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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Jun 30. 2020

일을 그만두고 요즘 가장 열심히 하는 건

오늘은 오늘의 라멘을 먹는다

올해 4월 나는 다시 백수가 됐다


올초부터 여차저차 위태로운 프리랜서 생활이 이어질 것 같았으나,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진행하던 일은 더뎌졌고 이 와중에 각자의 역할과 책임, 구조에 대한 이견으로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이 가득한 시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게 우리 세상의 논리니까. 친구는 나에게 주변인이라고 했다. 청소년 시기를 주변인으로 칭한다는 걸 학창 시절에 배운 것 같은데, 이렇게 다시 (우리 사회의) 주변인이 되었다.


복잡한 이야기, 눈물 젖은 빵 같은 이야기, 돌아이 같은 이야기도 많고 많을 테지만 어쨌든 백수가 된 이후로 내가 가장 열심히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저 “나”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걸 찾고, 그걸 실행하는 일이다.


나에게 지금이 첫 백수는 아니다


간단히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1기 시절인 대학 졸업 후 취준생 2년

2기 시절인 대학원 석사 2년, 박사 2년

3기 시절인 대학원 수료 후 취준생 반년

4기 시절인 지금 (2020년 4월~ 현재)

저 시절을 돌아보면 ‘백수니까, 백수라서, 백수기 때문에’ 항상 어중간하게 제대로 하는 것 없이, 나한테도, 남한테도 솔직하지 못하게 어중이떠중이처럼 살아온 것 같다.   


1기 때는 내가 차마 백수가 될 줄 몰라서, 취업이 정말 어려운 것인지 몰라서, 나한테 일어날 일은 아닐 거라고 마냥 생각해서 극심한 자격지심과 패배감, 낙오자의 느낌이 날 휘감았다. 물론 그때도 면접 보러 오라는 회사에 느낌이 안 좋다고 안 가고, 이 회사 저 회사 골라가며 서류 넣는 등 자존심을 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엿한 사회인으로 서지 못했다는 생각, 이미 나이가 26, 27살이 되었다는 막막함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생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는 현실은 너무 힘겨웠다. 그래서 찾아온 게 2기 백수 생활이다. 대학원을 다니던 때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아시다시피 다아는 취준생의 도피다. 자소서에 졸업 후 공백을 너무 길게 남겨놓으면 안 되거든. (그땐 졸업유예도 안됐었다고.)


3기 시절은 더욱 암담했던 게 수료 후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2년 정도 더 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도 했고 원한다면 시간강사도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으나 그렇게 학교에 남아있을 자신이 나한테 없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도. 그래서 되든 안되든 어딘가에 들어가야 했다. 무작정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다행히 상반기가 가기 전 첫 직장을 구했다. 그리고 다시 엄마의 주머니를 털어 서울에 집을 구하고 입사와 퇴사, 창업과 폐업을 거쳐 4기 백수에 진입했다.


돈을 벌어보고 통장에 쌓아도 보니 1~3기 시절 나란 백수가 마음껏 하지 못했던 것, 뭐 하나를 갖기 위해 이런 고민, 저런 생각, 수없는 비교와 비교를 했던 게 떠올랐다. 그땐 시간보다 돈이 정말 금이었다. 다행이라면 1기 시절에나 2기 초기, 나는 큰 눈치 안 보면서 부모님께 용돈 받아서 영화 보고 밥 사 먹고, 책을 샀다. 2기 시절 TA를 시작하고 장학금도 받으면서 용돈도 안 받고 돈을 좀 모으기도 했는데, 그때는 또 그 나름이라도 더 모아보려고 덜 쓰고, 덜 사고, 안 먹고 그랬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 시간 속의 내가 마음껏 자유롭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 내가 돈을 벌어 써야 되는 시기에 내가 벌지 않는 돈으로 사는 게 얼마나 자유롭고 편했을까?


4기 백수가 된 지금,


누구는 몇억을 모으고, 누구는 (은행 지분이 반이라도 어쨌든 자기) 집을 산 이 나이에 난 그간 번 돈을 까먹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격세지감 아닌가? 부모님에 돈 안타쓰는 거, 까먹을 잔고가 아직 있다는 거.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3기 백수 시절처럼 전전긍긍하고 패배감에 빠져 낙오자처럼 쭈글거리고, 이렇게 내 삶이 마흔도 되기 전에 끝나는 건가 걱정하며 ‘어디든 다시 들어가 보자’라며 쫓기듯 살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지금에서야 내가 나에게 자유롭고 편한 시간들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매일같이 오늘 하루 행복하거나 즐거운 것 한 가지를 하고, 나를 채워줄 글을 읽고 또 쓰고, 영화를 보고 감상을 정리한다. 그간의 백수 시절 동안 패배자 혹은 낙오자라는 이름으로 나를 정의하며, 사랑해주지 못했고 관리해주지 못했던 나를 되찾아주려고 노력 중이다. 또한 직장과 창업과 폐업을 거치는 동안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고 부딪치고 눈치 보며 일을 위해 또는 상대를 위한 나로 살아왔던 시간을 정리하고, 내가 오롯이 나인 방법을 찾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중에 가장 첫 번째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 리스트업하고 실행하는 거다. 가장 먼저 하고 있는 게 바로 라멘 먹기.


부산에서 유명한 가솔린앤로지스 @gasoline_n_roses


닭이나 돼지 육수에 강한 염도에 몸에 좋은 건 거의 없는데..

그래서 내가 매일 아침 운동을 하면서 땀을 쫙 빼는 건,

다 점심에 라멘을 먹을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랄까!


라멘을 참 좋아했으면서도 일에 치여서 대충 끼니를 챙기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 때문에 후순위에 두고, 시간이 없어서 너무 피곤해서 다음으로 미뤘던 것들을 이젠 미룰 것 없이 먹고 있다. 그간 사라진 라멘집도 있고, 새롭게 등장한 라멘집도 있고, 라멘의 종류나 개성은 더 다양해져서 신나게 놀아볼 맛은 더 진해졌다. 가야 할 라멘집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가득해서 제약된 예산으로 이 시간을 어떻게 잘 쓸지가 또 다른 고민이다.


어릴적부터 찾아헤멘 시오라멘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menyajoon


어쨌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자


눈치 보지 말고, 기죽지 말고, 세상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설사 세상이 끝나면 또 어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오늘의 라멘을 먹어야지!


그래서 오늘 먹은 라멘 (2020년 6월 30일) @jinsei_r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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