위로,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내가 누리는 자유 이런 건 필수 이상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인데 어떻게 잊고 있었나 싶었다.


해외에서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은 모두 문을 닫게 했고 그중에 영화관도 포함됐다. 하지만 언론과 문화예술인, 관계부처 장관은 영화의 필수성을 얘기했다. 코로나가 수그러들면, 우리 사회의 회복을 위해 문화예술의 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영화의 필수성을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독립예술영화관 운영을 위한 펀딩이 이루어졌고, 해외에서는 버츄얼 시어터를  진행하며 독립예술영화관에 요금을 지정해서 전달할 수 있게 했다. 미국에서는 극장의 비정규 노동자 보호를 위한 펀딩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위와 같은 정책이 쉽사리 시행되지 않았다. 뒤늦게 #saveourcinema가 진행되었지만, 독립예술영화관에 배정된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수의 극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지 않고, 제대로 된 정책도 시행되지 않는 와중에도 극장 관계자들은 극장이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나름의 매뉴얼을 만들며 방역을 했고, 극장의 지속을 위해 논의를 하고 정책을 요구했다. 이들의 노력이 있어서 내가 마스크 하나로 하루 종일 극장에서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임을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더욱 절감했다.


한편으론 앞으로는 현재의 시공간의 집중성을 벗어난 영화 상역, 극장 시스템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극장, 그 공간 밖에서 내가 지금과 같은 감흥을, 공명을 느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제대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극장이 사라져도 새로운 극장이 생기고 그렇게 극장은 영화와 함께 늘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며 천 석 규모의 극장이 몇 백석 규모의 극장으로 쪼개지고, 멀리플렉스에서 더욱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시장 논리에 의해 불가능해지면서 다시 조그만 규모의 독립예술영화관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기능과 방식을 가진 극장이 생기고, 작은 영화를 더욱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다양한 GV들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극장은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약간의 불안이 있다.
진짜 극장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며칠 전 GV에서도 극장이 사라지는 것에 영화인의 언급이 있었다. ‘그래도 영화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얘기했지만 극장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독립예술영화관은 더욱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들이 가진 사회적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영화의, 이야기의 다양성을 보장해주고, 이것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다종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토대를 만들어주고, 많은 이들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실험하는 장을 열어주는 것 등 이런 점들이 독립예술영화관들의 역할이자 기능이고, 사회적 가치가 아닐까.


한 분야의 힘이 강해지기 위해선 내외부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가능해야 한다.


그 기반이자 토대가 작은 영화관들이고 그곳에 영화를 배급하는 작은 (수입) 배급사들이고, 제작사들이고 감독과 배우와 스텝들이고, 마케팅사, 디자인사 등 제반 협력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취약하고 그래서 이런 위기엔 더 힘들다. 이런 현실이 바로 제대로 된 정책이 개입되어야 할 곳이다. 관계자들의 힘으로, 특정한 시민들의 힘으로 난관을 헤쳐가는 건 쉽지 않다.


앞으로 좀 더 많은 논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방식과 도전 과제들을 찾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탐색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의 불안이 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도, 내일도 갈 수 있을 때 가는 거, 이게 가장 큰 일이지만.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서울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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