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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13. 2023

풍수지리 -명당

풍수지리설에서는 만물은 '기'로 이루어졌으며 만물 중의 하나인 땅도 '지기'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지기'에 대해 음양·오행·주역의 논리로 체계화한 것이 풍수지리이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배산임수를 명당자리로 쳤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은 꼭 풍수지리를 배우거나 믿지 않아도 당연히 명당일 수밖에 없었다. 뒤에 산이 있고 앞에 강이 있으면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고, 강에서 물을 얻고 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고 산에서는 땔감과 먹거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사무실 동료 변호사님들과 점심을 먹는데, 한 변호사님이 곧 이사를 가는데 남자아이방은 현관을 기준으로 어디가 좋을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어디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생활풍수라는 것은 꼭 무슨 이론에 의한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나 더 편리한 것, 더 보기 좋은 것의 집합체가 아닌가 한다.


영화 '명당'을 보면 풍수지리에 능한 주인공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부모로부터 의뢰받아서 아이 책상 위치를 바꾸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아이 책상은 창을 마주 보고 문을 등지고 있었는데, 주인공은 문을 마주 보고 창을 등지는 것으로 책상위치를 바꾼다.


영화에서는 그 이유를 책상이 창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깥의 기운에 의해 집중력이 흩어지고, 문을 등지고 있으면 불안하다는 것이다.


보통 회사에서 사장님이나 임원들의 책상은 문을 바라보고 창을 등지는 위치로 배치한다. 이것은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그 위치가 가장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고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어서 안정이 되기 때문 아닐까 싶다.


나도 사무실에서 책상위치를 여러 번 조정한 적이 있었는데, 공간을 더 활용하려고 문을 등지는 방향으로 책상을 구석으로 몰았더니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왜냐면 누가 들어오는지 바로 확인이 안 되니 불편했고 등뒤에서 누가 쳐다보는 듯한 쎄... 한 기분이 들어서 심리적으로 덜 안정적이었다.


회사에 다닐 경우 풍수지리가 중요하게 느껴지는 포인트가 있다. 바로 회식자리 풍수, 회식자리 명당을 찾는 것이다.


상사나 대표가 있는 회식자리에서는 입구에서 사람들이 슥슥 잘 들어가지 않고 적체 현상을 보인다. 문쪽자리를 차지하려고.


나는 사선변호사일 때 상사인 변호사님과 회식하는 자리가 어려웠다. 내가 눈치가 별로 없는 맑은 눈의 광인시절 상사인 변호사님이 주최하는 회식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상사인 변호사님은 업무환경이나 사무실에 바라는 것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라고 말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강권하듯이 계속 괜찮다고, 이 자리는 그런 의미에서 마련한 것이니 어떤 얘기라도 좋다고 재촉하는 것이다. 다들 말을 안 하고 있으니 이런 자리를 만든 상사가 무안할까 봐 "그럼 제가.."이러면서 평소 생각했던 애로사항을 말했다.


상사는 다 듣고 난 이후에 이렇게 말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싫진 않고 주지스님 때문에 힘들다니까요?'


회식의 주인공은 늘 상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회식자리가 싫어졌다.


맑은 눈이 희미해져 가면서 나는 상사나 높은 사람, 또는 나보다 윗사람이 주최하는 자리에서는 명당을 찾기 시작했다. 경험상 회식자리 위치풍수는 이렇다.

                   [회식자리 풍수지리설]


1번이 상사나 대표자리 또는 주빈자리이다. 이하 1인자라고만 한다. 이때는 회사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니냐에 따라서 명당이 달라지는데, 회식참석자 중 1인자에게 잘 보이고 싶고 아부를 하고 싶거나 회사 위쪽 분위기나 정찰에 목적이 있는 경우 1인자의 옆자리인 2번, 3번이 명당이다.


4번은 위 목적일 경우 2, 3 자리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1인자와 가까워지기 좋은 차선의 자리이다. 1인자가 바로 앞에 앉은 사람과 말을 더 자주 할 것 같지만 옆 사람과 대화를 더 많이 나눈다.


술을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은 4, 5, 6번이 최악이 아닐까 싶다. 1인자가 2, 3번과 대화를 하다가 정신 들면 다시 4, 5, 6의 빈 잔을 보고 술을 권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4번.


도망가기에는 9, 10번이 좋으니 명당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도망갈 수 없는 자리라면 7, 8번이 명당이다. 왜냐면 문쪽에 있으면 허드렛일이나 심부름을 해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 8번은 사각지대라서 1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에 조용히 맛있는 음식을 촵촵하면서 욜로를 즐길 수 있다.



[회사 근무자리 풍수]


나는 한 때 사내변호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본 직원들의 자리는 위와 같았다.


팀장이나 부장은 보통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내에서 가장 뷰가 좋거나 창가자리에 앉는다. 위와 같은 자리배치일 경우 1번은 팀장이 모니터를 확인할 수 있으니 워라밸 0 자리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과장님이 1번 자리에 있었고, 얼굴은 늘 어두웠다. 2번은 팀장의 눈에 적절히 벗어나 있으면서도 팀장의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어서 회사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때로는 팀장의 부채나 주말 골프약속이나 가정 내 서열도 알게 된다.


3, 4는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자리이고, 5는 통로에 있는지 문 가까이 있는지에 따라서 다소 달라질 수 있겠다. 만약 팀장 자리가 1번이 된다면 팀장이 통화 내용도 듣고 간섭을 하기 쉬운 자리인 2번이 워라밸 0 자리가 되겠다.


어제 사무실 동료 변호사님들과 회식을 했다. 특별히 어디 앉고 싶은 자리가 없이 빨리 고만 싶었다. 함께 하니 모든 자리가 명당으로 느껴졌다.

[내가 그린 일월오봉도]


산 넘고 물 건너

이제 안전한 곳에 도착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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