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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Feb 18. 2024

[2-01] 여기에 카페가 있다고?


길모퉁이까지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것만큼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도 우리의 삶에 필요하다. 단, 그 길모퉁이에 적당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


- The Great Good Place, Ray Oldenburg




 나의 공간은 조용한 마을의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그 하천을 끼고 고개를 돌리면 벚나무가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다. 봄이면 벚나무가 만개한 벚꽃길로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산책길 한가운데에는 족히 백 년은 되어 보이는 버드나무가 있다.






카페를 열기 전, 나는 이 산책로와 오랜 시간 이곳에 서있던 듯한 묵직한 버드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인적도 드문 곳, 4층까지 겨우겨우 올라와야만 하는 이곳에 카페의 문을 연 이유에 이 버드나무도 적잖이 제 몫을 했다. 앞으로는 벚나무길과 버드나무가, 뒤로는 넓게 펼쳐진 평야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딱 이 마을의 정체성 같아 보여서 참 좋았다. 울창하게 정돈된 숲도 아니고 도시의 꾸며진 모습도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자연스러웠다.




카페로 올라와 보이는 풍경은 또 새로웠다. 홍도평이라고 불리는, 몇만 평은 넘어 보이는 이 평야는 개발이 잠시 멈추어져 그대로 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 홍도평과 하천에서 뛰어놀며 자란 동네의 토박이였는데, 하천에서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으며 놀기도 하고 철새를 따라 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개발 제한 지역으로 도시개발은 잠시 멈추어 있지만 언젠가 이곳도 기억 뒤로 사라지게 되리라 생각하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졌다.







홍도평야는 여름이면 초록을, 가을이면 금빛을 내뿜다가 추운 계절이 오면 눈이 하얗게 쌓이고 겨울 철새들이 곡식을 먹으며 남쪽으로 여행을 갈 채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 초록색의 벼들이 모여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코끝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곳은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계절의 풍경을 매일 눈앞에 담을 수 있는 장소였다.   





1832에 들어오려면 꽤 긴 여행을 해야 한다. 산책길을 지나 강변을 넘는 다리를 건너 주택가 골목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도 간판이 없는 건물의 4층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그 시간이 마치 작은 여행 같이 느껴졌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 문을 열면 새로운 곳이 나를 반길 것만 같은 비밀스러운 아지트.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작은 외곽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공간을 열어야겠다고 혼자 작은 다짐을 하면서부터 내가 여는 공간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곤 했다.




비밀스럽고 느슨한 연대가 일어나는 곳. 딱 그게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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