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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도연 Sep 22. 2024

작가 이불의 작품, 뉴욕 한 복판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건물 전면부에 이불 작가님의 작품 4점(Long Tail Halo)이 전시되고 있어요. 메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의뢰받은 이 작품은 2025년 5월까지 8개월간 전시될 예정입니다.



메트로폴리탄의 '파사드' 이야기

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

파사드(프랑스어Façade)는 건물의 정면 외벽 부분을 말해요. 지금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1902년 유명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가 만든 것인데, 거대한 그리스식 기둥 사이에 오목하게 들어간 네 개의 공간(arched niches)을 만들고, 각각 그리스, 이집트, 르네상스, 근대를 대표하는 조각을 넣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완성하지 못하고 100년 넘게 빈 공간으로 남겨졌었는데, 2019년부터 현대미술조각들을 설치하기 시작했어요. 이를 '파사드 커미션 프로젝트'라고 부르고, 메트로폴리탄의 현대미술 전시 시리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어요. 이번 해부터는 제네시스와 메트로폴리탄의 파트너십으로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된 작가가 바로 한국 설치미술 작가 이불(LEE BUL, 60)이고요.



쌍을 이루는 네 점의 조각


작품 제목은 '롱 테일 헤일로(Long Tail Halo)'. 메트로폴리탄의 파사드의 움푹 파인 니쉬 공간은 그녀의 거대한 조각작품 4점으로 새롭게 변모되었어요. 작품에 대해 작가는 "수많은 대중에게 공개되는 공공미술인 점을 고려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 다양한 변주를 주려 했다."라고 했습니다. 건축물과 조각작품,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관람객이 '시간'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꽃 피우기를 바랐던 것이죠. 자신의 조각 작품이 특별한 이 공간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만들고자 메트 뮤지엄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둥 사이의 네 개의 작품, 찾으셨나요?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보이시나요?

사진 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


매우 현대적인 조각이지만 고전적인 건물 외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네 점의 조각은 쌍을 이루고 있어요. 중앙에 배치된 두 점은 인간의 형상을, 양쪽 가장자리 두 점은 동물의 형상을 연상시킵니다. 인간의 형상은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동물의 형상은 반려견 진돗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건물을 지켜주는 가디언의 역할로 작가는 이를 "수문장 내지는 수호자를 연상시키는 조각"이라 했어요.


메트 뮤지엄 측에 따르면 이불 작가는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파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작품과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품 등을 참고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갖춘듯한 인간의 형상. 니케 여신상의 우아함과 보치오니의 속도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두 점의 작품은 메트뮤지엄 중앙 정문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어요. 

Long Tail Halo: CTCS #1. 2024

Long Tail Halo: CTCS #2. 2024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정문
정문 양 옆에 설치된 '인간형상'의 조각


양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두 조각은 깨어진 프리즘 조각같은 표면으로 폭포 위에 구부리고 있는듯한 동물을 형상화했어요. 진돗개가 웅크리고 있다가 다가가면 꼬리를 흔들면서 일어날 것만 같나요? 조각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4개의 니쉬 안에서 쌍을 이루고 있어요.

Long Tail Halo: The Secret Sharer2, 2024

Long Tail Halo: The Secret Sharer3, 2024

가장 자리에 설치된 '동물형상'의 조각
폴리카보네이트 등의 소재를 사용한 고도의 수작업, 노동집약적인 방식 활용



완벽성을 추구해 왔던 인간의 오랜 역사


맥스 홀라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불의 작품은 과거로부터 온 강렬하고 혼합적인 형태를 기반으로 인간의 복잡성을 탐구하고, 현재에 대한 기대감과 미래를 향한 두려움을 주제로 이야기한다”라고 전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원시시대의 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전 시대를 아우르고 있어요. 눈으로 시각화된 그 작품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요. 시대상의 반영된 작품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 본 적 있으시죠? 그 옛날 이집트 석상을 보면서 대체 얼마나 간절했길래 이렇게 공을 들였을까 하면서요. 


모든 작품은 그 시대 인간이 탐구했던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을 남기며 그들이 공통적으로 욕망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불 작가님의 인터뷰에서 힌트를 얻어 보면, 아마 진보 또는 완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진보를 통해 완전해지고자 하는 갈망. 이 작품의 제목이 롱 테일 헤일로(Long Tail Halo)인데요, 헤일로는 종교화를 감상할 때 성스러운 사람 머리에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표현된 그것이에요. 완전함을 의미하는 헤일로. 그것은 어쩌면 아주 먼 과거부터 지금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까지 이어져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욕망이지 않을까요?  


인간과 기계를 조합한 사이보그 형태의 미래 인간은 고대 그리스 승리의 여신 포즈를 하고 있어요. 이는 인간과 기계, 전통과 현대, 오래된 기술과 미래의 기술, 아름다움과 공포 등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 마찬가지로 사이보그 인간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좀 더 진보하고 있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그로 인한 불안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요.


완벽성을 추구해 왔던 인간의 오랜 역사.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데 끊임없이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어리석다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실패를 알면서도 틀리면 고치고, 또 고치며 수정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인간의 수고가 느껴지시나요?


앞으로도 우리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좌절과 불평등의 역사를 살아나갈 거예요. 실패를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유한한 인간으로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 과거 우리 선조들이 가마 앞에서 인간미 없게 너무 완벽한 도자기에 일부러 손자국을 내어 찌그러트렸던 그 마음은 어쩌면 완전해질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앞에서 갖추어야 할 우리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완전성에 대한 어리석은 욕망을 내려놓고 이치에 맞게 순리대로,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삶이 물론 쉽지만은 않겠지요. 작품 속에서 작가는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고자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애쓰며 조화로운 '승리'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헤아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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