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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Jan 30. 2024

읽고 쓰기-1

알렉산더 데만트, 이덕임 옮김, 시간의 탄생, 서울, 북라이프, 2018

누구나 알지만 그 본질이 뭐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


시간은 그 자체가 측정단위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시간은 중력과 속도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단순하게 측정단위에만 영향을 미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는 매우 심각하고 곤란한 문제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그 시간이 변하면 물리적인 것 대부분이 영향을 받습니다. (여기서 대부분이라고 한 이유는 빛이라는 지극히 예외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사고와 생각도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시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거짓말 같다고요? 주변에 과학자가 있다면 물어보세요. 시간이 가지는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를. 아마 태어나서 그 과학자 동공이 그렇게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처음 보게 될 겁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많은 과학자들은 우리가 시간의 본질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를 차원 때문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우리는 2차원에 머물러 있고 3차원까지 인지하고 해석이 가능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시간이라는 또 다른 축을 연결하면 어찌 되는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인지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수학적으로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합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시간에 대한 연구에 매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을 구성하려면 시간이라는 변수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는 자기모순 한계에 부딪히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건 마치 거리나 공간 개념과도 유사합니다. 우리는 거리와 공간을 인식할 수 있고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물리적 존재를 배치하지 않고서는 거리와 공간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무슨 소리냐! 점은 물리적 면적을 차지하지 않지만, 점이 두 개만 있으면 선으로 표현된 거리를 측정할 수 있고, 그 개념은 공간까지 확장할 수 있다."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리와 공간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텅 빈 공간이라는 개념조차 그 경계를 구획하는 물리적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무언가 물질로 채워진 공간이 있어야 빈 공간을 묘사할 수 있게 되는 모순에 빠집니다.




누군가 제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아'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을 나타내는 '정체성'은 어찌 형성되는 거냐고 이어서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나라는 인식은 남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물리적 존재들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를 나타내는 범위나 형식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정체성도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나 이외 다른 존재들과 접하고 충돌하고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는 것이 바로 정체성입니다. 모든 것은 물리적 상대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상대보다 크거나 작거나, 강하거나 약하거나, 검거나 희거나, 착하거나 악하거나, 똑똑하거나 멍청하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결국 정체성은 상대적 스펙트럼에서 부여되는 정도와 위치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지니고 있는 정체성을 설명하고 싶으면 외부와 어떤 접촉을 하고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저는 오늘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계식 시계에 태엽을 감아주고 약속 시간에 맞춰 그대를 만나러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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