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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Dec 11. 2023

#22. 돌이켜보니, 군대보다 더 낯설었던 중학교 첫날

새의 선물(은희경) & 파수꾼(윤성현)

씨네필 첫 시즌의 첫 번째 책이었던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 잊고 있었지만 따뜻했던 과거가 떠올랐다면,

애프터필 첫 시즌의 마지막 책과 영화는 이제는 사실 굳이 다시 떠올릴 필요조차 없었던 과거가 떠올랐던 것 같다.

학교도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생기는 관계를 통해 권력도 만들어지고, 보이지 않는 계급 같은 것들도 만들어진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 계급은 공부와 운동 정도로 나뉘었던 것 같다.

진희와 같은 나이였던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아니었으면 그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조용한 학생으로만 남았었겠지만...

행복했던 5, 6학년을 마치고, 넘어간 중학교는 내가 그동안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랐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이었다.

14세의 남자아이들로만 있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 첫날부터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고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타깃이 되면, 어떤 미래가 날 기다릴지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도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이 소설 속 장군이처럼 단순했을 것이라 진지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중학교에 가서는 그 나름의 '허세'라는 것이 완성됐던 시기 같다.

영화 속 아이들의 관계 역시 낯설지 않았다.

성장기 아이들이라... 키와 몸이 커지는 만큼 소설 속 진희만큼도 성숙해지지는 못했지만,

영화 속 아이들 같은 일은 중 3 때 끝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진희도 기태도 희준이도 동윤이도

내게는 낯설지 않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나름 모범생 무리에서 지냈던 초등학생 때와는 달리, 조금 더 노골적으로 '권력관계'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났던 중학생 때는 그런 구분이 내게도 필요했던 것 같다.

진희가 가진 삶에 대한 통찰이 그 당시 내게는 없었지만,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에 대한 구분은 내게도 필요했다.

조금 더 거친 조건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낼 수 있던 환경에서

친구들 무리와 잘 어울리는 나와

이 친구들과 계속 잘 지낼 수만은 없었던 나를 구분하는 것이 14살의 나한테도 필요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초등학생 김수겸과 중학생 김수겸을 어떻게든 구분시켜야 했던 것 같고

그 간극은 대학생 김수겸과 군인 김수겸의 괴리보다도 크지 않았나 싶다.

청소년 시기 학교라는 공간이 결국에는

같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묶이는 관계이다 보니,

사실 내게는 초등학교 동창, 중학교 동창,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크지 않다.

(군대 역시도 그래서 내게는 마찬가지다.)

미성숙 그 자체였던 그때의 나보다는 

(지금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성장했다고 느껴지는 스무 살 이후의 내가 

대학에서, 회사에서, 취향을 나누는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주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나간 과거와 인연은 쉽게 잊는 것 같기도 하다.

유독 사람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간 일도 잘 잊는 편인데... 

소설과 영화 덕분에 (굳이 꺼내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 같긴 하지만) 잊고 있던 기억들도 많이 마주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커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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