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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l 03. 2023

피고인의 아버지 장례를 돕다.

작년 가을에 나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버지 모습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내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던 날 지방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수료식을 마치고 연수원 앞에 있던 고깃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아버지께서 계산대 앞에서 주머니를 뒤집더니 접힌 만 원짜리들을 펴서 내는 것이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수료식에 오신 게 기뻐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문득 떠오르는  가난의 증거들에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중학교만 졸업하셨는데 늘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공부만은 어떻게든 시켜주겠다."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고된 인생을 살면서도 자식 셋을 대학 보내고 나의  사법시험 뒷바라지도 하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직업은 경비원이었고, 폐암에 걸리고 나서야 일을 그만두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려고 어머니께 아버지의 지인들 연락처를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일하던 경비원들에게는 장례를 알리지 말라."라고 했다고 하셨다.


아버지와 같이 일하던 경비원 아저씨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생활이 많이 어려웠다고 한다. 친하게 지내면서 동료들의 처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사람들은 3만 원 5만 원이 무서운 사람들이니  알리지 말아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도 함께 일하던 사람들인데 마지막 조의는 표할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지 않나 했지만 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시니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의 경비원 친구분들께는 발인까지 마치고 아버지 휴대폰 해지 전에 연락드려서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고 그동안 잘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인사드렸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들이 문득 떠오를 때면 나는 무심히 사건기록을 보다가도 마음이 아파서 흐느꼈다.

그립고 미안하고 후회되고..

평온하게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툭 쏟아졌다.     

((혹시 횡단보도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걷는 여자를 본다면 저일 수도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상해 사건이 왔다. 피고인은 20대 젊은 남자였다. 전과도 없었고 차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다.


절친했던 관계에서의 쌍방폭행 사건이었는데 나의 피고인이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상대방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은 입건이 되지 않았고, 피고인만 폭행으로 입건되었다. 이후 수사과정에서 상대방이 상해진단서를 제출하면서 피고인은 상해죄로 기소되었다.


먼저 폭행한 것도 상대방이고, 나의 피고인은 줄곧 맞다가 경찰이 온 이후에도 계속 폭행당하자 상대방을 밀쳤지만 폭행죄가 피해자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라서 상대방은 처벌받지 않게 되었다.  


나의 피고인은 법적 다툼을 하는 것에 쓸 에너지가 없어 보였고 자신의 재판에도 의욕이 없었다.  상대방의 폭행으로 상해를 입었지만 상대방에게 상해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인정하는  사건이라서 선처를 받기 위해 그의 어려운 처지를 변론요지서에 적어서 제출하는 일과 합의에도 의욕 없는 그를 대신해서 상대방과 합의를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변론요지서에 양형사유로 적을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폐섬유증과 폐렴이 악화되어 거동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상태였다. 피고인은 아픈 아버지를 간병하고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어머니가 계셨지만 작은 음식가게를 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생활이 어려웠다. 피고인은 아버지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아버지 대신 빚도 갚아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막막해했다.


피고인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나의 아버지는 폐암에 폐섬유증으로 투병하셨지만 돌아가신 직접적인 사인은 폐렴이었다. 피고인 아버지의 상황이 나의 아버지가 폐렴으로 마지막 입원했을 때와 비슷했다.

    

피고인은 나와 상담한 후 며칠 뒤 아버지가 쓴 탄원서를 들고 왔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키운 자신의 잘못이라며 불쌍한 청춘에게 부디 선처를 바란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썼다. 그런데 힘이 없었는지 탄원서는 여러 장이었는데 종이 한 장당 글자가 몇 자 들어가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서 쓴 탄원서였다.


피고인은 탄원서를 주면서 아버지가 이제 의식이 혼미해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피고인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쓴 글이 아들을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였다.     


폐섬유증에 폐렴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이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나와 동생들은 밤 11시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소를 상조회사의 도움도 없이 다음날 아침에 차렸고 3일장을 치른 뒤 발인까지 마쳤었다. 친정어머니도 몸이 아팠고 도움받을 어른도 마땅히 없었다. 나는 친정어머니 홀로 두고 서울로 오기 전, 아버지의 사망신고부터 공과금 관리비이체계좌 변경, 국민연금 유족연금신청, 아버지 휴대폰 통신사 해지를 하고 상속재산조회서비스 신청을 했었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 상주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부고문자를 보내는 것이나 조문객 맞이부터 모두 빨리 검색해서 알아보고 스스로 해야 했다.     


피고인도 곧

얼마 전의 나와 같은 처지가 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작성한 탄원서를 주고 내 방을 나가는 피고인에게 말했다.


저기.. 혹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저한테 좀 알려주실래요?    


피고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재판을 미룬다든가 변호인이 재판에 필요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고 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피고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변호사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그에게 도와줄 어른들이 있는지, 상조에는 가입이 되어 있는지 등등을 물어보았다. 그는 젊은 나이에 홀로 상주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아버지가 남긴 빚이 많았다. 다행히 아버지가 사회활동을 하시던 분이라서 조문객들은 있을 것 같았다.     


피고인에게 내가 사용했던 부고 알림 앱을 보내주었다. 피고인은 그 앱으로 나에게 부고를 보내왔다. 보니까 계좌안내가 안 되어 있었다. 민망해서 적지 않은 것이다.


“조문을 오지 못 하지만 조의를 표하고 싶은 분들도 계실 거예요. 계좌번호를 부고 알림에 남겨도 실례가 아닙니다.”


피고인이 계좌번호를 넣어서 숙제 검사받듯이 다시 나에게 부고 알림을 보내왔다.  

   

나는 피고인의 지인 자격으로 나와 남편의 이름으로 근조화환을 장례식장으로 배달시켰고 조의금을 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했던 사람이라서 조문객들이 꽤 있었고 발인하는 곳까지 따라올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발인하는 날 관을 들 성인 남자 6명이 필요해요.”

피고인은 내 말을 듣고 발인 날 새벽에 화장장으로 올 친구 여러 명을 섭외했다.


피고인이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에는 “의외로 사망진단서가 많이 필요해요. 한번 뗄 때 10통은 떼세요.”라고 일러두었다.     


장례식을 잘 마쳤다고 피고인이 연락 왔을 때 피고인에게 아버지 사망신고, 국민연금 유족연금, 상속재산조회와 통신사해지 등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필요한 서류, 양식을 보내주었다.     


피고인은 아버지가 아들 걱정을 하며 탄원서를 마지막으로 쓰고 돌아가시게 한 것을 평생 후회하고 슬퍼할 것이다.


   

같은 처지가 주는 연대감은 공감을 초월한다.       

                                      

우리 사무실에 있는 '해피트리' 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행복나무에 꽃이 핀 것을 본 여러분들께 분명 행복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부록

【장례 이후 해야 할 일 및 필요서류】
 
1. 사망신고
사망신고서, 사망진단서 1부, 사망자의 가족관계등록부의 기본증명서 1통, 신고인의 신분증명서.

  2. 공과금 자동이체 변경.
도시가스, 아파트관리비, 인터넷, 휴대폰 출금계좌 변경.

 3. 국민연금 유족연금신청 (국민연금 관리공단 홈페이지에 유족연금지급청구서 양식 있음)
유족연금지급청구서, 신분증, 사망자의 폐쇄등록부에 관한 가족관계증명서, 사망진단서, 사망 경위 신고서, 수급권자 예금계좌☞ 가야 할 곳: 국민연금 00 지사  

4. 상속재산확인(상속인 금융거래정보, 보험가입내역, 체납 내역, 연금 정보 등)
- 정부 24 > 사망자재산조회 통합처리 신청(안심상속)서 작성
- 24 정부앱(스마트폰)
-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

5. 통신사 해지
☞ 고인의 이름 옆에 ‘사망’이라는 표시가 나온 가족관계증명서, 사망진단서, 대리인이 해지할 경우 가족인 대리인 신분증.     
♣ 주의사항: 가족관계증명서는 고인의 이름 옆에 '사망'이라는 표시가 나와야 하며 이는 사망신고 후 일주일이 지난 뒤에 발급하면 됨.(사망신고 한 당일에 발급받으면 안 됨) 대리인 신분증은 가족의 것만 되고 신분증 복사본은 안되니 꼭 원본을 들고 가야 함

6. 상속재산 확인 후
가. 재산이 있으면- 세무상담
나. 채무가 많으면-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신청서 양식과 절차는 ‘대한민국 법원 전자민원센터’ 홈페이지 참조)
다. 채무가 없고 세금을 낼만큼 재산이 많지는 않지만 여러 통장에 잔액이 있는 경우- 각 금융사마다 구비서류가 비슷하지만 한 두 가지 더 추가로 요구하는 곳도 있으므로 문의하여 찾으면 됨(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상속인 신분증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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