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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미 Oct 21. 2023

프로이직러의 일기

회사 사내교육 때 제출했는데 채택됐던 내 이직 이야기,


각자 시기는 다르지만 인생엔 누구나 2막이 있다고. 30 대중반인 나는 벌써 2막 1장을 막 지난 느낌인데… 오늘 본식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와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1월 4일 오늘의 하루를 기념하고 싶어서 이렇게 일기를 쓴다. 드레스를 고르려면 먼저 내가 어떤 취향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는 플래너님의 말에 따라 10년 정도 해 온 블로그의 예전 글부터 찬찬히 읽어봤다. 오랜만에 예전 글을 뒤적이니 그때의 공기와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해서 이렇게 몇 자 남겨보려 한다.








블로그에는 비행 얘기가 참 많았다. 스테이 내내 행복함에 젖어있던 나의 웃는 사진도 있었고, 승객과의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나만 아는 글로 적었던 것도, 힘든 날엔 우울함과 눈물이 묻어나는 글까지… 알록달록 빛깔로 적혀있었다. 문득 승무원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건 지금과 달리 흑백만 있는 어두운 삶이었을 것 같다.








언제였을까, 아마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미래의 유망한 직업 ‘홈쇼핑 쇼호스트’를 보고 마음이 끌려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에 그 직업을 적어낸 이후로 내 꿈은 홈쇼핑에 머물러있었다. 목표를 설정하면 계획을 세워 꼭 해 내야만 하는 내 성향 상, 꼭 되어야만 한다는 마음속 짐을 가지고 방송 일을 시작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였지 평일엔 학교 수업을 듣고 주말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국을 떠돌며 다니는 축구 중계 캐스터로, 하루에 5만 원이라는 열정 페이로 버티던 기상캐스터까지. 힘들었지만 홈쇼핑이라는 꿈에 가까이 다가가는 중이라 생각하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취업 할 기회가 생겼고, 그 회사에서는 홈쇼핑 방송을 ‘게스트’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다는 말에 내 앞에 어떤 이름이 붙던지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하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꿈꾸던 홈쇼핑에서 방송을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동안의 힘듦이 다 보상받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게스트와 호스트는 말 그대로 주인과 주인이 아닌 사람이었다. 24살의 대학교를 갓 졸업한 내가 겪어내기엔 마음이 정신이 피폐해지는 긴 시간이었다. 하루 20시간이 생방송인 그곳에서 매출이 인격이 되는 상황들을 느끼며 4년을 보냈다. 한 발짝만 더 가면 내가 그렇게 원하던 ‘호스트’가 될 수 있는데… 그게 좀처럼 되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면접을 보고 시험을 봐도 최종 합격자 명단에는 내가 없었다. 꾸준함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 나이기에, 그래도 언젠가는 될 거라 생각하며 시간을 채우던 중 교통사고가 났다. 그 해에 3번째 사고였다.








세 번 다 내가 운전한 적이 없어서 더 억울했다. 마지막 사고는 온 얼굴에 다 멍이 들 정도로 큰 사고였어서 방송을 나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가야 했다. 당일에도 미팅이 잡히고 전날 방송을 통보받고 하는 생활이 넌더리가 날 정도로 익숙했는데, 갖은 검사를 하고 누워서 쉬는 데 추가된 방송 스케줄은 그렇지 못했다. 심장이 차가워질 정도로 정신이 들었다.






당장 사고 다음 날 출발하기로 했던 방콕 비행기표를 취소했어야 했다. 입사 후 길게 휴가 가는 첫 기회라서 지난 몇 주 선배들의 방송을 땜빵했는데, 몸이 너무 아파 그 시간들의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새벽 3시에 간호사 선생님께 진통제를 추가해 달라고 말하며 깬 김에 휴대폰으로 대한항공을 검색했다. 연관 검색어에 ‘승무원 채용’이 떠 있었다.





이건 운명이라 느꼈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카메라에만 대고 말해오던 나인데, 사람의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내가 승무원이 된다고? 이런 생각도 잠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사람으로 상처받을 수 있지만 사람으로 또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오히려 더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이미 수년이 흘러버려 만료된 토익 점수를 확인하고 바로 토익 시험 접수를 했다. 운이 좋아서 이번 주 주말에만 시험을 본다면 취업 시즌이라 2주 만에 결과가 나오니 바로 입사지원을 할 수 있을 거란 계획이 세워졌다. 당장 퇴원 신청을 했다. 목과 허리에 보호대를 차서인지 더 길고 긴 시간 동안 토익 시험을 봤다. 보름 뒤 점수가 나오자마자 지원을 했고, 수만 번 떨어졌던 쇼호스트 면접과 달리 매 단계 합격통보를 받으며 즐기다 보니 이직을 할 수 있었다. 다시 돌이켜보니 그때 그 결정이 아니면 어땠을까 아찔한 마음도 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비행생활을 돌이켜보니 내가 지원했던 입사지원서의 마지막 문단이 떠올랐다.








‘행복한 직업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와, 직업과, 자신과 직업이 만나서 생긴 가치를 모두 알고 있다고 합니다. 다년간의 사회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왔기에 이제 행복해질 준비를 마치고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에 지원합니다.’






행복해질 거란 기대를 갖고 인생 2막을 열었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물론 중간에 아닌 적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니 어느새 또 잊혔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 글과 같은 마음인데, 지금의 글을 나중에 봤을 때 미래의 나는 어떨까? 궁금함을 갖고 오늘을 또 기록해 본다. 미래의 내가 읽었을 때에도 이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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