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 인생 Nov 15. 2023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백내장 수술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왼쪽눈이 흐릿해 안과를 찾았더니 백내장이 왔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노화와 함께 따라오는 수정체의 기능 쇠퇴로 시력이 저하되는 현상이다.

시력을 찾기 위해서는 낡은 자연산 수정체를 새 인공 수정체로 갈아 끼워야 한다.


수술은 복잡하지 않았다.

수술 전에 전반적인 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눈검사를 했다.

건강검진 때 시력과 안압 등 두어 가지 검사만 경험했었는데, 이번에 눈 검사도 이렇게 종류가 많은 줄 알게 되었다.

수술은 마취액을 눈에 넣고 시행하는데 통증은 없었다.

나는 긴장을 한 탓에 눈에 힘을 너무 주는 바람에 의사 선생님이 힘들어하셨다.

보통 30분이면 끝나는데 나는 1시간이나 걸렸다.




수술 자체보다 수술 후가 더 힘들었다.

삼사 일간은 수술부위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특별히 조심하라 몇 번이나 주의사항을 알려 주었다.

일주일 정도는 세수는 하지 말라고 했다.

머리도 가급적 감지 말라고 했는데 불가피할 경우엔 머리를 뒤로 젖혀 감으라고 했다.

무거운 물건도 들지 말고 운동도 당분간 삼가라 일러주었다.

잘 때도 엎드리지 말고 자다가 무의식적으로 눈을 비빌 수도 있으니 플라스틱 안대를 착용하라고 했다.

수술한 눈에 물이 들어가거나 안압이 높아지면 봉합부위가 터지거나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소독용 안약 두 종류와 증방지 내복약도 처방해 주었다.




수술 후 이삼일동안은 혹시 모를 부작용이 발생할까 걱정이 컸던 탓에 불편한 줄 모르고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눈보다 생활의 불편함과 일상의 지루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얼굴에 기름기가 끼어 끈적거림으로 불편했다.

머리카락도 여기저기 떡이 지고 두피 이곳저곳이 가려웠다.

그나마 얼굴은 물휴지로 대충 닦으니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머리를 어떻게 감을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헤어숍의 의자처럼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일주일 후 수술 후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 안과를 다시 찾았다.

양쪽눈의 시력차가 커서 당장 안경을 처방해 주지 않았다.

수술한 눈의 시력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리니 그때 조치한다고 했다.

당분간 안경 없이 생활할 수밖에 없다.


원래 고도근시에다 난시와 노안이 겹친 최악의 눈이었다.

아침에 눈을 수술눈이 시렸다.

한쪽눈은 그대로인데 수술한 눈은 근시 시력이 많이 교정되어 두 눈의 시력차가 많이 났다.

멀리 볼 땐 시력차를 거의 느끼지 않았다.

다만 책을 읽거나 컴퓨터 화면을 볼 때처럼 가까운 물체를 볼 땐 각각의 눈이 따로 노는 듯 어질어질했다.


수술한 눈은 비교적 먼 곳은 잘 보이는 대신 가까운 곳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눈은 그 반대였다.

각 눈빛을 받아들여 뇌로 전달하는 과정이 서로 달라 혼선이 오는 듯했다.




길을 걸을 땐 별생각 없이 다니니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매일 다니는 출퇴근 길은 뻔한 코스라 안내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실이나 집에서 하루종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일상적인 일 처리를 하려면 컴퓨터 화면을 봐야 하고 서류도 보아다.

도 읽어야 다.


안경 없이 화면을 보고 책을 읽을 땐 수술하지 않은 눈이 더 잘 보다.

하지만 수술한 눈이 덩달아 초점을 맞추려 애쓰는지 점점 시렸다.

수술한 눈을 안대로 아예 가렸더니 좀 나았다.

그랬더니 두 눈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니 힘들었는지 수술하지 않은 눈이 금방 피곤해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하던 짓을 그만두길 거듭했다.


TV라도 보고 싶은데 그마저 힘들다.

퓨터나 과 달리 TV거리가 있는 곳이라 원래 끼던 안경을 착용해 보았다.

수술한 렌즈 도수를 없앴는데 현격한 렌즈도수 차이로  시야가  번쩍이고 어지러웠다.


궁여지책으로 그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안경을 그 위에 썼다.

그럼에도 한쪽 눈만으로 상이 제대로 맺히지 않는지 가물가물해다.




눈이 이 지경이니 당분간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었다.


그나마 현업에서 물러난 상태니 다행이다.

매일 서류와 PC를 심각하게 보며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감당이 안될 터다.

시각능력에 문제가 생겼으니 눈 자체에 많은 에너지가 쏠려 다른 기능은 소홀해질게 뻔하다.

창의적인 두뇌활동은 고사하고 읽고 쓰기도 벅차다.


일주일에 서너 번 하던 운동도 할 수 없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무리한 신체활동으로 안압이 상승할 수 있고 수술부위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소파에 기대어 있거나 침대에 누웠다가 잠들기 일쑤다.

신체활동이 뜸해지니 온몸이 뻣뻣해진다.

체중이 조금씩 늘어나고 근육에 힘이 없어지는 듯하다.

무엇보다 점점 운동 자체가 귀찮아지고 있다.


유일한 취미인 대금도 불 수 없다.

눈이 이 지경이니 악보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음을 낼 부분에 힘을 줄 수 없으니 음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하루라도 연습을 거르면 소리가 엉망인데  주가 넘도록 대금을 한 번도 잡지 못했다.

연습을 제대로 못하니 매주 가던 문화센터 강습도 가기 민망하다.

간다 하더라도 악보 보기 힘들니 지도받기도 곤란하다.




한쪽 눈 때문에 내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먹고 자고 걷는 일 외에는 아무 짓도 할 수 없다.

신체적인 불편함보다 일상의 지루함이 더 큰 고통이다.

애꾸눈 잭이나 궁 같은 사람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을상상해 본다.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보통의 나날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 내 소중한 일상이여.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