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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crobat Aug 29. 2021

[EPL] 맨유의 역사 4부 :퍼기 시대의 시작



경기의 99%는 선수들이 만들고 나머지 1%는 감독이 만든다.
그러나 감독의 1% 없이는 100%는 존재할 수 없다
- 알렉스 퍼거슨-




올드 트래포드에 걸려있는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



   영국 사람들은 퍼거슨 감독의 이름을 부를 때 항상 " sir Alex(퍼거슨 경)" , " sir Alex ferguson(알렉스 퍼거슨 경)과 같이 이름 앞에 'sir~'이라는 문구를  붙여서 호명한다. 영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는 주로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에게(정확히는 2등급 이상의 대영제국의 훈장) 붙이는 말이다. 그리고 영국에서 기사 작위는 대체로  사회, 경제,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왕실이나 국가에 크게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1999년 당시 노동부 총리 토니 블레어 총리의 추천으로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과연 한 축구 클럽의 감독일 뿐이었던 알렉스 퍼거슨은  어떤 업적을 달성하였길래 기사 작위를 받을 수 있게 되었을까?






1. #1986... 부임 첫해, 팀의 전체적인 리빌딩과 fergie out




부임 첫해, 맨유 팀 내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그가 맨유에 부임하기 시작한 1986년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에서 3~4위를 기록하며, 꽤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데이터로만 입각하였을 때 나올 수 있는 평가이다. 리그 3~4위의 성적은 맷 버스비 감독 아래  영국 최초로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고 수많은 리그 우승을 차지한 과거의  맨유의 명성과는 거리가 먼 성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에는 선수들의 멘탈리티가 한 몫하였다. 당시 맨유는 기량은 출중하지만,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는 선수들이 매우 많았고 영국인들로부터 '술주정뱅이 구단'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다.



    따라서 맨유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당시 스코틀랜드의 작은 클럽인 에버딘을 이끌고 루메니게의 뮌헨과 디 스테파노의 레알을 꺾고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돌풍을 이끈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을 새로운 감독으로서 영입하였다.



조크 스타인 감독이 내게 맨유 감독직을 거절한 것을 평생 후회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맨유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알레스 퍼거슨-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맨유에 도착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놀랍게도 과거 맷 버스비 감독과 똑같은 방식으로  맨유의 유소년 시스템을 점검하고, 팀을 대대적으로 리빌딩하는 것이었다.


맨유의 주축으로 활약하게 되는 왼쪽부터 마크 휴즈, 폴 인스

  

  그는 어린 선수들에게 향후 미래를 위해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기회를 주면서 팀 내부에서 인재를 발굴하려 하였다. 또한 당시 폴 맥 그리스와 같이 팀의 기강을 해치며, 술을 좋아하는 일부 팀의 주축 선수들을 모두 보내고, 폴 인스, 마크 휴즈 등을 영입한다. 결과적으로 폴 인스와 마크 휴즈는 훗날 퍼거슨의 아이들로 불리게 되는 긱스, 스콜스, 베컴 등의 멘토 역할을 하며 90년대 초중반까지 팀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의 퍼거슨에 대한 언론 반응

그러나 이 당시 유스 선수들의 기용 정책으로 맨유는 들쭉날쭉한 기록을 남기게 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맨유는 퍼거슨 감독이 부임한 첫해인 1986-87 시즌 11위라는 다소 저조한 성과를 내며 마감하였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1990년까지 2위 13위 11위라는 기복이 심한 성적을 냈고, 결국 1989-90 시즌에는 자연스럽게 팬들로부터 퍼거슨 감독의 경질을 요구하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믿었고, 구단의 수뇌부 또한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퍼거슨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였다. 만약 구단의 수뇌부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상은 없던 셈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다
-알렉스 퍼거슨-



2. #1990년... fa 컵을 필두로 한 상승세




FA 컵


   퍼거슨 체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반동의 시동을 건 것은 1989-90 시즌 fa컵 우승이었다. 당시에도 맨유는 리그에서 13위를 기록하는 등 저조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fa컵에서는 꽤나 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맨유는 fa결승전에서 크리스털 팰리스를 만나서 1-0 승리(3-3 무승부로 인한 재경기)를 거두면서 fa컵 우승을 거머 줬다. fa컵의 위상이 워낙 크기에 이러한 타이틀은 맨유팬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UEFA 위너스 컵


그다음 해인 1990-91 시즌 맨유는 리그 6위로 도약에 성공하였고, 무엇보다 이 시즌에서 당시 크루이프의 토털 풋볼로 무장한 요한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를 꺾고 UEFA 위너스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훌리건 폭동의 대표적인 사건, 헤이젤 참사

이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너스 컵 우승은 다른 타이틀보다 상당히 유의미한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헤이젤 참사와 관련이 있다. 헤이젤 참사는  스타드 루아 보두앵에서 일어난 훌리건 난동으로 인한 혼란에 구조물이 무너져 39명이 숨지고 6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사건으로 이에 대해 uefa는 향후 5년간 잉글랜드 클럽팀에게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명령을 내린 사건이다. 즉 1990-91 시즌 맨유의 위너스 컵 우승은 헤이젤 참사로 인한 징계가 풀린 직후 출전한 유럽 대항전에서의 우승으로, 떨어졌던 잉글랜드 리그의 위용을 조금이나마 다시 되찾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되찾은 리그 우승 타이틀..


그러나 이때까지의 맨유의 행보는 그저 시작에 불가하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최전방과 수비라인, 골키퍼 라인에서 부족함을 느끼며 이적시장에서 피터 슈마이켈 (Peter Schmeichel) , 데니스 어윈(Denis Irwin), 에릭 칸토나(Éric Cantona)를 영입하면서 전체적인 포지션 강화를 한다.


왼쪽부터 데니스 어윈, 피터 슈마이켈, 에릭 칸토나


※ 이때 영입된 세명의 선수들은 단순히 한 시즌 간의 활약에 그친 것이 아닌, 퍼거슨 감독의 시대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며, 지금까지도 맨유의 레전드로 칭송받고 있다. ※


프리미어리그 출범 시즌 첫 리그 챔피언이 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영입의 효과는 바로 빛을 발하였다. 우리가 지금 흔히 알려진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 출범 시즌인 1992-93 시즌, 맨유는 골키퍼 피터 슈마이켈의 뛰어난 선방 능력과 뛰어난 리더십, 에릭 칸토나의 무시무시한 득점력, 그리고 주축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무려 26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3. #1995.. 세대교체 generation replacement




   26년 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욕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맨유가 단순히 리그 우승 1회에 만족하는 클럽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향후 맨유의 미래를 고려하여 1995-96 시즌을 시작으로 유스팀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어린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기 시작하였다.


맨유 유스 출신인 왼쪽부터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데이비드 베컴


  이 당시 맨유에서의 유스 출신 선수들이 바로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등으로  현재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각 포지션에서 월드 클래스 반열에 드는 선수들이었다. 이러한 선수들이 당시 퍼거슨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으면서 향후 맨유를 영광의 시대로 이끈 것이다.



  그러나 유스 선수들로의 세대교체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 199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인스는 더 이상 어린 나이의 선수가 아닌 팀의 어엿한 주축 선수이자 베테랑 선수가 되었고, 그런 그를 퍼거슨 감독은 맨유의 선수단이 파벌을 형성할 수 도 있다고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그를 벤치에 앉히며, 그의 영향력을 줄이려 하였다. 점점 출전하는 경기가 줄어들자 폭발한 폴 인스는 퍼거슨 감독의 사무실로 들어가 권총을 들고 감독에게 왜 자신을 출전시키지 않느냐며 협박까지 하였다.



 ※이 사건 이후 폴 인스는 자연스레 퍼거슨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인테르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일화를 알 리 없는 맨유의 서포터들은 주축 선수를 처분한 퍼거슨 감독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폴 인스를 위해 이 사건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으며, 팬들의 질타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렇듯 세대교체에 성공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당시 1994-95 시즌에서부터 이후 1995-96 시즌 동안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2년 연속 더블(리그 우승, FA컵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면서 잉글랜드 내에서의 자신들의 경쟁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약 3년이 지난 1998-99년, 과거 맨유의 영광을 대표하는 버스비의 아이들을 잇는 맨유의 퍼기의 아이들은 잉글랜드가 아닌 유럽에서 큰 사고를 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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