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일기>가 무엇인지 궁금한 당신에게
2020년을 돌아보면 코로나와 마스크밖에 없을 것 같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살았던 때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니 정말 그럴 만도 하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생각했다가 이제는 포기해버렸다. 기대하고 결과를 기다리면 늘 되지 않다가 아예 잊고 살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데 코로나는 초연하게 마음먹기가 너무 어렵다.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 힘든 나도 힘들고, 힘든 너도 힘들다. 그걸 바라보는 일은 정말이지 버겁다는 마음이 들 정도다.
생각지도 못하게 퇴사를 했고, 생각지도 못하게 책을 썼다. 내 품을 벗어났던 짧은 에세이 한 편은 책이 되어 돌아왔다. 책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분명 그것은 내 글이었다. 단순히 글 한 편이라고 하기엔 뼈와 살과 피를 갈아 만든 이야기였다. 내 삶이면서도 놓아주는 순간 더는 내 삶이 아닌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고 공감해주었다. 때론 위로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저 내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어떻게 된 일인 걸까 생각했다. 언젠가 작가는 자신의 불행을 자본주의에 팔아넘기는 모순된 작자들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고통이 벗어진다거나 해결되는 게 아닐 텐데, 한심한 짓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최대한 실리적인 사람으로 살려고 애썼다. 그게 잘하는 일일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옷이야말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시간이 흘러 돌고 돌아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다 보니 나는 나의 이야기를 썼지만, 이상하게도 출간이 되고 나니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약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약을 바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같은 말을 했다. 고맙다고 했다. 자신에게 힘이 되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쓴 줄 알고 있었지만 어떤 힘이 내 손을 잠시 빌렸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워낙 짧은 글이었기 때문에 아쉽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회가 있다면 조금 더 길게 확장해서 써보고 싶었다. 그것이 <나비 일기>였다. 「나, 데리고 살아줘서 고마워!」* 의 확장판이 곧 <나비 일기>였다. 나의 상처는 어느새 날개가 돋아나서 아픈 사람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약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 역시 상처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아픈 건 아프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용기가 났다. 글을 쓰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 다른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글이 되는 순간 나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면서도 동시에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되었다. 비로소 나는 쓰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동안 나 자신을 결박하고 있던 어떤 틀 같은 것이 단숨에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가뿐해서 좋았고 뛸 듯이 기뻤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는 분명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나의 첫 브런치북은 <나비 일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화의 걸친 연재를 통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고, 애벌레가 되었고, 결국 날개를 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 자신이 될 것’이라는 말을 이전엔 할 수가 없었다. 알고는 있었다 하더라도 그 말이 나의 말이 아니었고, 그 말이 진심으로 와닿지 않아서였다. 왜냐면 나는 상처 속에 갇혀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없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누군가의 조언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팠을 뿐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말이 진짜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면서 모든 선택의 주체도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처음부터 나였지만 끝까지도 나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암묵적인 약속을 하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나로 나답게 사는 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목표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곧 나 자신과의 끝없는 여행이다. 그걸 안다면 긴장해서 움츠렸던 어깨를 조금이나마 펼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신비는 고통을 직면해야만 풀리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번 힘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힘든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통은 때때로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그저 나 자신을 안아주자. 고생 많았다고 너무 수고했다고. 힘내줘서 고마웠다고. 나로 살 수 있도록 나를 데리고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고.나 자신을 혹시 안아주는 것이 너무 두렵다면 인사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나야. 잘 있었니? 내가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자.
‘나로 살아줘서 고마워. 이젠 내가 너의 힘이 되어줄게. 너의 편이 되어줄게. 괜찮다 말해줄게.’
커피소년의 노랫말은 어쩌면 건강한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글거려서 더는 못하겠다는 마음이 드는가. 그렇다면 브런치 어플을 켜고 <나비 일기(psycho diary)>를 구독해보라. 한 번 읽다 보면 계속 읽게 될 테니까. 20화 완주를 잘 끝내고 나면 손 인사하듯 댓글도 남겨주면 좋겠다. 이 글은 상처 난 마음들이 또다른 상처를 보고 웃고 다시 이겨낼 힘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써졌으니까 말이다. 조각난 마음, 다친 마음, 무너진 마음, 지친 마음, 헤집어진 마음, 상처만 남은 마음 모두 나오라. <나비 일기>가 따뜻하게 모두 안아줄게. 사랑한다고 말해줄게.
* 2020년 7월, 키효북스에서 발간된 『나는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는
변지영 외 6인이 다양한 장르로 써낸 글 모음집 독립출판 출간도서이다.
그중 에세이 「나, 데리고 살아줘서 고마워!」는 브런치북 <나비 일기>의
토대가 된 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