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줘, 지금의 타이밍을
나이가 들며 책이나 영화를 보고 우는 일이 줄어들었다. 누구든 다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어렸을 때부터 울음이 많은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툭하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오해를 사는 일도 많았고 말 보다 눈물이 먼저 나와 답답한 일도 많았다. 차츰 무뎌지고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다 보니 울컥하는 일이 잦아들었다. 그래서 때로는 좀 섭섭하기도 하다. 내가 아는 나는 이게 아닌데 뭐 이런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무튼 이 얘기를 왜 꺼내냐면 최근 내가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울어서 기념(?) 하려고. 나는 여전히 나야 싶은 마음에. 그걸 기록하고 싶어서.
매일매일 퀵턴 출근을 하는 요즘의 나에게 잠깐의 엑스트라 비행은 꿀 같은 휴식이다. 승무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잠깐 설명을 해 보자면, 엑스트라 근무를 한다는 건 유니폼을 갖춰 입고 승무원 자격으로 출국은 하지만 비행기 내에서는 승객처럼 변신하는 일을 말한다. 가아끔 비행기를 탔을 때 주변에 저 사람은 승무원 같은데 왜 내 옆에 앉아있지? 승무원이 아닌 것 같기도 맞는 것 같기도 아리송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하! 하고 알아챌 수 있을 듯.
엑스트라 근무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장거리의 경우 갑자기 승객이 늘어나서 급하게 승무원이 필요했다던지, 단거리나 중거리 비행은 한국에서 출국할 때와 입국할 때 승객 차이가 큰 경우가 많은데 보통 이럴 때 승무원의 근무를 조정하곤 한다. 국내선은 워낙 다양한 스케줄 패턴으로 움적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도 승무원의 근무가 엑스트라, 듀티(실제로 일을 하는)로 계속 변경된다고 보면 된다.
이 시간엔 일을 안 해도 비행 수당의 70%를 주기 때문에 일 안 하고 돈 버는(?) 모든 직장인의 목표를 잠깐이나마 이뤄보기도 한다. 난 이 시간에 보통 미뤘던 일기를 쓰기도 하고 잠을 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도 보는데, 이번 삿포로 인바운드(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 편을 말함)에서는 ‘코코’라는 영화를 봤다. 그리고 울었다.... 흐엉... 저 사진을 찍은 뒤 아이폰 좋아하는 사진폴더에 넣어놔서 비행하다가 애플워치에 저 사진이 뜨면 혼자 속으로 리~ 멤버~~ 미~~~ 하고 노래를 부른다. 이유는 몰라. 그냥 그냥 저 날의 감정이 좋았어서 그런가. 저 순간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모았다가 폭발시키는 도화선 같은 느낌이라 그런가.
읽는다고 들고 다닌 지 꽤 된 책도 드디어 다 읽었다. 슬펐다. 요즘 스케줄이 힘들어 반밖에 못 읽은 이어령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 눈물이 찡... 공감도 많이 되고.... 그중에 기억나는 문장이 있어서 옮겨봐야지.
행복에는 절대의 타이밍이란 게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아이를 가질 때도 그렇다. 조금만 더 빨랐거나 조금만 더 늦었어도 그토록 행복하지 못했을 순간들이 있다. by 이어령.
이 말이 위로가 돼서 좋았다. 마치 그건 네 탓이 아니야 그냥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라고 말해주는 우리 아빠 같아서 포근하게 느껴졌다. 항상 내 탓으로 두는 나에게 이건 네 탓이 아니라고 감싸주는 그런 말 같아서. 아직은 내 타이밍이 오지 않았겠지. 뭐 이런 위로도 함께 되기도 해서 꾹 하고 접어놓은 나의 한 페이지.
살면서 다양한 행복을 겪다 보니 행복의 크기가 세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누구는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크기도 중요한 것 같다. 적당한 느끼는 행복과 짜릿할 정도로 속에서 피어나는 행복감. 아직 타이밍이 오지 않아서이겠지? 파도치는 물결처럼 왔다가 갔다가. 근데 그 파도는 가끔 되게 크고 어떤 날은 잔잔하니까. 그건 또 타이밍이니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거기에 대해 예민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겠다. 아 나는 또 오늘도 이렇게 반성과 다짐을 하네.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편해져서 마음이 가볍다.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