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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미 Sep 25. 2023

겁난다고 가슴이 시키는 일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2018년 1월의 일기,


방콕 비행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본 글귀. 메모장에 이것저것 적어놓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 언젠가 그 예전에 내가 이 말을 듣고 적어놨던 것 같다. 다시 봐도 내 마음을 쿵. 하고 깨워주는 그런 글. 겁난다고 가슴이 시키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고.









꽤 어렸을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제는 속된 말로 나도 때가 탄 사회인이 됐다. 패기 있던 신입사원이 아닌 머리만 커진 3년 차 승무원. 이 일을 하며 드세진 것 같기도 하고 혹은 감정적인 부분은 더 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생각이 많아졌다는 건데, 그래서 그런지 저 말을 들으니 내가 깨어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겁난다고 가슴이 시키는 일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첫째로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겁이 참 많아졌다.

특히나 우리 회사의 특성상 뛰어나게 잘하는 것보다는 무난하게 뒤처지지 않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보니 점점 나 스스로 틀을 정하고 그 안에 가두려 하게 된다. 내가 이걸 하면 너무 눈에 띌 거야. 안 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자꾸 움츠리게 된다. 가뜩이나 교육원을 수료하면서 제일 마지막에 강사님께 들은 얘기가 ‘라인 올라가면 본인이 가장 주의해야 할 건 튀지 않는 거예요’ 였으니, 나도 오죽 조심했을까.(교육원 때엔 그 누구보다 무서웠던 강사님이 라인 올라와서 몇 번 뵈었을 땐 정말로 애정을 듬뿍 담아 반가이 맞아주셔서 많이 놀라긴 했다.) 대학생 때부터 겁 없이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방송을 (특히나 보편적으로 잘하지 않는 홈쇼핑) 했다는 경력이 이 회사에서는 너무나도 튀기 때문에 뭘 하기 전에 지레 겁먹고 이걸 내가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 시간들이 더해져서 나는 이제 어떤 일 앞에서 겁쟁이가 되어버린 듯하다.






둘째는 이제 가슴이 뛰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 이게 어른들이 말하는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그러면 너무 속상한데...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크게 동요하는 게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다 보니, 자꾸 그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뛰는 가슴을 애써 붙잡아 본다. 그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엄청난 일이 아니면 좋다 싫다 이런 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항상 젊은 내가 되고 싶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고 얼굴에 주름이 늘어도 생각이, 마음이 젊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먹은 나이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생각만은 늙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항상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그 한계를 나이 때문에 꺾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평소의 나였다면 아니었던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중. 내 마음이 시키는 일,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있다. 머리로 생각해서 고민한 뒤에 결정 내리는 게 아니라 그냥 상황에 맞춰서 내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중. 이게 아니면 또다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 생각 없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받아들이다 보니 사소한 것도 재미있고 즐거워졌다. 잊혔던 행복감이 물밀듯이 들어오는데 이게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동생도 치료를 잘 마쳤다. 사실 내가 변하게 된 건 이 영향이 큰 것 같은데... 한 3-4개월 전에 동생이 처음 아팠을 땐 나도 우리 가족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마음이 급하고 덜렁대는 성격이라 그 언제부터인가 계획을 꼼꼼히 세우게 됐고, 예상했던 일이 아니거나 내가 계획했던 것과 틀어지면 적잖이 당황하고 힘들어했다. 그러는 나에게 예쁘고 어린 내 동생이 아프다는 사실은, 흔하디 흔한 표현이지만 청천벽력 같은, 하루 만에 세상이 180도 바뀌어버리는 너무나 힘들고 고된 틀어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처럼 행동하지 않고, 내가 아는 내 모습이 아니라, 정말 반쯤 정신 나간 애처럼 여기저기 나를 없애려 했던 것 같다. 정작 힘든 건 동생인데 지레 겁을 먹고 나는 이겨내지 못할 거야, 해내지 못할 거니까 누군가에게 기대야겠어 이 상황에서 그냥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말 그대로 멘붕... 멘털이 너덜너덜 나가버렸다. 그래서 이런 마음들을 먹고 나를 하나하나 지워갔던 것 같다. 아픈 건 동생인데 내가 저 끝 바닥을 친 것 같다.









얼마나 어려운 시간들이었는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도 생각을 하기만 하면 한숨과 눈물이 나오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동생이 힘든 기간을 잘 이겨냈다는 것. 치료를 하게 되기까지도 치료를 받는 중간중간에도 계속 생각했던 건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렇다면 지금을 살자... 내 인생 한 치 앞도 모르는데 지금을 행복하게 내 마음이,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보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가장 나 다운 일을 하고 생각을 줄이고 머리에게 물어보지 말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단순하게 살아보자. 이런 얘기들.









말이 길어지니까 딴 얘기로 새는 것 같지만, 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이겨내던 중 문득 본 저 글귀가 참 와닿아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앞으로 조금 더 겁내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해 보자는 의지를 꾹꾹 눌러 담아서. 신기할 정도로 지금 행복하니까 이런 생활을 더 해보자는 마음을 담아서. 사실 지금은 방콕을 다녀온 지 꽤 되었고, 모스크바에 불려 아웃바운드 엑스트라로 가는 중이라 불이 다 꺼진 기내 안에서 메모장을 켜서 끄적끄적 대는 중.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틀어놓고 거기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흥얼거리며 울었다가 웃었다가 이제 곧 퇴원하는 동생 생각도 해보고. 모스크바 다녀와서 데이오프에 오프가 하나 더 붙었는데 거의 4일이라는 시간이 생겼으니 바람을 쐬러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고. (내가 지금 감기에 걸려서... 동생이 옮으면 안 되기에 집 밖에 나와있어야 하니까 겸사겸사) 뭐가 됐든 내 가슴이 시키고 마음이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겠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데 왜 진작 몰랐을까.












2018년 그 어느 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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