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도연 Nov 15. 2023

프리다 언니의 유언

프리다 칼로, 인생이여 만세


멕시코 500페소의 앞, 뒷면에 애증의 부부관계이자 멕시코를 대표하는 국민화가 2명이 그려져 있어요. 

그들의 이름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의 인생을 드라마로 엮는다면(실제 영화로도 제작되었어요. 영화 <프리다, 2002>)이보다 더한 파란만장한 막장 드라마이야기가 어디있을까 싶어요. 우리가 그녀의 개인사를 이토록 잘 알 수 있는 이유는 프리다는 자신의 경험을 그림에 일기를 쓰듯 토해내며 표현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6세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사건, 16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친 후 32번의 수술을 해야 했던 경험, 국민화가 디에고와의 결혼 이후 두 번의 유산의 고통, 남편의 그늘에서 화가로서 지키지 못했던 무너진 자존감, 유산 후 고통 중에 신음하던 그녀를 옆에 두고 디에고와 자신의 친동생의 외도행각까지. 몸도 마음도 피투성이였던 그녀.


단지 몇 번 찔렸을 뿐, 프리다 칼로, 1935


한 가지도 감당하기 어마어마한 고통인데 이 모든 것을 그녀는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고 다시 앞으로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그림’이었어요.


병세가 심해져 기구로 몸을 고정시키면서도 손에서는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어요. 누군가에게 팔리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다잡기 위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림을 그렸던 거예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정체성 또한 끊임없이 확인했어요. 


그녀의 수많은 자화상들은 어쩌면 '나의 존재’에 대한 치열한 질문에 그림으로 답을 했던 것이에요. 나, 나의 생명을 있게 한 가족과 조국, 생명을 이어나가게 해 준 위대한 자연 속에서, 자신이 현재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꼈을지도 몰라요. 처참한 고통의 상황에서 오히려 그녀는 그 어떤 건강한 사람보다도 더 강렬하게 자신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꼈을테니까요.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고달픈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녀가 죽기 며칠 전 완성한 그녀의 유작은 어떤 그림일까요?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그림을 그렸을까요?


평생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몸뚱이를 원망했을까요?

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던 남편을 증오하고 미워했을까요?


그녀의 마지막 유언 같은 그림의 제목은

“인생이여 만세”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VIva la Vida), 프리다 칼로, 1954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만세라니.

단단한 수박껍질처럼 자신을 지켰던 그녀가

험난한 인생이었을지라도,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것이었노라 외치고 있어요. 


상처가 딱딱해져 수박껍질처럼 아물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 열매가 

더 맛있을 거라고, 그렇게 만세를 외치며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제 2023년 달력이 두 장밖에 남지 않았어요. 

벌써 내년도 트렌드 전망은 어떨지를 이야기하며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신 분들도 많으세요. 또 어떻게 한 해를 보냈는지 회고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요. 회고만 하려고 하면 올 한 해가 무척이나 힘들었던 한 해였고, 엉망진창 이불킥 사건들도 많았고, 계획만큼 성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저뿐만이 아니죠?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 지면서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어요. 


프리다칼로의 수박그림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과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지만, 계절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저에게 힘을 줍니다. 가운데 수박에 그녀가 깊게 새겨 놓은 "비바 라 비다 VIVA LA VIDA". 그녀의 유언이 육성으로 음성지원되며 들여다볼 때마다 저에게 에너지를 주거든요.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숨 쉬며, 한 해를 회고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축복인가. 

삶의 축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라는 '고통의 여왕'이셨던 프리다 언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싶어요.  나에게 올해 사느라 수고했다고 '2023년 만세!'라고 외쳐주세요. 기특한 나를 응원하면서요!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