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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미 Mar 14. 2024

비행 중(1)- 유니버셜에서 생각난 그놈의 언니

언니 문화는 대체 왜 생긴 걸까?


나는 나이 많은 막내였다. 다른 회사를 다니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승무원 신입 공채로 입사했기에 더더욱 동기들과 차이가 났다. 내 짝꿍은 아직 항공과를 졸업하지도 않은 스물한 살 졸업예정자. 이렇듯 90명이 채 안 되는 동기 중 내가 입사했을 땐 평균적으로 일반 회사 신입사원에 비해 어린 편인 24살 정도의 승무원들이 가장 많았고, 나보다 나이 많은 동기언니는 29살 은행원 출신 딱 한 명이었다.




안전 1개월, 서비스 2개월, 입사교육 1개월이라는 총 4개월 간의 교육 후 수료식에서 윙을 달 수 있었고(승무원 유니폼에 달린 날개모양 배지를 윙이라고 부르고 마지막 교육의 수료식 날 달아준다.) 바로 팀에 배속됐다.





한 회사에 수천 명씩 근무하는 승무원은 팀제로 운영된다. 딱히 무슨 조건이 있거나 하지 않고 랜덤 배정이라고 보면 된다. 나 때는 한 팀당 15명 정도라 수백 개의 팀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구성이 비슷한 편이다. 팀장님과 부팀장님을 제외한 일반 승무원들은 열두 명 에서 열 세명 정도로 과장, 대리, 사원 순서로 일정 비율로 한 팀을 이룬다. 하지만 막상 일해보면 직급보다는 입사 순위에 따라 시니어리티가 정해진다. (짬밥이 짱이라는 말…) 물론 회사의 공식적인 문서에서는 직급 순이지만 실제로는 내가 먼저 승진을 했다고 해서 직급 낮은 선배를 무시하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다. 서로가 다 존중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그 안에서 입사 연도가 중요하달까.  






팀 안에서 나는 막내라는 단어 대신 첫 번째를 뜻하는 일본어 이찌방으로 불렀다. 그 앞에 날 설명하는 단어는 ‘다른 일을 하다 회사에 늦게 들어온’ 이 항상 붙었다. 그래서 난 나이 많은 이찌방이었고, 내 바로 위 니방 언니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20대 초중반, 그 위의 삼방언니는 2년제 항공과를 나온 20대 중반의 나이었다. 그래서인지 니방 삼방 언니는 나이 많은 나를 유난히 불편하게 느꼈던 것 같다. (전적으로 내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그 둘 외의 다른 선배 언니들과는 지금도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으니까)








비단 나이뿐만 아니라 부팀장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막내라 더 눈엣가시가 아니었나 싶다. 팀에 처음 배속받아 팀 단톡방에 들어갔던 날,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이번 달 교육우수자가 채미 씨 맞냐며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 한 내 자랑(?)을 앞서서 알려주셨던 부팀장님. 승무원을 교육하는 훈련원에서 승무원들을 가르치는 강사도 하시다 비행을 하신 분이기에 아무래도 나를 더 예뻐하셨던 것 같다. 나도 부팀장님을 더 믿고 따랐다. 팀장님도 물론 너무 좋으셨지만, 막내였던지라 이코노미 클래스를 총괄하는 부팀장님과 대화하거나 일할 기회가 훨씬 더 많았기에 나의 가장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롤모델 같은 분이셨다.




매 달 칭송도 받았다. 한 달에 한 개. 8년 차 승무원인 지금은 3년에 한두 개 받을까 말까지만 그땐 왜 이리 칭찬하는 편지를 많이 받았던지. 가장 기본인 4급 칭송 외에도 더 높은 등급의 3급 칭송도 받아서 상장도 받았다. 오죽 많이 받았으면 정직원 전환하는 면접 때 인사과의 한 분이 채미 씨는 칭송 점수는 만점이니 영어자격 등 다른 부분을 채우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으니…








이 긴긴 얘기가 왜 나오냐면 드디어 입사 후 8년 만에 유니버셜에 왔는데 그 니방, 삼방 언니들이 생각나서. 이렇게나 재밌고 즐거운데 물론 3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와서도 동갑인 너무 고마운 지금 팀 선배언니랑 와서 신나게 놀았지만, 20대에 왔으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서.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더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도 생기지만 반대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과거의 상황도 있으니까. (도대체 그 언니들은 왜 그랬던 걸까?)








내가 막내였을 땐 브라질 상파울루에 가는 스케줄이 있었다. 인천에서 엘에이로 출발해서 하루이틀 머물다가 상파울루로 가서 또 하루, 다시 엘에이로 돌아와서 이틀이나 삼일을 스테이 한 뒤 인천으로 돌아오는 자그마치 10일이 넘는 비행이었다. 몸은 힘들지만 날씨 좋고 볼 것 많은 엘에이에서 며칠을 더 있을 수 있기에 그동안 못했던 미뤄둔 투어를 하기 좋은 스케줄이었다.





그래서 나도 기대했다.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둘 중 아무 곳도 못 가봤기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팀 비행이 아니고 각자 다른 팀에서 모인 조인 승무원들끼리는 아무래도 비행을 했다 하더라도 처음 만난 사이에 놀이공원을 가기는 쉽지 않으니까 이런 팀 비행 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며.





엘에이 도착 후 팀원들과 다 같이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먹고 마트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승무원들은 미주비행에 가면 삼삼오오 모여 고기를 먹고 소화시킬 겸 슈퍼에서 장을 봐 오는 게 일상이다.) 다음 날 엘에이에서의 계획을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단해서 잠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너무나 유니버셜에 가고 싶었기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승무원들의 한인택시처럼 픽드롭도 해주고 티켓도 대신 구입해 주는 한국 아저씨가 물었다. “여기서 내일 유니버셜 갈 사람 그래서 몇 명~?”




지금이다 싶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언니 저도 가고 싶어요…” 하지만 삼방 언니는 내 말이 안 들렸던지 나만 빼고 사람 수를 세었다. “나, 니방, 남승(남자 승무원을 이렇게 줄여 부른다.) 우리 이렇게 셋! “ 못 들었나 싶어서 조금 큰 소리로 다시 한번 ”언니 저도 가고 싶은데… 가도 돼요? “ ….. 무시당했다. 못 들은 게 아닌 게 확실한 이유는 삼방 언니보다 더 시니어인 사무장님이 감았던 눈을 뜨며 내 쪽을 쳐다보는 걸 느꼈기 때문에. 또 그 이후 날 따로 불러서 이런 따돌림이 언제부터였는지 또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봤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처음이 아니었다. 팀 초반 한 두 달이 되도록 눈칫밥 먹어가며 쭈굴거리고 있을 때 방에서 룸서비스를 시켜 먹잔 언니들의 호출이 있었다. 그땐 좋았다. 평소 일할 때 서로의 근무하는 듀티를 언급하며 갤리에서 나와 함께 밥 먹은 적이 없었고, 내가 혼자 밥을 먹으면 10분도 안 되어서 갤리에 들어와 작업을 시작했다. 나에겐 마치 우린 이제 일 할 시간이니 그만 먹으라는 듯 압박으로 느껴져 허겁지겁 밥을 먹느라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았다. 그러던 내게 같이 방에 불러 밥 먹자는 일이 처음이라 나도 이제 선배들이랑 더 친해질 수 있는 건가 싶어 잠깐 설레기도 했다.






피자를 먹는 나를 가만히 앉혀두고 둘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긴 언니라 안 부르고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들한텐 아무것도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또 이렇게 개념 없는 후배들 보면 훈련원에서 뭐 배운 거냐고 물어보게 된다고. 맞다고 서로 맞장구치며 날 쳐다봤다. 그리곤 삼방 언니가 물었다.




그래서 채미 씨는 훈련원에서 뭐 배웠는데?




누가 봐도 입사 후 세 달 가까이 언니가 아닌 선배님으로 부르는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속으로 당황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그래, 저 말을 하려고 불렀구나’ 싶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훈련원에서 언니언니 하지 말라고 배웠는데요?





다시 또 우걱우걱 피자를 먹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한순간에 차가운 물을 맞은 것처럼 식어버려서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내 말을 무시하고 둘은 또 얘기를 시작했다. 아니 그래서 샤워하고 왜 욕실을 그렇게 쓰는 건데? 진짜 개념이 없다니까 개념이. 한참을 둘이 얘기하다 또 나에게 선심 쓰듯 말을 걸었다.





그래서 채미 씨는 훈련원에서 어떻게 배웠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이 말을 하려고 그랬구나. 보통 인턴 때는 승무원끼리 방을 같이 쓴다. 나도 그래서 인턴이던 니방 언니와 자주 방을 썼다. 비행을 마친 뒤라 피곤하기에 보통은 막내가 나중에 씻고 선배언니가 먼저 샤워를 한다. 방에 들어가서 유니폼을 걸 옷걸이를 막내가 준비해주기도 하고, 꽂을 머리핀을 빼 둘 유리컵 등을 챙겨주기도 한다. 평소처럼 그렇게 방에 들어왔던 날, 니방 언니가 오늘만큼은 자기가 핸드폰을 보다가 늦게 씻고 싶다며 내가 먼저 씻으라고 극구 권유했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다 너무 오래 거절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샤워한 날이 딱 하루 있었는데… 그랬구나. 이래서였구나.






본인이 샤워하고 수채구멍 머리카락 같은 건 정리하고 세면대는 너무 지저분하게 쓰지 말라고 배웠고요, 욕조는 수건으로 닦거나 하지 말라고 배웠어요. 선배 스타킹 같은 것도 빨아주지 말라고 배웠고요.





진짜로 이렇게 교육받았으니까 솔직하게 말했다. 기본적인 매너는 지키되 처음 호텔에 들어왔을 때처럼 과한 청소(이런 걸 시키는 선배들이 있었으니까 하는 말이겠지…)는 하지 말라고.  











사실 대담하게 대답했지만 이렇게 말한 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방에 들어와서야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서럽기도, 억울하기도, 답답하기도 했던 그날의 분위기와 감정을 잊을 수 없어서 이렇게 마음 한 곳에 담아두고 살았다. 유니버셜에 오니 어린 날의 내가 또 안쓰러워졌던 것 같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다음 날부터 나는 니방과 삼방 선배들에게 ‘언니’라고 불렀다. 여전한 존댓말과 함께. 삼방 언니는 이런 나에게 채미 씨라고 부르며 반말 반 존댓말 반. 이 집단은 이래야 하는구나 놓아버리니 편했지만 씁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 이런 선배가 되지 말아야지. 이런 악습은 나에서 끊어버려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비참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쓸까 말까 고민하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적었다. 물론 저렇게 팀이 1년 뒤 끝난 이후 회사에서 우연히 만난 삼방 언니가 너무나도 반갑게 인사해서 이게 맞는 건가 싶은 날도 있었다. 니방, 삼방 언니들보다 진급을 두 번 먼저 해서 이제는 신경 쓰지 말라는 주변 친한 동기의 조언도 있었지만 마음속에 상처는 아직 흉이 져 있달까. 그때의 경험으로 더 후배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선배가 되려 노력하게 해 준 것에 고마움을 가져야지 마음먹었지만 이렇게 문득 예전 일을 생각하면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때 유니버셜이 말고 다른 언니들과 시내에서 놀았더랬다

글을 보니 속상해서 올려보는 그 때의 좋았던 추억, 당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진 못했지만 산타모니카 해변과 그리피스 천문대 투어를 하며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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