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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무와 삶

나무도 서로 소통한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를 읽고

by B급 인생

숲에서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경쟁을 한다고 배웠다.


한 줄기의 햇빛을 더 받기 위해, 한 모금의 물을 더 빨아들이기 위해, 한 톨의 영양분을 더 얻기 위해 주변의 다나무들과 치열하게 싸운다고 했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하고자 자신을 변형시켜 맞추어 나간다고 들었다.

환경에 더 적합한 변이를 가진 개체가 생존에 더 유리하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윈은 이런 과정을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현대의 농업과 임업 분야에서는 다윈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녹색혁명을 이루어 냈다.

더 많은 수확을 위해 단일 종의 식물을 한 장소에 재배하고 다른 종은 배제했다.

전쟁이나 재해로 헐벗은 산을 단기간 내 복구하려는 욕심에 단일 수종의 나무를 대량 식재하는 육림정책을 펴기도 했다.

단기간에 인간의 욕구대로 생산량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런 효율성 중심의 농림업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한다.


농지 확대와 산림의 남벌, 단일 수종의 플랜트식 육림방식은 생태계 파괴를 야기하고 기후변화의 위기에 일조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한 인류문명의 진화가 오히려 농업 생산성도 줄어들고, 산림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생태계 다양성의 부족이 문제였다.

예기치 못한 환경에 처해지면 다양한 성질의 생명체가 서로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어야 그중 어느 적합한 종이 살아남게 되고 그 종을 토대로 다시 생태계가 되살아난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의 농업과 임업은 단기간에 단일 종의 작물과 수종을 중심으로 경제적 효율성만 강조해 왔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치니 단일 종으로서는 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대응력이 없어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숲 생태계가 "all or nothing"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수잔 시머드라는, 평생 나무만 연구한 학자가 다.

특히 나무들 간의 관계에 대해 천착했다.

평생의 연구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무들도 서로 도우며 산다는 것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한평생 한 자리에 고정되어 살아가는 나무가 어떻게 동물처럼 상호작용을 한단 말인가?


내가 이런 사실을 처음 접한 것은 유튜브의 TED강연에서였다.

영어 듣기 공부를 위해 매일 아침 TED 강연을 듣다가, 우연히 중년 여성이 강의하는 흥미로운 내용에 빠져들었다.

유심히 들으려고 서툰 영어 듣기를 포기하고 한글 자막으로 바꾸어 몇 번이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 그녀의 저술을 검색해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라는 책을 찾았다.

책에선 강연보다 더 실감나게 실험 내용과 연구과정을 전개하고 있었다.





연구 성과는 실로 놀라웠다.


먼저, 숲 속은 '우드 와이드 웹(Wood-Wide Web)'으로 형성되었다고 밝힌다.

인터넷 주소는 대부분 worldwide web의 머리글자인 www로 시작한다.

이것을 본땄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머드 박사는 나무 간의 연결망을 wood-wide web이라는 멋진 용어로 표현한다.


숲의 나무들이 땅속에서 곰팡이(진균, Fungus)의 균사로 이루어진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곰팡이와 공생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없는 곰팡이에게 나무는 자신이 만든 에너지를 내어준다.

곰팡이는 대신 나무가 흡수하기 힘든 깊은 땅속의 물과 각종 영양분을 나무에게 제공한다.

그런데 곰팡이끼리는 서로 균사로 연결 돼 있으니

숲 속의 나무들은 서로 연결되는 셈이다.

물론 아무 곰팡이나 다 연결되지는 않고, 수종에 따라 궁합이 잘 맞는 곰팡이가 따로 있다.


이 네트워크는 나무들이 에너지와, 물, 영양분뿐만 아니라, 위험 신호나 환경 정보까지 서로 주고받는 통로 역할까지 한다고 밝힌다.


이 정도면 나무도 서로 대화하고 소통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숲을 단순히 경쟁하는 개체들의 집합이 아닌, 소통과 협력의 공동체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땅속의 회색 가닥이 나무 뿌리이고 녹색 가닥이 곰팡이 균사이다. (출처:https://www.nzgeo.com/stories/the-wood-wide-web)


시머드 박사는 나아가, 숲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큰 건강한 나무찾아서 그 기능을 알아냈다.

이 나무는 땅속 네트워크의 중심이며, 숲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머니 나무(mother tree)'라고 이름 붙였다.


어머니 나무는 광합성으로 얻은 에너지와 곰팡이에게서 받은 영양분을 햇빛이 부족하거나 허약한 어린 묘목들에게 전달하여 생존을 돕고 양육한다고 밝혔다.

이런 기능과 역할을 통해 숲은 자손이 번창하고 생명력이 유지된다고 한다.


또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생존 노하우와 환경 변화에 대한 정보 역시 이 네트워크를 통해 자손을 포함한 주변 나무들에게 전달되어 숲의 건강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해나 재난으로 숲이 파괴되더라도 재생을 촉진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키운다.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이 연구결과를 모티브로 하여 <아바타>의 나비족이 숭배하는 '영혼의 나무(Soul Tree)'를 연출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절묘한 착상이라 생각된다.



시머드 박사가 의도하는 바는 단순히 숲 생태계에 대한 과학적 실험 결과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의 농업과 임업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현대 임업이 경쟁과 지배를 강조하며, 잡초목 제거와 오래된 나무 벌목을 통해 상업적 가치가 높은 소수 수종의 성장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반대로 경쟁이 아닌 협력이 식물 성장의 비결이며, 오래된 나무를 숲 생태계의 중심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대우림 같은 건강한 숲을 바나나나 야자수 농장 같은 단순림을 위한 산림훼손에도 경종을 울린다.

숲을 강인하게 유지하고 기후 변화 시대에 회복력을 높이는 위해서는 다양한 수종을 비롯해 생물 종의 다양성이 핵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시머드 박사가 일생을 바쳐 수행한 연구 과정과 자신의 삶을 오버랩시킨 에세이이다.

중학교 수준의 기초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설명하는 교양과학서이다.


평생 나무의 연결성과 숲 생태계 연구에 투신한 노고에 찬사가 절로 우러나온다.

나무끼리도 서로 영양분을 주고받으며 심지어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놀랍고 경이롭다.


어머니 나무는 죽을 때까지 주변의 자식 나무들이 살아갈 수 있게 보살핀다는 연구 결과는 신비로움을 넘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더욱 감동적인 사실은 동종의 나무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나무나 식물에게도 선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 책은 과학적 발견뿐만 아니라, 자연의 지혜와 공존과 균형의 중요성을 역설하다.

새삼 숲과 나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어쩌면 시머드 박사는 생명의 세계에서 구성원 모두가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말로 압축하여 생명의 세계를 경쟁 관계로만 보았던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반론인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효율성과 경제성만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성 과학자로서 받았던 편견과 고단한 삶을 극복하는 과정이 더 빛나 보인다.

대대로 나무꾼이었던 집안 배경과 산림 관리인으로서의 경험, 그리고 유독가스를 사용한 잦은 실험과정에서 얻은 유방암과 싸우며 숲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진솔하게 들려준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어머니 나무의 역할과 기능을 연구하며 딸을 향한 자신 안의 모성애를 깨달아 가는 대목은 더욱 뭉클하다.


딸 둘을 둔 아빠로서, 그녀의 연구 성과보다 여성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나날들이 더 감동이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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