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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도연 Feb 02. 2024

마리 조세핀 샤를로트 뒤발 도뉴스의 초상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이 초상화는 위대한 남성 미술가의 작품으로 오인됨으로써 여성 미술가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앤 히고넷



195년 만에 되찾은 이름

Marie Joséphine Charlotte du Val d'Ognes , Marie Denise Villers, 1801, Metropolitan Museum

루브르 박물관의 한 갤러리 안에서 흰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한 손으로는 검은 화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붓을 들고 있어요. 머리를 틀어 올리고 소박한 흰색 드레스를 입은 이 여인의 직업은 화가. 마치 관람객의 얼굴을 초상화로 그릴 것처럼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어요. 


이 작품은 1801년 자신의 이름으로 파리 살롱전에 출품되었는데 당시 신고전주의의 거장이자 국민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그림으로 잘못 기록되었어요. 1917년 다비드의 작품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구입하자,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줄을 섰다고 해요. 대중들의 인기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극찬도 대단했어요.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는 "빛을 등지고 앉아 그림자와 신비에 젖은, 지적이고 수수한 여인의 초상화로 색채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처럼 미묘하고 신비롭다. 완벽한 그림이다."라고 격찬했어요.


그런데, 프랑스 미술사가에 의해 이 그림은 다비드의 그림이 아니라 ‘콩스탕스 마리 샤르팡티에’ 이름의 여성이라는 것을 밝혀 냈어요. 다비드의 그림에서 이름도 생소한 여성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러자 세상은 그림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걸작이라고 찬사를 보낸 비평가들 뿐 아니라 대중들까지도요. 여성적인 기운이 드러난다, 비율이 맞지 않는다, 손은 그리기 어려워서 뒤로 감춘 것이다 등등.


1996년에야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본명은 마리 드니즈 빌레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돼요. 그녀가 27살에 그린 자화상이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롱전에 제출했던 것이었죠. 살롱전에서조차 자신의 이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이름이 잘못기재되었던 사건들로 미루어 보아, 그녀가 화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것이 당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으로 여겨져요. 



화가로소이다!


그림 속 창문이 깨져있는데, 그 틈으로 남녀가 연애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어요.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들을 지키고 살 수도 있지만, 깨진 창문은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나에게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여기 있다고 말이에요. 

화판을 자신의 몸에다 올려놓고 붓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다짐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은 이런 이유인가 봅니다. 그녀의 눈빛은 '화가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자기 선언을 품고 있어요.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의지가 느껴지죠. 여성화가가 대우받지 못했던 현실이었지만 빌레르는 결혼한 이후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와 엄마로서 가사 육아까지, 이 모든 것을 병행하며 그림을 그렸던 그녀. 안타까운 점은 그녀는 평생 그림을 그렸지만 남아있는 그림은 극속수라고 해요. 어쩌면 여성의 이름을 내건 그림이 팔리지 않는 이유로 미술관 어딘가에 다른 작가의 이름으로, 혹은 작자미상으로 걸려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비드와 같은 방에 전시되다


마리 드니즈 빌레르(Marie Denise Villers), 그녀의 이름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어요. 195년이나 걸렸지만 결국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어요! 처음 다비드의 그림으로 오해받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다비드의 그림과 같은 방에서 당당하게 전시되고 있어요. 그림 속 그녀의 눈에서 어떤 것이 느껴지시나요? 화가로서의 삶을 살겠다며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화판.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지금 나의 무릎 위에는 무엇이 올려져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게 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Gallery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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