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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에게 자아가 있을까?

by 비단구름

강아지는 자아가 없다고 한다. 자아(self)가 독립적이고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가,는 철학, 심리학, 종교, 과학 등의 오래된 주제다. 인간의 자아에 대해서도 논쟁 중인데 하물며 강아지의 자아란! 강아지에게는 자아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


개띠개는 외출할 때마다 일어서서 문 손잡이를 잡으려고 한다. 비록 문을 열지는 못해도.

청설모를 발견하면 번개처럼 쫓아가 나무 기둥을 끌어안고 힘을 내본다. 비록 나무에 오르지는 못해도.

출출하면 슬그머니 일어나 주방으로 가본다. 비록 냉장고의 식재료를 꺼낼 수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조리를 할 수도 없지만.

최애 견종인 진돗개만 보면 어김없이 좋아서 꼬리를 흔들며 친해지고 싶어 한다. 비록 진돗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지만.

길고양이를 볼 때마다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간다. 비록 고양이에게 날쌘 펀치를 맞아 코에서 피가 난 적도 있지만.


자아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세 살 아기처럼 “내가! 내가!”를 외치지만 목줄 하나 스스로 차지 못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의욕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뭐 하나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시도하고, 꾸준히 다정하다. “내가! 내가!” 하면서.


개띠개는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멈춰서서 우리를 기다린다. 개띠개와 나는 대체로 계단을 이용하는 데 엘리베이터를 몇 번이나 탔다고 계단보다 엘리베이터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앞서 걸으며 중간중간 우리가 잘 따라오나 뒤돌아보고 확인한다, 금조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금조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공원 화장실 간 케이를 기다리며 화장실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침 산책을 같이 나갔다가 금비가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을 빤히 보고, 금비가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하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개띠개는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자기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 모두를 공평하게 골고루 아껴준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흔들림 없고 지속적인 사랑을 준다. 이런 개띠개에게 자아가 없다고?



비가 오는 날이었다. 실외 배변을 하는 우리 개띠개. 비가 오건 말건, 비가 쏟아지건 말건, 똥오줌을 밖에서 싼다.


어딘가에 있을 가족을 기다리며 병원 마당에서 일 년 넘게 거주하던 개띠개는 실내 배변을 못한다. 개띠개를 데려오기 전 이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내가 개띠개가 실내 배변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선 ‘이제 어쩐다.’ 가장 곤란했던 부분이다. 나는 며칠이고 집안에서 꼼짝 않고 있을 수 있는 인간 아니던가.


개띠개를 데려가겠다고 결심하고선 부장님과 같이 병원 근처 동물 병원에 갔는데 개띠개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응가를 했다. 그것도 물똥을.


“긴장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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