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기대를 피하려 먼저 비웃는 인간
호모 시니칸스는 cynic (냉소주의자)에서 따온 말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를 만들지 않고, 기대가 생길 것 같으면 먼저 비웃음으로 선을 긋는 인간을 뜻한다.
Homo cynicans /ˈhoʊmoʊ ˈsɪnɪkænz/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냉소는 똑똑해 보인다. “세상은 원래 그래”라는 말은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냉소는 종종 현실의 일부를 맞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냉소가 통찰이 아니라 보험이 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부터 냉소는 세계를 읽는 방식이 아니라 상처를 피하는 방식이 된다.
호모 시니칸스는 기대를 두려워한다. 기대는 즐겁지만 위험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대가 생기는 순간, 그걸 꺼버린다. 그가 꺼버리는 방식은 대체로 같은 모양이다.
먼저 웃는다.
먼저 비튼다.
먼저 ‘현실’을 들이민다.
이 인간형이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이런 것이다.
“다 쇼야.”
“그거 해봤자 달라질 거 없어.”
“사람이 다 그렇지 뭐.”
“결국 돈이지.”
이 말들은 냉정한 분석처럼 들리지만, 효과는 늘 같다. 공기가 식는다. 따뜻해지려던 마음이 다시 주머니로 들어간다. 요즘은 냉소를 성격으로 포장하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말이 차갑게 느껴질 때, 사람들은 묻는다.
“너 T야?”
그 질문은 분석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판정에 가깝다. ‘너는 원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구나’라는 라벨.
하지만 호모 시니칸스의 문제는 유형이 아니라 습관이다. 그는 논리로 말하는 게 아니라, 기대가 생기기 전에 공기를 먼저 식힌다. T냐 F냐가 아니라, 상처를 피하려 먼저 비웃는 방식이 문제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누군가가 진심을 말한다. 새로운 계획, 작은 꿈, 무언가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 그 순간 분위기는 잠깐 뜨거워진다. 호모 시니칸스는 그 뜨거움이 불편하다. 뜨거움은 기대를 만든다. 기대는 나중에 실망을 부른다.
그래서 그는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좋다. 근데 현실은 알지?”
“그거 오래 못 가.”
“그런 말은 누구나 해.”
여기서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다. 그가 겨냥하는 건 결론이 아니라 온도다. 대화를 반박하는 게 아니라, 대화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온도가 낮아지면, 기대도 낮아지고, 실망도 낮아진다. 그는 그걸 안전이라고 부른다. 호모 시니칸스의 냉소는 ‘상대’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먼저 향한다. 무언가 시작하려 하면,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해봤자 똑같아.”
“괜히 설레지 마.”
“기대하면 손해야.”
이 말들은 ‘현실 감각’이 아니라 마음의 브레이크다. 브레이크를 오래 밟으면 차는 멈추지만, 멈춘 걸 안전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안전해진다. 안전해진 대신, 어떤 능력을 잃는다. 기다리는 능력, 믿는 능력, 시작하는 능력.
냉소는 관계에서도 편리하다.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상대를 단순하게 만들수록, 상처받을 일도 줄어든다. 하지만 단순해진 관계는 깊어질 기회도 함께 잃는다. 호모 시니칸스가 외로운 이유는 사람이 떠나서가 아니라,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어서다.
호모 시니칸스의 냉소가 특히 강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가 ‘진심’을 요구할 때다. 진심은 책임을 부르니까. 그래서 그는 농담으로 회피한다. 날카로운 농담은 아주 편리하다. 상대가 상처받으면 “농담인데 왜 그래?”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담은 칼이고, 동시에 면책이다.
나는 이 인간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냉소는 현실을 보는 눈일 수 있다. 하지만 냉소가 삶의 기본값이 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보는 게 아니라
현실을 살지 못하게 된다.
당신이 오늘 비웃은 것은 무엇인가. 그 비웃음은 정말 통찰이었나. 아니면 기대를 피하기 위한 보험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