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묵묵히 이겨내서 얻은 영어 성적과 방송 자격. 그것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노력에 대한 위로의 결과였을까 나는 그 해에 바로 부사무장이 되었다. 90여 명의 동기 중 5명 남짓이었던 첫 해 진급. 사실 그때의 나는 너무 지쳤기 때문에 진급을 했다는 것이 막 엄청 큰 행복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날 대견해하시는 부모님의 반응을 보는 것이 내 비어버린 마음 한 켠을 따뜻하게 감싸줬다. 왜냐면 그때는 동생이 1년 가까이 대학병원에 입원하면서 엄마가 옆에서 보호자로 챙겨주시느라 우리 집엔 웃을 일이 없었으니까.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곱슬머리 강아지 내 동생 베리도 사촌 이모님 댁에 가 있느라 내 삶은 무료하고 쓸쓸했으니까.
우리 회사는 진급을 하면 자켓 색깔이 바뀐다. 때가 잘 타는 베이지 색에서 고려청자 같은 화사한 푸른빛으로. 단순히 명찰 색깔, 스카프 색깔이 바뀌는 것이 아닌 자켓의 색이 바뀌기 때문에 유난히 그 진급이 크게 느껴졌는데 이 새로운 파란 자켓에 적응되기도 전, 비행기 안에서 작은 사고를 당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는 사고를 말이다.
7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하다 보면 중간에 ‘레스트’ 라며 승무원들이 반반 나누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있다. 첫 번째 식사와 두 번째 식사 사이 불을 끄고 승객들이 쉬는 시간에 우리는 다음 서비스를 준비하며 나누어 쉬는 시간인데 이때 보통 갤리 안에서 ‘카트 정리’라는 것을 하게 된다. 꽉꽉 음료가 가득 채워져 실리는 베버리지 카트에서 첫 번째 식사 서비스를 하며 빼서 썼기에, 듬성듬성 비어버린 카트를 다음 서비스 때 꺼내 쓰기 편하도록 한 쪽에 음료를 몰아서 넣는다. 다시 말하면 비행기 안의 냉장고 정리랄까.
냉장고에서의 한 칸이 드로워라고 불리는 하나의 서랍이라고 보면 편한데, 이 드로워 하나에는 오렌지 주스가 예닐곱 팩이 실리기도 하고, 페트병 콜라가 세네 병 씩 들어있어서 첫 번째 서비스를 마치고 힘든 몸으로 이 작업을 하면 느껴지는 체감 무게는 10kg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이렇듯 무겁기도 하고 부상의 위험 때문에 보통 주니어와 시니어 두 명이 한 조를 이뤄서 같이 도와 정리하는 편이다.
이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그런 날. 반대편의 후배가 페트 콜라가 가득 채워진 드로워를 밀다가 뚝 떨어진 콜라병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내 오른쪽 엄지 손가락에 정확히 떨어졌다. 평소 같으면 그냥 아프고 말겠다 싶었는데 뚜껑이 엄지손가락에 정확히 맞아떨어져서인지 유난히 아프고 또 아팠다. 미안해하는 후배 앞에서 아픈 척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바로 붉은색, 보라색, 결국엔 검게 변해버린 손을 보다 보니 눈물이 찔끔 났다.
결국 한국 도착하자마자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 꽤 큰 부상이었다. 더 정확히 보려면 다른 검사를 해야 하지만 여름 성수기라 비행-집만 반복하던 생활이었기에 집 앞 병원이 최선이었다. 비행을 하면 근골격계 질환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데 이렇듯 자주 뵙던 의사 선생님은 보시더니 엄지 손가락의 힘줄이 끊어질 뻔 한 상황이라고. (간당간당 붙어있다는 표현을 하셨다…) 여기서 손을 무리하게 쓰면 진짜로 끊어질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팔꿈치 쪽 까지 절개해서 양쪽을 묶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인지 진단서 상 나는 5주를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왜 또 오른쪽 엄지손가락이지. 왜 또또 오른쪽인 거지. 이미 여러 번 치료받았기에 내 상황을 아는 의사 선생님도 같이 안타까워해 주셨다. 사실 1년 전에도 이미 오른쪽 손으로 꽤 오래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첫 아픔은 입사 1년 차였을까. 아직 신입 티가 날 무렵이었다. 승무원은 1명 당 본인 구역 50명 정도의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이 있는 승객 짐 핸들링하는 일을 거의 하고 있지 않지만(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노약자, 유소아 동반 승객에겐 도와주고 있다.) 그 당시는 기계적으로 로봇처럼 당연하게 승객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던 시기였다.
사실 1년 정도 전에 본인이 제작한 가죽 캐리어라며 옆면에 손잡이가 없는 독특한 캐리어를 들고 온 손님이 너무 무거운 짐을 빼야 하는데 빠지지 않는다며 도와드리다. 손잡이가 없어서 바퀴에 손잡이를 넣어서 돌리는데 늦게 비행기에서 하기하는 게 미안하셨던지 바로 가방을 끌어내려 바퀴에 엄지손가락이 낀 채로 밑에 떨어져 손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물론 카트 고정장치인 락킹이 고장 나서 비행기가 땅에 터치다운을 하면서 내려와서 내 왼쪽 무릎을 친 일, 앉아서 일하다 일어나는데 선배가 위쪽 서랍 문을 열어둔 걸 말하지 않아서 일어나다가 그 모서리에 머리에 열상을 입은 일(찢어짐)…. 이 밖에도 사고가 참 많지만 오른 엄지손가락은 꽤 많이 자주 반복해서 다쳤다.
남들에 비해 작은 손이라 일하며 손에 피로도도 많이 쌓여서였는지 집 근처 정형외과는 내 단골 병원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이번 콜라병 사고를 당해 손이 새까맣게 변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진급하고 바로 다음 비행부터.
5주라는 진단서를 받고 병가처리 하기 전 팀장님께 보고 드리려 전화를 드렸다. 듣자마자 하신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5주는 너무 길고 2주만 쉬면 안 되냐는 말이었다. 의사 선생님 아닌 팀장님의 진단은 2주였다.
팀에 부팀장님이 워낙 나를 싫어하셨고, (비행마다 우리 팀에서 제일 진급 안 됐으면 하는 애가 주니어인데 걔 혼자됐다고 하도 말하고 다니셔서 그 말을 들은 동기가 전해줄 정도였으니... 그 해에 우리 동기는 6명 진급을 했기에 서로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선배 언니들도 나를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공교롭게도 이렇게 진급하고 쉬어버리면 분위기가 더 안 좋을 거라는 염두에 해주신 말씀이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진급을 하면 그때부터 병가를 편하게 쓰는 분위기였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뭐... 인사고과에 감점이 되는 병가를 쓰고 싶어도 아파도 참고 비행하다가 진급을 하면 3-4년은 진급할 일이 없기에 그 시기에 병가를 많이 쓰는 승무원들의 평소 관행이 있었으니까.
다시 2주 진단서로 바꿔달라는 말에 의사는 이유를 물었고 이야기를 듣더니 그 팀장님과 통화해야겠다며 팀장님과 큰소리로 화를 내며 통화해 주셨다. 덕분에(?) 3주라는 시간을 쉬었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그땐 진단서보다 더 적게 내 휴가를 소진하며 병가를 대체하며 쉴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무조건 진단서 상의 기간만 쉴 수 있다… 이게 당연한 건데 말이지…)
가뜩이나 휴가가 없는 3년 차 승무원이었지만 덜 쉬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서 내 휴가를 소진하며 3주를 쉬었다. 쉬는 동안 열심히 치료받았지만 다시 복귀하니 또다시 손이 새까맣게 멍들기 시작했다. 그 손을 본 팀장님도 결국은 마저 쉬고 오라며... 결국은 새로 받은 진단서로 총 한 달 넘게 쉬고 다시 복귀했다. 내 휴가는 이렇게 다 사라졌다. 그즈음은 팀도 새로 바뀔 때라 이왕 이렇게 된 일 새 마음으로 새로운 팀에서 시작하자 다짐했다.
시간이 지나자 손의 멍은 사라졌지만, 마음의 멍은 더 깊고 진하게 남았다. 고작 카트 정리하다가 손가락 하나 다친 걸로, 공교롭게도 진급하자마자 한 달을 쉬어버린 팀 내 유일한 진급자이자 주니어가 나였으니까. (말한 것처럼 진급하면 다음 승진까지 시간이 있으니 평소 아팠던 부분을 진단받아 쉬는 승무원이 많았다. 진급하자마자 그런 행동하는 게 얌체 같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사고과에 반영되니까 진급 전까지 아픈 걸 꾹꾹 참는 승무원도 너무 많기에… 나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 말이 돌고 돌아 다친 것도 억울한 나에게 상처가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