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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일스팟 May 29. 2024

도파민 중독자의 글쓰기

글 쓰는 재미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최근 점점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오랜만에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럴 때가 있잖아요. 불현듯 '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하고 정신이 번쩍 들 때. 물론 이런 다짐을 하고 나서도 실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한참 뒤의 일입니다. 집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는 오늘이야말로 알찬 저녁을 보내야겠다고 다짐을 하다가도 집 문만 열면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귀찮아져 또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괜스레 몰려오는 자괴감을 느낀 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난 지금, 이제서야 마침내 책상에 앉아 글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다시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항상 첫 문장부터 애를 먹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도 문제지만,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의 덩어리를 어떻게 언어의 형태로 끄집어낼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으로 글감을 떠올릴 때는 마치 금방이라도 글 한 편이 뚝딱 나올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자리에 앉아 문장으로 그것을 표현하려고 하면 거짓말처럼 머리가 새하얘지곤 합니다. 마치 어느 한 분야의 장인들을 보면서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다가도 실제로 해 보려고 하면 몸이 전혀 따라주지 않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비선형적인 여러 개의 생각 조각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조합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일이기에, 도파민에만 빠져 살던 저에게는 더이상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나의 어휘 창고가 어느새 비어 버렸음을 받아들인 뒤 가벼워진 엉덩이를 달래며 의자에 앉아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가는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뿐입니다.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해서, 보통 우리가 문체라고도 부르는 그것에는 마치 지문과도 같이 한 사람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예쁘게 포장하려고 해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은 그것을 쓰던 당시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까지 대번에 느낍니다. 아, 이 사람은 이 때 컨디션이 별로였구나, 이 사람은 글자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썼구나, 이 사람은 지금 사랑에 빠졌구나,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에는 괜히 심술이 나곤 합니다. 머릿속 한켠에서 도파민을 외치는 스스로를 누르며 꾸역꾸역 글자 덩어리를 뱉어내긴 하지만 막상 내가 쓴 글을 읽어 보면 아무런 내용 없이 현학적인 단어들만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무언가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의 괴로움이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나의 글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 글 속에 투영되어 있는 벌거벗은 나를 평가하는 것만 같기도 합니다. 

글에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참 좋아합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문득 도파민에 빠셔 살던 어제까지의 나를 반성해 봅니다. 내가 한 때 좋아했던 작가들의 책들은 책장 속에서 뽑히지 못한 채 멈춘지 오래고, 밤마다 생각의 끝말잇기를 하던 머릿속은 어느새 공허해져 있습니다. 또다시 책상에 앉아 있는것만으로도 몸이 근질거려 괜히 휴대폰만 껐다 켰다를 반복합니다. 첫 문장을 쓰기도 전에 내 글을 읽을 상상의 독자를 먼저 생각하며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글이라는 것은 머리보다 손이 부지런해야 비로소 쓰여지기 시작하지만, 이미 자극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익숙해져 버린 나의 몸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모니터만 째려보다가 일단 머릿속에 떠다니는 그 덩어리들을 와르르 적어내 봅니다. 나의 경험과 감정을 일단 전부 풀어 놓습니다. 덜어내기 아깝지만 덜어내야 하는 문장들을 지웁니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또다시 새로운 생각들이 채워집니다. 가장 정확하게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 하나를 위해 수십 번의 퇴고를 거치고, 마침내 하나의 글이 깎여 나오면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아, 내가 찾던 문장이 이것이었을까. 아무래도 글 쓰는 즐거움의 본질은, 내 글을 읽는 독자에게서보다도 내 감정의 색깔과 문장의 모양을 나 스스로가 발견하는 데에서 먼저 비롯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왠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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