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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도연 Jul 12. 2024

뒤러의 여행

그림인문학 미술관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이어령


새로움, 변화, 도전, 배움

좋은 건 알겠는데, 일상의 삶에 치이다 보면 변화를 준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요. 일상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나는 어떤 것을 배우고, 시도해보고 있나요? 오늘의 나는 어제와 어떻게 다르고 변화되었나요? 설령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들이 부질없이 느껴지거나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우리는 그 경험을 쓸모없다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변화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차라리 실패한 이야기들이 저의 삶을 더 부유한 삶으로 만들어 주니까요.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최초 다국적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뒤러는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화가예요. 우리에겐 <28세의 자화상, 1500>으로 유명한 화가예요.

Self-Portrait, Albrecht Dürer, 1500

작품에서 그는 예수님과 같은 정면의 자세로 우리를 응시하며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어요. 그가 지닌 자부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독일미술의 아버지,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탈리아 미술을 최초로 북유럽에 전파한 화가, 유럽 전역에서 인정받은 다국적 화가 등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다양해요. 그의 명성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그건 바로 뒤러의 호기심이에요. 호기심으로 인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고 여행에서 접하는 새로운 것을 관찰하고 기록했기 때문이에요. 스무 살 무렵은 1492년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하며 지리상의 발견이 이뤄지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뒤러는 그때부터 짧으면 1년, 길면 4년에 걸쳐 유럽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하고, 최초로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르기도 해요. 후에 고향마을로 돌아와서 여행에서 기록한 것들을 모아서 글을 쓰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기도 합니다. 


그 시도 중에 시대적 흐름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 판화였어요. 당시 종이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하였고 책에 들어가는 삽화를 판화로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선으로 입체감과 공간감, 그리고 명암까지 나타냄으로써 판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1500년을 작은 천년이라 생각해서 종말론이 유행이었는데 그는 대중의 관심사를 고려해서 <묵시록의 네 기사, 1948> 판화로 그려 책으로 제작하게 돼요. 대량생산이 가능한 판화는 유화보다도 10배 이상 가격이 저렴했던 장점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를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어요.

The Four Horsemen, from "The Apocalypse" (묵시록의 네 기사, 1498)



뒤러의 배움에 있어서 첫 번 째 단계는 '떠남'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짧든 길든 새로운 곳을 향해 바쁘게 몸을 움직였어요. 라인강 상류지역(20세), 이탈리아(23세, 34세), 네덜란드(50세) 등 유럽 남부에서 북부까지 몇 년에 걸쳐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맺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됩니다. 방랑벽이 있다 할 정도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행을 멈추지 않았어요. 

View of the Arco Valley in Tyro, 1495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여행 중에 본 것을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방문하는 도시를 기록하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유화대신 수채화로 풍경을 담아내기도 했고, 그곳에서 만난 동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합니다. 후에 그의 그림은 동식물도감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교하고 완벽하다고 전해져요. 


Young Hare, 1502 / Great Piece of Turf, 1503

한 번은 이런 사건도 있었어요. 당시 유럽에 코뿔소가 처음 등장한 해는 1515년 리스본이에요. 코뿔소는 원래 인도나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이라 유럽인들은 실제로 본 적이 없었죠. 코뿔소는 리스본에서 교황의 선물로 이송되던 중 배가 난파되는 사고를 겪어 진귀한 코뿔소가 죽게 된 사연이 있었어요. 코뿔소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친구가 보낸 편지 삽화와 직접 코뿔소를 본 증언을 종합해 뒤러는 코뿔소를 판화로 제작해요. 뒤러의 코뿔소 판화가 불티나듯 전 유럽인들에게 퍼지면서 유럽인들에게 코뿔소의 이미지는 뒤러의 그림으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을 정도였어요. 코뿔소의 울툴불퉁한 피부는 뒤러의 상상력으로 갑옷이 되어 있네요^^ 

Dürer's Rhinoceros, 1515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책의 제목이 있어요. 어제와 오늘이 특별히 다를 것 없이 반복되고 건조하게 느껴질지라도 나를 위한 작은 호기심을 채워줄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뒤러처럼 거창하게 여행을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변화를 꿈꾸는 것이죠. 평소 입지 않던 칼라의 옷을 과감하게 입어 보는 것, 고등학교 이후 펴본 적도 없는 과학공부이지만 물리학자 김상욱 님의 책을 펴보는 것, 숨이 헐떡이고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뛰어보는 것, 이국적이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 등 관심만 있다면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해요. 다만 시도해 보고 아주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면 좋겠죠? 그 기록들이 쌓이면 이야기가 되고 그건 곧 나의 삶이 되니까요. 뒤러가 글과 그림으로 그의 행적을 남긴 것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SNS, 일기든 그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를 기록해 보세요. 일상을 세심하고 호기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법 같은 눈을 갖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코뿔소를 상상하며 집중했던 뒤러의 모습을 생각하며, 경험부자인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나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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