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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Dec 11. 2023

#8. 평범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젊은 ADHD의 슬픔(정지음) & 디어 에반 핸슨(스티븐 크보스키)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평범한 사람은 없었다.

다수와 공감대 형성을 잘 이루는 사람을 평범하다고 말하는 거라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개성을 나타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지음 작가와 Evan 모두 사람들과 지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누구보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정지음 작가는 내가 조금도 견뎌내지 못할 성격을 갖고 있다.(그럼에도 정지음 작가와 비슷한 성향 역시 내게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서울 체크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본 적은 없고... 짤만 봤다..)에서

구교환 배우와 이옥섭 감독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나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다 해결돼요.

너무 재미있으면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이게 다 선을 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깐 되게 편했어요.


#

우리 주변에 미워할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나도 이상할 때도 많고

그래서 그걸 미워하지 않으려면, 뭔가 그 사람의 다른 면을 보려고 계속하다 보니깐..


#

제가 너무 미운 사람이 있었어요.

근데 옥섭 감독이 말한 코멘트 중에 너무 좋았던 말이

"그 사람을 귀여워해 보라"라고.


#

미국 여행 중 2층 버스에서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는 여성을 보며, 냄새도 나고 그 행동이 너무 불편해서 싫었는데

저 여성을 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니, 너무 사랑스럽게 그리고 싶은 인물인 거예요.


그렇게 보니깐 싫은 사람이 없어요 이제는...


"그래서 저희는 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 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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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음 작가나 에반 모두 내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난 그들을 싫어했거나,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구교환 배우나 이옥섭 감독이 이야기하는 저런 마음은 내가 갖기에는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그렇게 포용력이나 이해심이 넓지도 못하다.


다만, 공감하는 포인트는 분명히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 속 인물들이 내 주변에 살아있는 사람이었을 때와

책과 영화 속 인물로 만났을 때의 가장 큰 차이는

저 인물을 이해할 기회와 시간이 있냐 없냐이다.


정지음 작가를 좋아할 수는 없어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야기와 그의 글이 내 마음에 와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고

에반이 너무 좋았던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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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으로 읽지 않은 책을 페어링 해봐서 많이 불안했고,

주변에 이 책에 대한 평이 안 좋은 것을 하나둘 접할 때마다 죄책감도 커져갔다.


불안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기대치를 완전 내려놓고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조금은 더 괜찮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몇 안 되는... 좋았던 구절은 이 정도


p.57

"언니, 나 완전 미친 것 같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일주일 중 7일이야. 이젠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와. 요즘은 손도 막 떨려."

그런데 언니는 나를 바보 취급하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무심한 격려를 보내왔다.

"그치만 네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뭔가 크게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회사를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빚을 지는 것도 아니고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힘들면 그냥 마셔. 계속 끊으려고 노력하면서."


p.150

"아빠 옛날에 너 때문에 많이 울었잖니."

"허걱, 슬퍼서?"

"아니…… 열 받아서."


내가 학교에서 벽을 보던 시간, 부모님도 나와 자신들 사이 불가해의 벽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비슷한 종류의 벽을 각자의 장소에서 만난 후 계속계속 집으로 귀가했다. 어린 내겐 벽을 쳐다보며 가짜 반성문을 적는 능력밖에 없었으므로. 벽을 부수어 벽 안의 나를 안아 든 건 역시 부모님이었다. 10여 년이 지나도록 부모의 세계를 자꾸 떠나려던 나는 고무줄의 관성처럼 여기로만 돌아오게 되었다. 그들이 나의 세계가 되어 주어서, 탕아 취급을 받는 순간에도 귀할 수 있었다. 나는 긴 시간 슬퍼했으나, 긴 시간 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천해져도 부모 안에서만큼은 영원한 특권층이자 일등 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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