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방출죄로 기소된 피고인을 국선 변호하게 되었다. 그는 뇌병변 장애가 있어 거동이 어려웠고,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혼자 사는 70대 노인이었다. 피고인의 죄명은 ‘가스방출죄’였다. 변호사 생활 십수 년 동안 그런 죄명의 사건은 처음 만났다. 사람들이 ‘용(dragon)’에 대해서 말은 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내게 그 사건은 ‘용’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가스레인지에 공급되는 가스를 마시면, 연탄가스를 마시는 것처럼 사망에 이르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사는 것을 괴롭게 여기고 있던 피고인은 집에서 가스중독으로 자살할 것을 결심하고 가스레인지의 중간 밸브를 열었다. 그리고 가스레인지 오른쪽 버너 점화 손잡이를 돌린 후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찰에 ‘죽으려고 가스를 틀어 놓았다’라고 전화했다.
이후 피고인은 가스방출죄로 기소되었다. 가스방출죄는 법정형이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로, 벌금형이 없다. 피고인이 중년부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불편한 몸이 되었는데, 이제는 자살을 하려다 구속을 걱정해야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측은했다.
나는 공소장을 유심히 보았다. 나는 이 사건 당일 가스는 새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것은 내가 변호사기 이전에 주부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확신이었다.
국이나 물을 끓일 때 국이나 물이 넘쳐흘러 가스레인지의 불이 꺼졌던 때가 떠올랐다. 그럴 때 옆 화구에 다른 음식을 하느라 가스레인지 불이 켜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한쪽 가스레인지에 국을 끓이다가 국이 넘쳐 불이 꺼질 경우에도 가스가 계속 새어 나오고 있다면, 새어 나온 가스가 옆 화구에서 타오르는 불에 점화되어 큰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런 적이 없었다.
가스레인지 버너의 점화 손잡이를 돌려놓고, 가스밸브를 틀어 놓았을 때 가스가 샌다면, 어떻게 그런 정도의 안전성을 가지고 가정용 가스레인지가 전 국민에게 보급될 수 있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의 주장대로 가스가 정말 샐까 하는 의문이 생겨 가스레인지 안전장치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알고 보니 국내 시판 가정용 가스레인지에는, ‘열전대’라는 자동소화안전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가스레인지 불꽃이 점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가스가 외부로 유출이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다.
가스레인지의 중간 밸브를 열고 버너 점화 손잡이를 돌려놓았다고 하더라도 점화가 되지 않은 상태인 이상 가스는 새지 않는다. 가스가 방출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그가 가스를 방출하려고 했다는 그 가스레인지를 직접 보고 제원을 확인하고 싶었다. 빌라와 단독주택이 이어진 비좁은 골목을 지나 그의 집에 도착했다. 독거노인인 그가 혼자 사는 집은 국가에서 보증금을 지원해 준 집이었다. 방 한 칸에 아주 좁은 싱크대 공간이 전부였다.
그에게 혹시 가스레인지를 구입했을 때 포장 상자를 아직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작은 것도 버리지 않는 습관, 가난이 준 습관 덕분에 그의 냉장고 위에 가스레인지 상자가 있었고 상자에 제품 스펙, 제원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방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그가 매일 먹는 약봉지가 가득했다.
가스레인지 상자가 올려진 하얀 냉장고에는 빽빽하게 쓴 글이 있었다. “죽고 싶다 매일매일..”로 시작하는 글은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 같기도 하고 신세 한탄이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글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방 한쪽 구석에는 전기장판 위에 이불이 있었다. 그가 매일 자는 곳이었다. 그의 방 벽은 달력 하나 없이 깔끔했는데, 유일하게 못 박아 걸어둔 것이 있었다.
그와 좀 닮은 모습의 남성 사진이었다.
“아버님이신가요?”라고 묻자 그는 자신의 영정사진이라고 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인생이라서 지금보다는 좀 젊었을 때 미리 찍어둔 것이라고.
그는 매일 자신의 영정사진 아래에서 잠들고 일어난다. 혼잣말로 시작해서 혼잣말로 끝나는 일상을 보내고, 말하고 싶어 몸서리쳐지면 냉장고든 어디든 적기 시작한다.
그가 영정사진 아래에서 잠들고, 수급비를 아껴 자신의 장례비를 모아 두었다고 해도 정작 그가 세상을 떠나면 쉽게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완전히 혼자니까. 그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자꾸 경찰에 연락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그런데 일반재판으로 재판하면 ‘가스방출죄로 처벌하려고 하는 취지가 실현될 정도로 유의미한 가스는 새지 않는다.’라는 주장과 입증의 기회가 과연 충분히 주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하자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집까지 찾아와 준 사람이기 때문이었을까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했다. 국민참여재판신청서에 이름을 적는 그의 손은 그가 가진 뇌병변 장애 때문에, 바람에 손수건이 날리듯 움직였다. 한참이나 종이를 잡고 넘실거리던 그가 겨우 이름 석 자를 적었다.
그의 집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제조한 회사와 제원을 확인한 다음 가스레인지 제조회사에, 그가 사용한 가스레인지에도 그러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23일 뒤 가스레인지 제조회사에서 보낸 사실조회회신결과가 왔다. 그의 가스레인지에도 자동소화안전장치가 장착되어 있어 점화되지 않은 상태에는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자살시도는 방법을 잘못 선택한 셈이었다.
사실조회회신결과가 온 후 검사는 가스레인지 제조회사에 피고인의 가스레인지에 자동소화안전장치가 잘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감정촉탁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그의 가스레인지를 감정하려면 그의 집에서 가스레인지를 떼내어 제조회사에 보내야 되었는데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그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고. 내가 연락해 보니 내 연락도 받지 않았다.
그가 그 사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봐 하루만 더 연락이 되지 않으면 그의 집에 가 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수원의 한 정신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사회복지사는 환자가 자신의 변호사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면서 그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고, 경찰에 의해 응급실에서 위세척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장이 보호자가 되어 입원을 동의했고, 사실상 강제입원이었다. 그는 6개월간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있는 정신병원으로 갔다. 상담할 자리가 없어서 폐쇄병동 안으로 들어갔다. 치료프로그램을 마치고 줄을 지어 이동하던 환자들이 내가 앉은자리로 와 어린아이처럼 서류를 만지기도 했다.
그의 삶에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고, 누군가는 당신을 돕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농약을 마시다니.. 힘이 조금 빠졌다.
정신병원에서는 그와 법원에 함께 있다가 선고받고 다시 입원시킬 인력이 없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 그를 출석시킬 수 없다고 했다. 법률상 피고인 없이 국민참여재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정신병원에서 그를 법원에 데려다 주기만 한다면 선고 전까지 그와 함께 있다가 직접 병원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젠 사회복지사의 역할까지 해야 되다니...
드디어 국민참여재판 당일.
가스레인지 회사에서 보낸 감정결과도 내가 생각한 대로 가정용 가스레인지는 점화가 되지 않는 이상 밸브를 열고 버너 손잡이를 돌려놓아도 가스가 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출동 당시 경찰과 소방관이 “가스 냄새를 맡았다.”라고 증언하는 점을 들어 죄가 성립된다고 공격했다.
나는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라는 글을 파워포인트로 띄웠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뜻인데,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피고인의 방에서 가스 냄새를 맡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가스가 누출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기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피고인의 최후진술까지 끝나고 배심원평결과 선고를 기다렸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선고는 변론종결 이후 몇 시간 뒤에 이루어지므로(새벽 2시에 선고가 된 적도 있었다. 자정이 넘으면 배심원들은 일당을 더 받게 된다.), 나는 보통 선고까지 법원에서 기다리지 않고 돌아간다. 피고인은 선고할 때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법원에서 대기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고 후 내가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다줘야 해서 선고 때까지 법정 복도에서 함께 있었다. 저녁이 되니 법원 복도에도 불이 꺼지고 어두웠다. 어두운 복도에서 오래 침묵을 지키기가 어색하면 서로 질문도 하고 그랬다.
“선생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
“버스 기사 할 때.. 운전할 수 있었을 때..”
뇌병변으로 잘 움직이지도 못해서 전동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운전기사를 하며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니 경위가 이제 선고한다고 그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그에게 유죄가 선고되고 구속되면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할 텐데.. 어쩌지 하면서 기다리다 보니 그가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무릎이 바닥에 닿을 듯이 심하게 비틀거리면서 법정을 걸어 나왔다.
그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형사보상청구’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때 울컥해서 그를 안아 주고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밖에는 비가 오고, 나는 차가 없고.. 장애가 있는 노인을 데리고 어두컴컴한 밤에 먼 곳까지 가려니 막막했다.
택시를 부르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비가 오는 날에 차가 없는 내가 피고인을 정신병원에 데려다주어야 하는 사정을 알고 있었던 동료 국선전담 변호사 두 명이 법원 앞에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그날 다른 변호사님들 덕분에 그를 태워서 무사히 정신병원에 다시 데려다주었다.
정신병원 앞에서 몸을 뒤틀면서 손을 흔들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날이 법원에 대한 그의 마지막 기억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자꾸만 삶을 끝내려고 시도하는 그가 조금 더 힘을 내어 살아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