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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미 Oct 18. 2023

마음이 따뜻한 동지여

나도 이런 분을 닮아갈 수 있을까


뉴욕에 왔다. 오는 길에 있었던 일들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비행 내내 혹시라도 레포트를 쓸까 계속 되뇌고 A4 용지에 두장 빽빽하게 적어도 보고. 하도 많이 생각해서일까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내 마음도 상처받았고 게다가 지금 있는 뉴욕은 호텔부터가 우울하니까. 다만 이 비행을 꼭 기억해야겠다 싶어서 좋았던 점만을 쓰기로 해본다. 뭐든 기억하고 저장해 놔야 내 것이 되기에. 








참 좋은 팀장님을 뵈었다. 우리 회사에서 비행을 하며 좋은 분을 많이 만나 뵙게 되지만... 이번에 뵌 분은 그냥 우러러보게 되는 분. 그분의 배경이라던지 지금까지 해오신 일들이라던지를 듣지 않았을 때도 대화하시는 것이나 애티튜드 자체가 완벽한 승무원인 느낌을 받았다. 








사회생활을 하며 종종 고민하게 되는 점은 나는 윗사람에게도 아랫사람에게도 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데 이 팀장님과는 단지 한 번뿐인 비행이지만 아 저분은 저 두 가지를 모두 다 잘하시는 완벽한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나도 저렇게 닮아갈 수 있을까란 궁금증이 들어서 팀장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배우려 노력한 13시간의 비행이었다. 












안 그래도 멀고 호텔도 좋지 않아서 모든 승무원들이 꺼려하는 뉴욕 비행. 이륙하자마자부터 irregular 상황이 생기고 그것이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되고. 승객으로부터 생전 처음 받아보는 막말과 폭언에 당황스럽고 혼미해졌다. 이 모든 것을 혼자 겪어내며 해결하려 애쓰던 중 브리핑 때 팀장님이 말씀하신 게 떠올랐다. 우리 모두 다른 팀에서 모인 승무원들이지만, 뉴욕 가는 비행기에서 만큼은 한 팀으로 서로서로 도우며 근무하자고. 본인은 팀장이기 전에 여러분의 선배이니 비행 중 언제든지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 하시던 그 든든한 말씀 덕분에 나는 쪼르르 팀장님께 달려갔고 정처 없이 떠돌던 내 멘탈이.... 조금은 잡혔다. 









비행기에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며 본인이 성심성의껏 돕겠다는 말씀에 안도감을 느꼈고 괜찮을 거라고 계속 되뇌었다. 

우리 동지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구나 

이 말씀에 따뜻하게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지만 가끔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일을 하다 보면 상처받을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그런 말씀 까지도.








팀원도 아닌 나에게 차분한 말투로 그 상황에 빙빙 돌며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를 꺼내서 올려 주셨고 제정신을 차리고 내 일을 마칠 수 있었다. 힘들고 손님과의 응대가 불편하면 듀티를 바꿔주시겠다는 든든한 말까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반대로 정신을 차리게 됐다. 내 책임은 스스로 지고 싶어서. 그리고 어찌어찌 서비스를 마치고 레스트 시점에는 차 한잔 하자는 말씀을 하시며 최대한 날 불편하지 않게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내가 더 죄송스럽고 부끄러웠을지도. 









본인은 그 상황에서 당황한 나를 보시고 본인도 당황하셨지만 이러이러한 내 보고가 좋았고 이런 점도 좋았다. 다만 이런 점을 고친다면 더 좋은 승무원이 될 거라 생각한다며 얘기를 이어 나가셨다. 그 와중에 아 이건 이랬고요 그건 이랬고요 상황 설명을 해버린 나라니...... 지금 생각하면 처음 만나 뵌 하늘 같은 팀장님께 말대답 한 내가 됐는데 나도 마지막엔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신 것들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더 발전하는 승무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으니 마음의 짐을 덜어도 되겠지. 휴. 






사실 대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대화를 더 연장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얘기를 하며 마음도 어느 정도는 풀어지고 긴장도 풀리고 두 번째 식사서비스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었다. 아마 그래서 아닐까. 팀장님이 날 배려하시려 얘기를 먼저 꺼내신 게... 딱 두 번 비행이지만 같이 비행해 본 팀장님은 왠지 그러실 것 같은 분이다. 







인바운드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주눅 들어 보이는 나 때문이었을까. 나는 마음이 따뜻한 승무원이라고... 같은 동료인 승무원들 뿐만 아니라 손님들께도 따뜻해서 사랑을 많이 받을 거라고... 쭈구리가 된 피찌방 막내 승무원의 놀란 마음을 다독여주시려는 의도대로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며 마음의 응어리가 점점 풀려가는 듯했다. 











사실 아직 그 기억에 소름 끼치고 눈물이 찔끔 나오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 생각한다. 세상에는 정말 좋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끼리만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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