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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미 Apr 11. 2024

비행 중(3) - 차가웠던 나를 열정으로 채워준 시험

그래서 뜨거웠던 여름


요 며칠 날이 따뜻해졌다. 완연한 봄이 느껴지고 때로는 더운 한낮도 겪다 보니, 몇 년 전 내가 보낸 뜨거웠던 여름이 생각났다.



그 해는 동생이 아파서 입원했던 시기라 엄마도 함께 병원에 계셨다. 키우던 강아지는 이모네 집으로 가 있어야 했다. 아빠와 나만 있는 집에서 서로 일만 하며 무채색의 삶을 지속하고 있었기에 뭐라도 집중하고 에너지를 쓰되 침체되지 않기 위한 일이 필요했다. 그때 좋은 분이던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분이던, 회사 사무장님들이 해주신 조언이 생각났다.




첫 팀의 팀장님은 팀이 끝나고 나서야 내가 니방, 삼방 언니들에게 겪은 일들을 아시고 심심한 위로와 함께… 나이가 있으니 빨리 진급을 하면 지금보다는 편할 거라고 따뜻한 조언을 해주셨다. 세 번째 팀의 부팀장님은 자격을 따지 않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다 말씀하시며 어쨌든 뭐라도 해야 된다고 강조하셨다. 두 분의 의도는 다르지만 나에게 목표를 결정하게 해 주셨다.







승무원들은 일반 회사원과 다르게 비행 외의 부분에서 평가받을 것이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진급과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는 대부분이 비행에서 파생된 거랄까. 업무 지식에 해당되는 비행 준비는 비행을 해야, 브리핑을 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이고. 팀워크도 비행을 해 봐야 보이고, 하다못해 외적인 어피어런스도 비행을 위해 출근해야지만 보이는 부분이니까. 그 이외 평가할 수 있는 기여도는 사내 서비스나 안전에 아이디어를 제안해서 채택이 됐다거나 비행 관련 서비스 품질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제안 리포트를 쓰는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혹은 나처럼 회사 행사에 지원을 가거나 하는 등의 흔치 않고 일반적이지 않은 일 등)




나 스스로, 나와의 싸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영어 사내 자격 업그레이드와 방송 최상위자격 획득 이렇게 두 가지 인 듯 싶다. (그래서 많은 승무원들이 승진을 목표로 하면 이 두 가지를 제일 열심히 노력한다) LT, RT로 나뉜 토익과 ST을 의미하는 토익 스피킹은 각 점수가 회사의 기준에 맞춰 3단계로 세분화되어 있고, 방송은 한국어와 영어 각각 점수를 매겨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데 80점 이상인 기본 B 자격(인턴 아닌 승무원이라면 누구나 있어야 하는 필수 자격), 90점 A 자격으로 나뉜다.




그래서 내 목표는 영어 2등급 (LT, RT, ST 모두)와 방송 A 자격 취득으로 정했다. 입사할 때 토익 610점이라는 충격적인 발(?) 점수로 입사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낼 점수가 많다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지원자격 550점을 갓 넘긴 600 초반의 점수는 사내 자격 점수로 모두 3등급에 해당했으니까. (여담이지만 요즘은 토익 기본 800점에 잘한다 싶으면 900점 대인 신입 승무원들이 많아졌다)








토익 점수는 생각보다 쉽게 올랐다. 비행을 하며 해외 체류를 하며 영어에 귀가 트여서일까 RT와 LT 점수는 쉽게 2급이 되었다. 탄력 받아 열심히 해보자며 토익 스피킹 시험과 기내방송 시험을 둘 다 같이 준비했다. 기내 방송 중 한국어는 90점 이상이었으나 영어 방송 점수가 부족했기에 토익 스피킹 공부를 같이 하면 영어 말하기에 도움 되니 둘 다 윈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맞았지만 과정은 너무 어려웠다.




한두 달 사이에 토익 스피킹 시험을 열세 번이나 봤다. 질보다 양이라며 유난히 쉽거나 나에게 잘 맞는 문제가 나오기만을 바라며 그렇게 무식하게 계속했다. 운이 좋게도 점수를 따서 자격을 제출했던 달은 취업시즌이라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세 번 시험 보는 날이 많았다. 오프에 짬짬이 시험을 보고 때로는 퇴근하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시험 보러 간 날도 있었다. 집은 인천이었지만 더 많은 시험을 보기 위해 신촌으로 다녔더랬다.




오죽하면 신분증 확인을 해 주시는 분이 날 알 정도. 열두 번째였나 그날도 퇴근하고 옷만 갈아입고 시험을 보러 갔는데, 내가 너무 반가우셨던 건지(?)… 심지어 나는 단호한 의지를 담아 단발 길이로 머리도 짧게 자르고 갔는데 말을 거셨다.




시험 결과가 좀 많이 급하신가 봐요? …



네… 어떻게 날 알았지. 머리도 잘랐는데. 잘못한 건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리는 바람에 그날 토스 시험도 발로 말아먹고, 그다음 신촌지점으로 예약해 둔 일정을 인천 끝 송도에 가서 시험 보는 것으로 바꿨다. 이미 기간이 촉박했는데 빈 곳이 얼마 없어서 멀고 먼 곳으로 정하게 됐다. 신촌에 비하면 기재도 낡고 주변에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달랐지만 (신촌은 대학생들이 많아서인지 다들 영어를 너무 잘했다) 신기하게도 바로 점수가 나왔다. 그것도 내가 필요로 하는 점수보다 10점 더 높게!




승무원들 간에 그냥 하는 말로 서울과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시험 보면 성적이 잘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것 때문인가 싶어 아리송했다. 혹은 누군가 또 날 알아볼까 봐 이번 시험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봐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뜨거웠던 여름 그보다 더 뜨겁게 노력했던 내 노력의 결실이 다가왔다. 이렇게 담담한 척 써서 그랬지만 사실 그땐 자다가도 영어로 말하기도 하고 하루종일 토익스피킹 답변을 외우느라 비행 가서 레스트 시점에도 혼자 뭐에 홀린 사람처럼 줄줄 외웠다.








입사 후 가장 첫 목표로 세웠지만 2년 반 동안 따지 못해 고생했던 방송 상위자격도 그즈음 땄다. 첫 팀 때 팀 언니들이 ‘왜 채미 씨는 방송을 하던 사람이라면서도 방송 자격을 못 따?’라고 무안 주어 억지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선배들에게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방송 A 자격을 따기 위해 한 달 8일의 OFF 중에 6일은 회사에 가서 교육받았지만 쉽게 따지 못해서 어느 정도는 포기했는데… 신기하게도 토익스피킹 2급을 따자 마자 방송 자격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운이 좀 좋았다. 일반적으로 한국 입국 시 검역 관련한 방송을 승무원들이 많이 어려워하는 데, 다행히도 숫자와 까다로운 발음이 많은 방송문이 대폭 축소됐고 바뀐 첫 시험에 바로 붙을 수 있었다. 오히려 연습할 때 보다 시험이 쉽게 나오니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달까. 한국어 방송 점수도 같이 올라 93점을 받았다. 기분이 더 좋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A 자격을 가진 승무원들은 비행을 하다 보면, 다른 승무원들에게 방송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떤 남자 사무장님께는 카톡으로 내가 녹음한 방송문을 보내드린 적도 있고(A 자격 갱신에 성공했다며 기프티콘을 보내 주신 적이 있다) 중간중간 승무원들이 쉬는 레스트 시간에 자신의 단점을 봐달라고 해서 봐주고 조언을 해 주는데, ‘일 년 했는데도 안 됐어요’,  ‘아이를 엄마께 맡기고 쉬는 날에도 회사 출근하며 공부하는데도 안 돼요’ 너무 힘들어요 하는 분께 마지막에 내가 꼭 하는 얘기가 있다.






저도 이년 넘게 걸렸는데요 할 때는 정말 지치고 힘든데.. 지나고 보니까 그 자격이 더 오래가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 방송을 오래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해서 자격을 따신 분들은 그 자격이 더 오래오래 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사실 어렵게 딴 방송 자격은 5년이라는 제한을 갖는다. 그 시점이 되면 다시 갱신을 해서 A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은 다 그런 건지 자격을 땄을 땐 정말 사내 모델보이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방송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의 습관이 나와서 회사에서 추구하는 방송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런 걸 A 같지 않은 A라고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있다) ‘기왕 딴 방송 자격은 누가 들어도 잘하고 인정해 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시간이 걸려도 단단하게 쌓아온 것들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항상 말미에 내가 덧붙였던 말이다.







비슷한 말로, 진급이 안 돼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도 말하곤 한다. 우리 회사는 직급이 대리부터 재킷 색상이 바뀌는지라 눈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직급이 사원인지 혹은 사무장인지 너무나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입사 한 지 10년이 넘은 사원, 5년도 안 됐지만 대리가 된 후배. 누가 뭐라고 하는 게 절대 아닌데 이상하게 재킷 색깔은 사람에게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든다. 그러려고 색상을 구분 지어놨나 싶을 정도로.




‘나 이번에도 또 안 됐는데 어떡하지’라고 울먹이는 제일 친한 동기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앞으로 진급하면 사무장 되고 평생 그 색깔의 사무장 재킷을 입을 텐데, 네가 회사 다니면서 이 사원 재킷을 얼마나 더 입어보겠어. 앞으로 평생 사무장 재킷만 입는다 생각하면 지겹지 않을까?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남들이 들으면, ‘세상 편하게 좋은 말만 하네. 진짜 안 힘들어보고 절실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 아냐?‘ 하겠지만 오히려 너무 괴롭고 힘들었기에 결국엔 해탈 비슷하게 순응하고 놓아버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얻어졌다. 사실 이 짧은 글 안에 그 이야기를 다 담긴 어렵지만 서재 한편에 쌓여있는 내가 썼던 일기장들을 보면 우울함으로 눈물로 그리고 다짐으로 꾹꾹 눌러쓴 글 들이 많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차갑게 식었던 나를 꾸역꾸역 일으켜 세워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며 뜨거운 20대 후반을 보냈다. 30대 후반을 보내는 지금, 그 온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또 다른 글을 쓰고 있고. 사실 얼마 전 발표가 난 진급 결과에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하다 보니 그때의 내가 생각 나 이렇게 적어본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또 위로가 되길 바라며.










다낭 콩카페에서도 함께 한 내 일기장




모스크바에서도 곁에 있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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