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는 남자, 팀장님 보고 싶어요.
유난히 그런 날이 있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날. 화창한 날씨 맑은 구름 속에서 스쳐가는 외로움을 느끼는 오늘 같은 날이, 바로 이런 날이지 싶다. 그래서 그리움에 적어보는 내 팀장님과의 이야기. 어디에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첫 번째 이야기
직업적으로 힘들 때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는 건 참 좋은 일 같다. 일하면서 힘들 때가 있는데(무슨 일이던 안 그러겠냐만은) 가끔 정말 좋은 승객을 만날 때, 닮고 싶고 존경하는 사무장님을 뵐 때, 나 스스로 그냥 뿌듯한 날. 문득 초심이 생각날 때... 이러한 기분을 입사 8년 차지만 아직도 종종 느끼고 있다. 오지랖 같아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이러한 부분을 채워보세요 혹은 이건 아니에요 다 말하고 싶은데 그러다가도 내가 뭐라고 이러고 있나. 이러면서 또다시 침묵하게 된다. 입을 다물어버린다.
내가 정신적으로 정말 따르고 존경하는 분인 송팀장님이 그러셨다. '팀장님 저는 미용실 가서도 그냥 승무원인 척 안 하고요, 어디 가서 직업 뭐냐고 물어보면 그냥 카페나 서비스직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너 스스로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거라고. 그 이후로 가끔 승무원 준비생들의 커뮤니티인 전현차 카페에 가서 힘들 때마다 글을 읽곤 했다. 되고 싶은 사람들의 그 마음을 읽고 기억하고 싶어서.
저어어엉말 솔직히 말하면 나도 노력해서 얻은 직업이긴 하지만 그 크기를 따져본다면 작은 노력이라고 생각하기에... 동기들에 비해 얻어걸린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괜스레 미안해서... 승무원이 아닌 다른 직업에 그러한 열망을 갖고 꿈을 꾸었던 내가 있었으니까... 그게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던 때가 있었으니까.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은 빼내는 양 내가 갖는 미안한 마음 때문에. 암튼 승준생들의 마음이 애틋하고 안 돼 보여서 카페에 가서 위로를 받고 위로를 해주다 보니 요즘이 공채시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이 일에 자부심이 없는 건 아니다. 너무나도 열심히 좋게 일을 배우면서 해 나가고 있는데 가끔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내가 못 미치는 것 같아 그 부담감에 잠깐 내 직업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싶어 하는 것 일뿐. 내가 뭐라고.... 집에 정수기 관리해 주시는 분의 딸, 길 가다 만난 요구르트 판매원 아주머니의 조카, 우리 집 아래층 비숑 키우는 아줌마 조카, 아빠 전 회사 후배 딸. 유니폼을 입고 다니다 보니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혹은 내 직업을 아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부끄러웠다. 너무나도 반짝이는 눈망울이 진짜... 하. 이게 뭐라고. 이 직업이 도대체 뭐길래. 거기에 난 왜 또 쓸데없는 이런 책임감에 혼자 또 끙끙 앓는지. 그래도 팀장님 말씀을 들으니 어깨에 가득 짊어진 무게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두 번째 이야기
손이 아파 한 달 반을 쉬었다. 꽤 오래 쉬어서인지 오늘같이 아침 퀵턴 비행을 하러 가는 출근길이 어색하다. 이 시간에 버스가 이렇게 텅텅 비었나 싶기도 하고, 원래 이렇게 안개가 자욱했나. 앞이 하나도 안 보이네 차 가져올까 고민했는데 그랬으면 무서울 뻔했다 싶기도 하고... 뭐 덕분에 나는 이렇게 오랜만에 출근길에 노래 듣고 자욱한 안개를 바라보며 감성에 젖어 이렇게 끄적이긴 하지만.
임시 저장에 넣어둔 글이 스무 개 남짓.... 마무리 지어야 할 것도 많고 새로 쓰기 시작한 글도 꽤 되는데 오늘 이 마음은 간단하게라도 남기고 싶어서. 이만큼만 썼는데도 벌써 손이 아프지만 목표는 짧게라도 다 써보기! 니까 한번 해 봐야겠다.
비행을 가기 전 우리는 브리핑이라는 것을 한다. 오늘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에 대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이야기하고 다시 말하면서 리마인드 시키고 좋은 의견을 나누고(라 쓰고 거의 비슷한 얘기만 하긴 한다. 화상 주의, 승객 콜버튼 미싱 주의, 식사 서비스 시 밀스킵 주의....) 그 달의 중점 강조사항을 또 강조하고 음 또 뭐가 있지. 최근 회사의 혹은 타회사의 이슈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레이오버하는 스케줄의 경우 현지 CIQ와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등등. 그게 끝나면 운항과 합동 브리핑을 한다. 오늘 비행시간 터뷸런스 예상시간 비정상 시 혹은 정상시 이렇게 하겠다는 사전협의. 등등. 오늘도 당연히 나는 그 브리핑을 하겠지. 언제나 매 비행 2시간 전에 반복되는 일이지만 가끔 브리핑 가는 게 설렐 때가 있다.
(동기 비행을 앞뒀을 때나) 오늘 같이 내가 존경하는 사무장님과 비슷한 시간에 브리핑을 해서 잠깐이나마 얼굴을 뵐 수 있을 때! 오늘 출근길에 내가 쓸 브리핑 룸 리스트를 보고, 비슷한 시간에 그 사무장님의 성함을 확인하고 정말 정말 설렜다. 지금도 설레고 있다. 나는 보통 커피나 간식이나 평소 그 팀장님이 좋아하시고 즐겨드셨던 군것질거리들을 사서 책상 위에 쪽지와 함께 올려놓는데 오늘도 그럴 수 있는 날이라서.
작년 가을, 작년의 새 팀이 된 지 백일쯤 됐을까. 팀 생활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회사생활을 하며 세운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에도 벅찬데 집안에 일도 생기고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려워져서 정말 다 놓아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을까 싶지만... 무튼 그때 그 팀장님을 우연히 회사 식당에서 뵈었고 ‘잘 지내고 있니’라는 따뜻한 말씀에 엉엉 울어버렸다. 겪고 있던 힘듦을 꾹꾹 참고 있었지만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어서 그랬나... 정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잘 지내냐는... 그 한마디 말을 하셨을 뿐인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팀장님은 당시 나의 새로운 팀장님께 따로 얘기할 게 있다며 내 얘기를 해주셨고... 나를 잘 봐달라고. 1년 동안 지켜보니 좋은 애지만 아직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그래도 마냥 나쁜 아이는 아니니 좋게 봐주시라 그런 얘기를 전하셨다고 건너 들었다.
사무장님은 평소에도 항상 그러신 분이었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시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이 맞았을 때나 혹은 틀렸을 때도 모두 다 지켜봐 주신 뒤에 나에게 이해가 되게 설명해 주시며 이해시켜 주셨다. 아주아주 큰 나무 같아서 그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는 그런 분이셨다. 집에서는 아빠에게 기댔다면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 해만큼은 팀장님께 기댔었다. 덕분에 누구에게나 경계를 많이 하는 나는 어려울 수도 있는 팀의 팀장님께 많이 의지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꽤 행복하게 보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도 그 팀장님의 돌봐주심이 정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행복했던.... 돌아가고 싶을 만큼 기억에 남는 팀 생활을 했다.
그 사무장님을 오랜만에 뵙게 된다. 비행을 잠깐 쉬셨다가 다시 복귀하셔서 체감상 진짜 2-3년은 지난 느낌! 이렇게 오랜만에 정말 잠깐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눈인사를 하고 작은 마음이지만 챙겨드릴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오랜만에 팀장님을 뵈면 또 물어보시겠지. ‘잘 지내고 있니?’. 지금의 나는 작년보다 여러모로 다 상황이 나아져서 오늘은 울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팀장님 저 진짜 잘 지내고 있어요. 2년 전 해주신 말씀들 너무 다 감사하고 마음 깊이 새기고 있어요. 앞으로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계속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은 팀장님이 말씀해 주신 것들이 절 버티게 하는 큰 힘이 될 거라 확신해요. 저도 남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
블로그엔 내 이야기가 참 많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쓸 때엔 좋은 화장품을 같이 추천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때로는 내 감정도 쏟아내고, 바람도 담아보고, 슬픔, 기쁨... 특히나 직업생활을 하며 겪은 일들을 참 많이 털어놨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위로의 공간이었다.
여러 직업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좋은 사람은 남들과 비교해 보면 얼마 얻지 못했다... 사람의 단계를 나누는 건 옳지 못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 깊숙이 좋은 동료, 좋은 상사, 좋은 후배는 참 적었다. 물론 나에겐 충분했지만.
그래서 감사했다. 그 한 명 한 명이 다른 사람들 수백 명을 수천 명을 대신했으니까.
존경하는...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참 내가 많이 따르고 존경하던 팀장님이 돌아가셨다. 블로그에 포스팅도 했던 내 멘토, 나의 길라잡이 팀장님이 뭐가 급하셨는지 그렇게 빨리 가셨다. 벌써 한 달이 되었구나. 그 사이에 날씨는 참 더워졌다 다시 가을이 오는 느낌이다. 시간은 참 잘 가는구나.
아직도 믿기지 않고 먹먹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이렇게 혼자라도 적어본다. 더 많이 존경한다 말씀드릴걸. 더 많이 안부 여쭙고 더 많이 챙겨드릴걸.
그 언젠가 같이 비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 팀장님 생각하며 쓴 글이라고 부끄럽지만 읽어보시라며 블로그 링크를 보내드렸는데, 그때 보내주신 카톡만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
멋있네 채영
모든 사람은 길 위에 있지
그 길에서 즐거움도 얻을 수 있고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고.
문제는 그 길 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보이는 곳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게 중요하지.
사람들은 그 길 위에 있으면서도 길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내가 볼 때 채영은 자기 길을 제대로 걷는 거 같애.
너무 빠르거나 늦지 않게 저 산도보고 길가 꽃도 보고
나를 따라오는 사람 기다려도 보고 앞서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보고.
넌 잘하고 있고 끝까지 잘할 수 있을거야. 홧팅.
글구 오늘 수고했어!!
문득 적다 보니, 이젠 앞서가는 누군가가 없어서 어디에 물어봐야 하는지 먹먹해졌다. 팀장님이 걸어오신 길이 좋아서 그 길대로 따라가다 보니 회사에서 승무원을 가르치는 강사도 되었고, 승진도 했고 이미 많은 후배들이 생겼는데. 이제 여기서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길라잡이 멘토 팀장님이 사라지셨다. 생각 많고 불안함 많은 나를 무던하게 응원해 주시고 믿어주시는 어른이 계시지 않다는 생각은 나를 또 겁나게 만든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예전에 썼던 글을 읽으니 그땐 그랬지 라며 추억하게 된다. 잠시나마 예전을 생각하며 현재에 지친 내 마음을 쉬게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