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뮤지엄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참지 못하고 신나게 먹으면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고 외칩니다. 배불리 먹는 건 오늘까지 만이라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매일 반복되고 있죠! 단식하며 절제하기 전 날 맘껏 먹는 이런 행위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에도 있어요. 예수님께서 부활하기 전 40일간의 기간을 사순시기라고 하는데, 사순 시기 동안은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하는 마음으로 금식을 하고 참회하며 경건하게 지내게 됩니다.
그 사순의 시작을 알리는 날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전날인 화요일에 마음껏 먹고 즐기는 축제를 즐기곤 했어요. 사순 시작하기 전에 고백성사를 보며 참회한다 하여 참회의 화요일 Shrove Tuesday이라고도 하고, 기름진 음식을 맘껏 먹는다 하여 마디 그라 Mardi Gras(Fat Tuesday)라고도 해요. 영국에서는 팬케이크를 먹는 날 Pancake Tuesday라고도 하고요. 런던에서 살 때 사순시기(Lent)가 시작할 때쯤이면 온 슈퍼마켓에 팬케익 가루를 맨 앞에 진열했던 기억이 나요.
맘껏 놀고, 먹도록 허락된 날. 바로 그날을 그림으로 기록한 화가가 있어요.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0~1666)입니다. 그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와 함께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3대 화가 중 한 명이예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살았던 하를럼(Harrlem)은 미술 문화를 이끌어가는 곳이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명성이 자자한 초상화가였어요. 그의 초상화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는 다르게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이 아닌, 기분 좋은 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려 넣어 생동감 있게 연출된 초상화가 많아요.
이 그림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그림으로 "슈로브타이드 축제에서 떠들썩한 사람들"(Merrymakers at Shrovetid)이 제목입니다. 배경이 되는 날은, 마디그라의 날로, 사순 전날 화요일에 17세기 네덜란드 화가길드가 연극공연을 하며 즐기고 있는 한 장면을 나타낸 거예요. 여기서 할스는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인 Hans Worst는 모자에 소시지를 매달아 쓰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Pekelharing은 소금에 절인 생선과 달걀로 만든 목걸이를 자랑하듯 목에 걸치고 있어요.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은 그림 한가운데의 여성에게 추근거리고 있네요. 하지만 당시 연극 공연에 여성은 허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장을 한 소년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풍요로운 축제에 빠지지 않는 것은 음식이에요. 소시지와 달걀, 조개 등이 푸짐하게 그림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하기도 하여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장 개성 있는 벽장식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곳에서 만나는 할스의 그림들은 역시나 유쾌, 명랑합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고상하게 억누르지 않고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된 그림들을 보면서 화가의 성격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빠른 붓터치로 인물들의 분위기와 특징을 사실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낸 실력 있는 화가. 그림에서 보이는 유쾌함을 붓터치로도 느낄 수가 있어요. 여성복장을 한 소년의 드레스에서도 빛나는 광택표현에서 보이는 그의 붓터치가 예사롭지 않더라고요. 실력 있는 화가로서 인정받기도 했지만 안타깝게 경제적으로는 늘 궁핍했다 전해져요. 심지어 그녀의 딸은 가난에 시달려 매춘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까요. 노후에는 건강문제로 요양원에서 지내다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남긴 웃는 초상화들의 모습처럼 웃으면서 삶을 마감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네요. 그림 맨 앞 중앙에 놓여있는 병에 그의 이름 이니셜(fh)을 새겨 놓았네요. 찾으셨나요?
서유럽 기독교 문화에서 사순시기가 시작되기 전날 화요일.
기름진 음식을 먹고 축제를 지냈던 그들의 문화를 할스의 그림으로 보았어요. 앞으로 40일 동안 금식하며 절제하는 생활에 돌입하기 전에 맛보는 마지막 일탈과도 같은 의식이죠.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나름의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나 스스로 결심한 것을 잘 지키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있어요. 내일은 하지 못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이 순간이 얼마나 짜릿하고 좋았을지 그림을 보면서 상상해 봅니다. 왁자지껄 음성지원까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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