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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미 Oct 17. 2023

시카고 할머니

지금 내게도 할머니가 계신다면,


나에게 있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가 않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내 돌잔치가 지난 이후, 할머니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새 할아버지와 재혼을 하셔서 왕래가 많이 없기도 했다. 가끔 찾아뵙는 김포 할머니...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이 부러웠다. 그 부러움은 커서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대하는데 어려움으로 바뀌어갔다. 









표정관리 못하고 다 티 내는 내 성격상 다른 직업을 했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승무원이란 직업을 갖고 난 후부터는 나이 많은 어른을 상대한다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승객이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손님이었고, 연차가 쌓이며 상위클래스 교육을 받고 서비스를 할수록 나이 많으신 승객 분들이 더 많으시기에... 뭘 해도 어색하고 애써도 불편한 이 느낌. 에휴. 해가 바뀌고 경험이 쌓이며 그래도 노력해봐야겠다 싶었는데 이번 시카고 비행에서는 놀랄 만큼 어르신의 진심을 느낀 일이 있었다. 








좌석번호도 기억하고 직업도 그렇고 어느 옷을 입으셨는지도 다 기억날 정도로 친근하게 느꼈던 노부부 승객. 진중하고 신사 같은 깔끔함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매번 하셨던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밝은 분위기에 애교 많으신, 여든이 다 되신 할머님 이셨다. 










비즈니스 특히나 일등석 근무 시에는 이코노미와 달리 손님과 대화가 많은 편이다. 요즘은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많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시는 분이 많으셔서 성향을 보고 다가가는 편이긴 하다. 따라서 내가 먼저 하는 경우보다는 손님이 대화를 즐겨하시고 소통하기 원하시는지 보고 응대하는데 이 할아버지는 조용조용하셨고 할머님은 얘기하기를 좋아하셨다. 







나이가 몇이니, 어디에 사니, 아버지는 본적이 어디시니 직업은 무엇이시고?
 형제관계는 어떻게 되니 





이렇게 글로 쓰면 너무 사생활침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시카고에서 한국 돌아오는 14시간의 비행은 이런 얘기를 중간중간 나누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얘기를 들으시고 내 신상정보를 손바닥보다도 작은 조그마한 노트에 적으시고 본인의 집주소와 연락처, 이름을 적어서 한 장 주셨다. 시카고에 오면 꼭 찾아오라며. 같이 밥 먹고 얘기하고 더 말하고 싶다고. 두 아드님이 모두 50 가까이 되시기에 날 며느리로 삼으시려는 건 아니었음. 하하.











아 지금 생각하니까 또 떠오르는 건데 그 언제였지. 엘에이였나 뉴욕이었나. 한국 돌아가는 비행에서 Bar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지금은 바텐더 듀티라는 것이 사라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식사 서비스를 할 땐 다른 승무원들 서포트를 해 주다가 불을 다 끄고 비행기가 조용해지는 시점엔 맨 뒤에서 손님이 요청한 칵테일을 만들어드리고 스낵을 권하고 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 일이다. 물론 술만 드시러 오는 손님도 있고, 커플이나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시는 분들도 있었다. 





어느 날은 바뀌어버린 시차에 잠이 오지 않는다며 바에 찾아오셔서 꽤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그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분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무 예쁘고 친절하고 고맙다고. 다른 승무원들과는 다르다고... 칭찬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엽서를 보내냐는 말씀에 컴퓨터 켜야 해서 어려우니까 괜찮습니다! 마음만 받을게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무리 지었는데. 이때의 기억이 문득 오버랩되었다.  













본인의 일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아요



50년 가까이 비행기를 타며 시카고에 처음 정착하신 이후로 한국에 와야 하는 일이 생기면 항상 우리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다른 승무원과 달리 모든 것이 다 진심인 것 같고 본인의 밝은 에너지가 너무 기분 좋게 한다는 할머님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힘들다가도 그렇게 날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운 내서 다시 힘을 내게 된다. 







다만...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셨다. 마냥 친절하고 깍듯하지 않다는 의미인가 싶어서 잠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결국에는 자신감이 있고 친절하고 진심이 느껴지는 승무원이라는 이야기겠지! 라며 나에게도 셀프 칭찬을 해 주었다. 그냥 내 색깔이라고 생각하기로!  












이번 비행을 통해 조금이나마 나이 드신 분들에 대해 두려움이 사라지기를 바라본다. 이렇게 진심으로 대화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많이 발전한 것 같기도!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났고 다른 스테이션에서 밤에 잠이 안 와 끄적이는 건데, 돌이켜보니 나는 많이 성장했고 점점 변화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셀프로 토닥토닥. 많이 고생했고 노력했고 성장했다는 칭찬으로 마무리 짓고 어서 자야지. 배도 고프고 잠이 안 와서 맥주 한 캔 꺼내 마셨는데 어서 양치하고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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