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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Dec 29. 2023

달이 아니라 찹쌀떡입니다.

같은 사무실 변호사님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뚱돼지"라고 모욕하여 기소된 사건에서

"뚱돼지라고 한 것이 아니라 똥돼지라고 했기 때문에" 무죄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피고인이 수건으로 길을 가던 행인을 때린 폭행사건에서

"태진아의 노란 손수건을 부르며 율동했을 뿐"이라는 무죄주장을 해본 적이 있다.


법정에서 그런 주장을 할 때는

나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듯한 시선을 견뎌야 하고

때로는 자신감이 없거나 나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숨겨야 한다.


내가 그런 변론을 하면서 터득한 태도에 대한 노하우는 '진지할 수 있다면, 반은 성공'이라는 것이다.


법정에서 '사실 달은 떡으로 되어 있으며, 그날 밤하늘에 떠 있었던 것은 찹쌀떡이었다.'이런 주장을 진지하게 할 때면 나도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주장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사법연수원에서는 '형사변호실무'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그 수업에서는 '피고인이 진실에 반해서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 그 부인에도 불구하고 증거에 의하여 유죄로 판단될 가능성이 큰 경우' 변호인의 의무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쳤다.


피고인이 마음을 바꾸도록 근거를 가지고 설득해 보고, 그런 설득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결단코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변호인은 입증부족을 이유로 무죄 변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변호인은 적극적으로 허위 진술을 권고하거나 허위의 증거를 제출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변호인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 선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법연수원 '형사변호실무' 교과서]

변호인은 피고인의 의사와 다르게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내어서는 안 된다.


피고인과 뜻이 다르면 사임을 하든가 해야지, 그 피고인의 변호인으로 있으면서  피고인의 의사에 반해서 '인정'하는 취지의 변론을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변호인의 윤리이고 의무이다.


나의 경우

증거를 살펴보고' 피고인이 한 범행이 맞는 것 같은데 피고인이 부인할 경우', 설득해 보고 안되면 피고인의 뜻에 따라 무죄주장을 하되 예비적으로 선처를 받을 수 있는 양형주장도 함께 한다.


그런데, 때로는 판사 검사도 내가 피고인과 같은 주장을 하나 내용이 좀 거시기하다 싶으면 나를 쌔한 눈빛으로 쳐다보시거나 나를 향해 "이게 말이 되냐."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마치 아무리 피고인이 그런 주장을 해도 변호인까지 그래서는 되겠느냐고 질책하듯이.


이럴 때는 피고인보다 내가 더 억울하다.



그러나 외견상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주장이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주장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사건 당일 밤하늘에 떠 있었던 것이 달이면 피고인이 유죄인 사건이 있는데 피고인은 그날 밤하늘에 떠 있었던 것은 찹쌀떡이었다고 주장한다고 치자.


그러면 변호인은 증거를 살펴, 진짜 달인지 찹쌀떡인지 확인한다.

찹쌀떡이 아니라면, 그날 밤하늘에 떠 있었던 달이 실제 찹쌀떡과 유사했는지 확인한다.

그래서 피고인이 달을 찹쌀떡으로 오인한 것이라 '범의'가 없었던 것이 아닌지 살핀다.

[위는 찹쌀떡, 아래는 내가 그린 달 그림]


그리고 그날 고층에서 누군가 찹쌀떡을 던졌고 찹쌀떡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낙하하던 중

피고인이 밤하늘과 겹친 찹쌀떡을 순간 포착했던 것은 아닌지, 피고인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주장의 의미와 사건의 경위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다 살핀 결과 피고인이 진실에 반해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피고인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망상 등 심신 미약 사유가 있는지 살피고

누군가 피고인을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이나 학대를 하며 달을 찹쌀떡으로 가르친 불우한 사정이 있는지도 살핀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피해를 회복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살핀다.


이러한 면밀한 판단 끝에

법정에서 달이 아니라 찹쌀떡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지,

내가 뇌에 주름이 없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임하고 싶을 때도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장애가 있거나 빈곤한 사람도 변호하지만 다른 변호인이 기피하는 사건이나 사회적 비난을 받는 사건, 흉악범도 변론한다. 국선전담변호사가 피고인 입장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 사임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이상은 나를 위한 변론이었다.



그러나, 피고인이

'그날 밤하늘에 떠 있었던 것은 달이 아니라, 감자였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좀 달라지는데..


나는 5년간 주말농장 텃밭을 하며 감자를 심었던 적이 있다.

하지가 되면 감자를 캘 때가 된다.

감자를 심어서 키우고 예쁜 감자꽃도 보고

땅에서 금을 캐듯 감자를 캐는 일은 행복했다.


내가 뭘 해줬다고 이렇게 많은 감자가 생겼을까.

감자를 수확할 때는 호미질을 하다가 다치는 지렁이나 감자가 없도록 흙을 살살 다룬다.


해마다 감자를 수확한 이후에는 한동안 '올드보이'에서 군만두만 먹듯이 열심히 감자를 먹는다.

만약 피고인이 밤하늘에 감자가 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면.

나는 그에게 진실로 공감할 것이다.


나는 텃밭에서 감자를 캔 이후, 보름달이 감자처럼 보여서

'휘영청 감자 밝은 밤에'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린 적도 있기 때문이다.

   [몬스테라 그림, '휘영청 감자 밝은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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