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피델리티(닉 혼비) &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스티븐 프리어스)
여러 번 말했지만 홍상수 영화를 싫어한다.
정확하게는 홍상수 영화는 훌륭한 작품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인물들을 싫어한다.
그리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도저히 정을 줄 수가 없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다.
흔히 말하는 쪽팔린 행동을 하거나 찌질한 행동을 할 때 유독 감정이입이 잘되는 탓에...
"제발 그러지 마"라고 붙들고 싶은 장면이 유독 많아서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원작을 보고 영화를 보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편이라서
이번엔 일부러 영화를 먼저 본 것이었는데..
조금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롭이
그나마 소설 속에서는 조금 더 설명이 된 덕분인지 아주 조금은 롭을 마주하기가 편해졌다.
무엇보다 닉 혼비의 글솜씨에 반했다.
말 그대로 술술 읽히게 너무 잘 쓴다.
남의 잡생각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소설에 몰입하게 되니, 롭이 지난 과거를 회상할 때 나는 어땠나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됐다.
아마 지난 시즌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기본적으로 '나'라는 인간이 이모양이다 보니...
상대가 바뀌어도 결국 연애 패턴이 비슷해진다고 느낀 적이 많다.
감정기복 없는 성향이
연애만 하면 상대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혼자 지낼 때 안정 그 자체인데
연애 중일 때는 혼란 그 자체다.
이런 큰 흐름이 바뀌지 않다 보니, 점점 연애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이성이 접근할 리는 없는 삶이기 때문에
나만 '나대지' 않으면 연애할 가능성 자체가 낮아져서 연애하지 않는 삶을 유지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또한, 남자여자가 아닌 '친하고 가까운 사이'로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는 것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 삶에 한 사람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고
이별한다는 것은 내 삶에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만큼 내 삶에 큰 파도가 덮치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신 없을 축복 같은 일이자 다신 없을 고통 같은 일이었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한 적은 없다.
('사랑의 생애' 속 표현을 그대로 빌려) 사랑의 숙주가 돼버린 듯, 자유의지는 없어진 채 내 몸과 마음을 내준 것과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잘 못 받아들인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내가 아닌 나를 마주하는 느낌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는 언제나 낯설다.
어쩌면, 그래서 홍상수 영화 속 남자들과 이번 영화 속 롭을 그렇게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저런 모습이 나에게 나올까 두려워서 더 보기 힘들어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에는
오히려 저렇게까지 자신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롭이 더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포함해서, 군대에서 받은 편지까지 별 의미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도 유독 편지만큼은 버리지 못하는데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받은 편지는 한 번도 다시 펼쳐본 적이 없을 만큼 과거를 마주하는데 겁이 많은 나와는 달랐다.
롭만큼 구질구질해지지 않으려 노력한 기억만 있을 뿐
롭만큼 아파해보지도 끝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롭처럼 지난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도 없다.
지난 과거, 특히 굳이 들추고 싶지 않은 지난 일은 애써 묻어두려고 하고, 심지어 기억에서 잘 지우기까지 한다.
나의 구질구질함을 들킬까 봐 두려워 애써 쿨한 척한 기억만 어렴풋 남아있다.
하지만 난 결국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라... 롭처럼 되지는 못할 테니(롭처럼 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감으로 이 소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