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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미 Apr 04. 2024

이제 곧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너 지금 나한테 자랑하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첫 번째 팀이 끝났다. 니방, 삼방 선배들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지내다 보니 내 밑에 또 다른 막내가 들어왔고 우연하게도(?) 그 이후 내 비행생활이 좀 더 나아졌던 것 같다. 막내라는 존재는 다 그런 건가. 슬프게도 내 뒤에 들어온 막내는 인턴 기간을 마치지 않고 회사를 그만뒀다. 비행이 안 맞았을 수도 있지만 환경이 좀 달랐으면 어땠을까 아쉬웠다. 왜냐하면 나는 두 번째 팀에서 인생 최고의 팀을 만났으니까. 그 힘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비행을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세 번째 팀도 나쁘진 않았다. 무엇보다 팀장님이 꽤 좋으셨기 때문에. 사실 팀의 '우두머리'인 팀장님이 팀의 분위기를 많이 결정짓는다고 보면 된다. 아무래도 팀장은 팀원들의 평가를 맡아하고 큰일이 생겼을 때 보고하는 관리자이기에 중심이 팀장님이라고 보면 될까. 그래서 소위말해 힘든 팀은 암암리에 승무원들끼리 전달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에 이름이 올라온 분이 팀장님이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세 번째 남자 팀장님은 매우 유쾌하신 분이셨다. 사실 그 분과의 인연은 수료 직전 실습비행을 갔을 때부터였다. 실습비행은 약 100일간의 안전과 서비스 교육을 마치고 비행은 하되, ‘비행실습’이라는 명찰을 달고 승무원으로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깍두기 승무원’. 교육은 받았지만 아직 제 몫을 하기엔 부족한 신입 승무원들을 실제 상황에서 훈련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사내 안전 매뉴얼엔 이런 내용이 있다. 비행기 화장실엔 생각보다 많은 보관 공간이 있는데 여긴 리필할 티슈나 롤페이퍼를 넣어두기도 하고 가글컵을 넣는 공간도 있다. 안 좋은 마음을 먹은 누군가 폭탄을 넣을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보안을 위해 (또한 청결을 위해) 매 비행 30분마다 화장실 점검 및 청소를 해야 하는데 이때 지켜야 할 부분은 ‘화장실 문을 open 한 뒤 고정 상태로 해야 할 것’. 접이식 문 위쪽에 보면 작은 쇠로 된 걸쇠가 보이는데 보통은 이게 고정장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다만 하나 주의할 점은 에어버스 기종과 보잉 기종이 생긴 모양새와 잠그는 법이 다르다는 것… (교육받을 때 항상 궁금해서 상상해 봤는데, 내 생각엔 화장실 문을 열고 점검을 함으로써 대기하는 승객들에게 기다림의 이유를 주고, 혹시 나쁜 의도를 갖고 행동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미리 변명을 해 보자면 그날 런던 가는 실습 비행은 갑작스레 승객이 늘어 당일 아침, 기종이 변경됐고 첫 비행이라 밤새 공부해서 비몽사몽인 상태에 긴장도 최고조였고, 당시 훈련원엔 에어버스 기종만 실습해 볼 수 있어서 보잉은 만져보지도 못했다. (실물로는 비행기에 타서 처음 봤다…) 그래서 사건이 터졌다.








당시 이코노미엔 웰컴카트라 불리는 식전 음료서비스가 있던 때였다. 달콤 짭짤한 땅콩과 음료를 카트 두대로 양 옆에서 나가게 되면 자투리 승무원이던 나는 콜 버튼 응대나 사이드 오더를 처리했는데, 화장실 청소를 해 달란 선배의 말에 나는 (훈련원에서 배운 대로, FM인 나는) 매뉴얼처럼 화장실 문을 고정했고, 고정이 안 됐고… 이게 왜 이러는지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을 했고, 다들 서비스에 바쁘시길래… 걸쇠를 당겨 힘으로 문을 고정시켰다.(라고 믿었다)






사실은 문을 장탈했다. 쉽게 말해 문짝을 떼어버렸다. 그것도 제일 바쁘고 정신없는 타이밍에. 갤리 사무장님과 부팀장님은 아마 이코노미에서 메인디쉬 세팅(승무원 용어로 앙뜨레 세팅 = 앙쎄!)을 하고 계셨을 거고, 나머지 아일 승무원 넷은 웰컴카트를 나왔을 거고, 상위클래스에서는 또 팀장님의 서포트를 받으며 정신없이 서비스하고 있었겠지. 그 타이밍에 그 와중에 문짝을 떡 하니 뜯어버린 나라니. 그것도 첫 비행온 막내 승무원이…







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땐 더더욱 내가 한 짓이 뭔지도 모를 때라 당황스럽고 정신도 없었는데, 문이 떨어지는 소리에 부팀장님이 갤리 밖으로 나오셔서 당황한 나와 상황을 보시곤 팀장님을 호출하셨고 비즈니스에서 서비스하시던 팀장님은 장장 약 한 시간 동안… (다시 말해 식사 서비스가 진행되는 내내) 문짝을 고정시키려 노력하셨다. 떼어버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사실 문짝 다는 건 말은 쉽다. 아래와 위의 홈을 각각 맞추고 걸쇠 부분을 눌러서 쏙 들어가게 딸깍 고정하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그 홈이 매우 작다는 것과 문이 생각보다 무겁다는 것.. 그래서 정비사 분들도 문 다는 걸 수고스러워하신다고.





하물며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팀장님은 어떠셨을까. 하아. 서비스가 끝날 무렵 문을 다시 달았다고 이제 괜찮다고 웃으며 말씀하신 팀장님.




나 자네 덕분에 이제 집에서 화장실 문도 잘 고칠 수 있을 것 같어~





특유의 넉살스러운 말투로 사고 친 나를 애써 다독여주실 만큼 유쾌하고 즐거우신 분이었다. 자라나는 새싹은 짓밟으면 안 된다고, 이 일로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하지 말라던 팀장님의 말씀이 나를 쑥쑥 키워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일을 벌이고 너무 긴장했던 나는 비행 한 번에 4kg이 빠져있었다…)









이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세 번째 팀의 팀장님과 함께 팀 생활을 했을 땐, 힘들지만 아무렇지 않은 채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사람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그 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던 좋은 팀장님이셨다. 하지만 이런 팀장님과 다르게 당시 부팀장님은 반대로 내 기준 유머감각이 제로였다. 혹은 그게 본인이 생각하는 유머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남을 상처 주고 깎아내리며 하는 유머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걸 재밌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러모로 안 맞았던 것인지 나는 미움을 받았다. 이 말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건 당시 세 번째 팀에서 유일하게 승진을 했던 건 나였고, 그 부팀장님이 비행마다 같은 점프싯에 앉은 승무원에게 '우리 팀에서 가장 진급 안 됐으면 하는 주니어 승무원만 혼자 진급을 해서 마음에 안 든다.'라고 하시는 걸 건너 건너 들었으니까. 당시 입사한 사번 동기 중에 진급한 승무원은 나 포함 6명, 모를 수가 없었다. (같이 진급한 동기가 "이거 너 말하는 거 아니야?" 하고 부팀장님 성함을 얘기해 줬는데, 내가 맞았다) 






이런 눈으로 날 바라보는 부팀장님 밑에서 (상위클래스 서비스 코드를 받기 전이라 항상 이코노미에서 같이 근무를 했어야 했다) 내 잘못이 아닌 데 억울하게 혼나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진급했으니 내 책임이고 내가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벙크에 레스트 하러 간 사이에 누군가 오븐에 세팅한 핫타월 상태를 보지 않았다고 혼나고(제가 안 했는데 어떻게 보나요..? 심지어 서비스 나가기 전 타월이 이상하다고 잠깐 서비스 멈추자고 한 건 저인데요...), 다른 사무장님이 오븐에 메인디쉬를 여섯 개 빼놓고 세팅했는데 그걸 내가 확인하지 않았다고 혼나고(저보다 20년 먼저 입사한 사무장님이 하신 일을 제가 따라다니면서 확인하고 감시해야 하나요...?) 막내가 화장실 청소를 잘하지 않는다고 혼나고(할 말이 있으시면 막내에게 직접 하시면 되지 않나요...? 혹은 본인이 직접 화장실을 청소하셔도 되는데...)...  물론 괄호 안의 말은 내 마음속에서만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 잊힌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대 환장 파티인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그땐 내 몫이려니 하고 넘겼는데 어느 날 또 일이 생겼다. 당시 여동생이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았고, 약물로 치료 가능하다지만 나와의 조혈모세포 적합성 판단을 위해 내 피를 뽑아 검사를 마치고 난 비행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형제자매는 골수가 다 맞는 거 아니야? 하겠지만, 실제 그 확률은 20% 정도. 5분의 1 만이 일치한다. 혹여나 약물로 치료가 어려울 경우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해야 했기에 우린 꼭 일치해야 했고... 그 어느 때 보다도 무서웠다. 혹시나 우리가 80%의 확률에 해당될까 봐.





그런 마음을 갖고 간 프라하 비행. 여지없이 나는 또 부팀장님께 혼이 났고(아마 저 위에 쓴 핫타월 세팅 날이었던 듯하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잠 한숨도 못 자고 레스트 가서도 생각에 잠겨 울적한 마음이었기에 약해진 내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분도 당황하셨던지 '어머 너 왜 우니? 가서 눈물 닦고 오렴'이란 말에 뭐라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 제가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제 곧 두 번째 식사 서비스 시작이니까 화장실 가서 정비하고 오겠습니다






이 말씀을 드린 게 나는 집에 '우환 있는 애'가 됐다. 화장실 다녀온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팀 언니가 '집에 우환이 있어? 부팀장님이 네 집에 우환이 있어서 우는 거래. 지금 다른 사람들한테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고 다녀'라는 말에 진짜 심장이 또 차갑게 식어버렸다. 어쩜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관리자라는 사람이, 선배라는 사람이, 아니 그냥 사람이. 








그 이후로는 나도 팀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으니까. 비행하다가 손이 크게 다쳐서 한두 달 정도 병가로 쉬었기에 더더욱. 그래도 하나 기억에 남는 일은, 우연한 기회에 추천으로 사내 대외 행사의 사회를 보게 됐고, 그 이유 때문에 팀 비행에서 빠졌던 날이다. 예전엔 팀장님께 휴가를 쓰거나 병가, 병가 대체 휴가를 쓰면 (지금도 그렇지만) 항상 왜 그렇게 됐는지 보고를 드렸으니까 그즈음해서 팀장님과 부팀장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갑작스럽게 잡힌 행사 때문에 다음번 팀 비행에 빠지게 됐다는 말에, 팀장님은 잘하고 오라며 응원을 해 주셨지만 부팀장님은 '너 지금 나한테 자랑하니?' 란 말씀을 하셨다. 듣자마자 입이 턱 막혀버렸다. 






그래서 그분은 나에게 마지막 기억이 그 말로 남아있다. 사실 큰 행사의 MC를 본다는 것이 보통 긴장되는 일이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행사는 종종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행사를 망하면 그 업체와 다시 일하지 않으면 되는 일, 이 세상에 일할 곳은 많으니까. 하지만 내가 정직원으로 근무하는 곳에서 갓 인턴 딱지를 뗀 내가 회사의 회장님과 내외빈분들을 모시고 큰 체육관에서 행사를 이끌어 나간단 사실은 정말 너무나도 긴장됐다. 여기선 도망갈 곳이 없으니 무조건 잘해야 했다. 




그 부담을 잘해야겠다는 욕심으로 바꿔준 부팀장님이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고마움을 갖고 행사에 임했다. 어찌 보면 감사한 일. 이분은 이후에도 회사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항상 본인은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대리 진급이 늦어졌지만 복직하면서도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과장 진급은 빨랐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항상 공부하라고 하셨으니까. 나보다 20년 가까이 먼저 입사한 선배님이셨지만 여러모로 지기 싫어(?) 덕분에 나도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게 됐다. 아 여기서 목표는 인성과 실력 둘 다 가진 사람이 되자! 였으니까, 저 부팀장님이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맞다.  




그래서 나는 이 팀에서 사내 영어자격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다음 팀에서 상위클래스 코드를 받고 방송 자격도 높이는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실습비행으로 간 런던에서 마셔 본 커피, 플랫화이트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기억을 심어줬었다





조식을 먹은 후 같이 투어를 나갔다 (문짝을 떼고 홀쭉해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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