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un 18. 2023
싹수가 노랗다.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싹이 노래져서 잘 자랄 가망이 없다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원인에 따라서 싹수가 노래도 잘 자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나는 5년간 주말농장 텃밭을 가꾸었고, 식물을 좋아해서 사무실과 집에 화분이 많다.
[못 생겼지만 귀여운 수확물]
[텃밭에서 꽃도 키웠다.]그러다 보니 농작물이나 화초의 싹이 노래지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잎이 노래지는 것이 수명이 다해서 정상적으로 떨어지는 것인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살릴 수 없는 잎인 것인지를 살피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살려보려고 노력한다.
경험상 식물의 싹이 노래지는 경우는 주로 햇빛부족, 해충 공격, 영양 부족, 수분 부족, 과습이었다.
그래서 화분을 음지에서 양지로 옮기기도 하고 식물영양제를 화분에 꽂아주거나 식물에 자극이 덜한 방법으로 해충을 없애려고 한다. 물이 부족하면 물을 주고, 과습인 것 같으면 물 주는 것을 건너뛰고 좀 기다린다.
싹수가 노랗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여럿 만났다. 그중 보호종료아동이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만 18세가 되면 보육 시설을 나와 자립하는 청소년들을 `보호종료아동`이라 부른다.
지금은 본인이 원할 경우 만 24세까지 보호시설에 머물며 자립준비를 할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동복지법상 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떠나야 했다.
민법상 성년은 만 19세라서, 보호종료아동은 성인이 되기 전에 자립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성년자는 어른 없이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휴대폰 개통, 월세 계약을 포함한 여러 가지 법률행위에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줄 어른이 없을 경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사소한 일로 품행이 나쁜 어른들에게 기대는 경우도 있고, 비행이나 범행에 연루된 사람의 도움을 받다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어쩌다 보호종료아동 출신인 것이 드러나면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보호종료아동이 머무는 방을 아지트처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자다가 나중에는 얹혀사는 정도에 이르거나, 각종 비행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호종료아동은 함께 있었던 점 때문에 어떤 사건의 공범으로 엮이기도 한다.
얼마 전 교도소에 있는 한 보호종료아동을 소개받았다. 나의 피고인이 아니라 나와 절친한 변호사님이 맡았던 사건의 피고인이었다.
이 친구 역시 누군가가 이 친구의 집을 아지트로 사용하면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 친구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사건 담당 변호사님은 이 친구에게 내가 쓴 책을 보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낸 책의 오타를 다 잡아준 사람이 이 친구다. 그 책의 오타들은 나와 에디터님이 2번이나 교정을 보면서도 잡아내지 못한 것들이었다.
책을 얼마나 꼼꼼히 읽었으면 편지로 내 책의 몇 쪽 몇 번째 줄에 어떤 오타가 있다고 자신의 담당 변호사님한테 편지를 썼고, 나는 그 친구 덕분에 2쇄를 찍기 전 여러 부분의 오타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후 법무부 온라인민원서비스를 이용해서 내가 그에게 감사편지를 썼다. 이후 몇 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 안에서 앞날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그에게 책을 몇 권 보내주었다.
그러면 책을 읽은 소감을 보내왔다. 이렇게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이 친구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이 친구가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었겠다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도 식물처럼
싹이, 그리고 다 자란 잎도 노래질 수 있다.
싹이 노래지더라도 따뜻하게 양지로 옮겨주고, 물을 주고 영양공급을 해주듯 믿어주고 기회를 주고, 해충 같은 사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면 다시 튼튼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