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금방 가는 듯하다. 벌써 올해의 마지막 달력을 보고 있으니... 한 해를 돌아보고 다시 다가올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좋은 일들이 틈틈이 있었던 해였다. 상반기에는 '나만 외로운 게 아니었구나'라는 개인 저서 에세이를 출간하고, 하반기에는 문체부에서 주관하는 지역의 변화를 기록하는 생활사 기록가로 활동했다.
생활사 기록가는 지역이 담고 있는 소중한 기억을 기록해서 가치 있는 자료로 보존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다음 주 12.14~17 동안 청라블루노바홀 전시실에서 구술채록 프로젝트에 동참했던 인천 서구 문화원 직원분들과 구술자분들을 모시고 전시회와 성과공유회를 갖는다. 아래는 지난 몇 개월 간 생활사 기록가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경험이 ‘생활사 기록가’까지 이어질 줄은 올해 상반기만 해도 알지 못했다. 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우연히 마주하게 된 생활사 기록가!
이 낯선 단어를 처음 마주했을 때 ‘기록’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크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관심은 ‘구술채록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근 3개월이라는 시간을 동기들과 함께 열심히 달려왔다.
프로젝트는 12회 차 교육을 비롯해 기획서 만들기, 면담자 선정, 녹취록 완성하기 등등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프로젝트의 무게감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편하게 교육받고, 조사하고, 단순히 기록만 잘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묵직한 책임감과 세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과제들은 프로젝트의 사이즈를 가늠하게 만들었다.
이후 내가 선택한 것은 ‘집중’이었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했다. 그 결과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었고, 네 분의 구술자님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9월에는 예기치 않은 가정사로 열차에서 잠시 머뭇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다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인천 서구 ‘석남동’이라는 지역의 선주민과 이주민이었던 네 분의 구술자님을 만나 저마다의 다른 삶을 들었다. 1차 면담에서 구술자님들의 생애사를 듣는 동안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석남동의 지난 시간을 들을 때는 시대별로 달라진 지역의 변화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와 사라진 공간이 이제라도 구술로 남겨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술채록 프로젝트’는 동기들과 함께 달려온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알지 못했던 지역의 변화를 들을 수 있는 기회와 함께 네 분의 구술자님의 서로 다른 인생사를 들으며 내 삶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덤으로 내가 가진 장점을 발견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면담을 진행할 때는 나도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녹취록을 풀 때는 힘들었지만 완성 후 뿌듯한 성취감까지 맛볼 수 있었다.
기억을 기록하는 일은 중요하고 특별하다. 그것이 지역이든 사람이든 지금까지 역사의 흐름을 보면 기억을 기록하게 되면서 흘러오지 않았던가? 이번 ‘구술채록 프로젝트’가 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일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움직였던 모든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마무리까지 잘 되길 바란다. 그와 함께 기억으로만 남을 수 있었던 이번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또 한 권의 역사책이 멋지게 탄생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